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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강덕수 전 STX 회장 컴백?

잘나갈 때 ‘사람’ 투자…재판 앞두고 계열사 노조, 협력기업 등 구명 탄원서만 1877통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풍운아 강덕수 전 STX 회장 컴백?

풍운아 강덕수 전 STX 회장 컴백?

10월 14일 석방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두부를 베어 물고 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장안의 화제다. 지난해 분식회계 및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던 그는 10월 14일 항소심 재판부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감옥 문을 나섰다. 검찰이 곧 상고해 법의 심판은 한 번 더 남은 상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가 법원에 쏟아져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경영 인생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강 전 회장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도착한 탄원서는 1877통에 이른다. 이 중 상당수가 STX그룹 협력업체 관계자와 노동계 인사들로부터 왔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고용된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기업 경영에 실패한 최고경영자(CEO)를 돕겠다고 이들이 탄원서를 내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재판부가 강 전 회장의 횡령·배임 등을 ‘경영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대주주로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과정에 탄원서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뒷얘기가 나온다.

다시 쓰기 어려운 샐러리맨 성공 신화

부산에 있는 STX그룹 협력업체의 대표 A씨는 강 전 회장을 “협력업체와 동반성장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대구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한 B씨는 강 전 회장에 대해 “1990년대 후반 쌍용중공업 대구공장 공장장으로 있던 시절 일감이 없어 공장 문을 닫을 상황이 되자 직원 400여 명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STX그룹이 잘나가던 시절 강 전 회장은 21세기 유일의 ‘자생적 재벌’로 유명했다. 1950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그는 73년 쌍용그룹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서울 동대문상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학벌이나 집안환경 면에서 특별할 것 없는 직원이었다.



당시 그를 돋보이게 만든 건 뛰어난 계산능력과 치밀함, 성실함이었다고 한다. 강 전 회장 평전 ‘나는 생각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다’(이임광 지음/ 글로세움)에는 ‘1970년대 후반 (강 전 회장이) 쌍용 기획부 과장으로 일할 때 함께 근무한 동료들은 ‘우리가 계산기로 하는 것보다 그의 암산이 더 빨랐다’고 기억한다. 상고에서 주산과 부기를 배운 데다 쌍용그룹 입사 후 재무기획 등 숫자가 중시되는 일을 주로 맡아 최고재무책임자에까지 올랐으니 숫자와 계산이 똑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는 대목이 있다.

게다가 강 전 회장은 “나는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신명 나게 일하면 건강도 좋아진다”거나 “일을 취미로 만들면 자연히 성과가 생기고 성과가 나면 여유가 생기며 저절로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워커홀릭이었다. 이렇게 27년간 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이 그는 차근차근 승진했고, 2000년엔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전무) 자리에까지 올랐다.

풍운아 강덕수 전 STX 회장 컴백?
강 전 회장 인생의 전기는 이 무렵 찾아왔다.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던 쌍용그룹이 쌍용중공업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이때 쌍용중공업 대주주가 된 한누리컨소시엄은 강 전 회장을 CEO로 발탁했고,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1000주를 지급했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월급쟁이 사장’에 머물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전 재산을 정리해 마련한 20억여 원으로 당시 바닥을 치고 있던 쌍용중공업 주식을 사들여 스스로 ‘오너’가 됐다. 그는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가족과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 아이들을 앉혀놓고 ‘아빠가 다니던 회사를 직접 경영하려고 한다. 모두 잘될 거라고 확신하지만 백에 하나 실패할 경우 너희 학비를 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나이 쉰 살 때 일이다.

강 전 회장을 아는 이들은 그의 경영을 상징하는 단어로 ‘Speedy(빠르게), Simply(간결하게), Timely(적시에)’를 꼽는다. 2001년 5월 ‘주식회사 STX 출범 선포식’을 통해 경영자로 첫발을 내딛은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이 전략을 구사했다. 그해 대동조선(STX조선해양)을 시작으로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차례로 사들이며 글로벌 조선 및 해양 기업으로 회사 체질을 바꿔가는 동안, 강 전 회장의 의사결정은 재빠르고 간결하며 시의적절하다는 평을 들었다. STX그룹은 순식간에 우리나라 재계서열 11위까지 오르는 ‘재벌’이 됐고, 강 전 회장도 2009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되는 등 스타 경영인이 됐다.

“사람이 재산이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자신을 ‘비주류’로 여겼다는 게 그를 가까이서 본 이들의 전언이다. 경영자단체에서 마주치는 재벌 2, 3세들과는 경험과 정서 등에서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강 전 회장은 ‘오너 회장’이 된 뒤에도 비서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을 꺼렸고, 임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려 했으며,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2008년 미국발(發) 경제 위기로 STX그룹의 두 축인 조선업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았을 때도 직원 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강 전 회장의 지론은 ‘기업의 젊음과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의와 도전정신, 그리고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직원을 확보해 계속 키워야 한다’였다고 한다. ‘신생 회사에 인재 말고는 길이 없다’고 믿은 그는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도 “나는 회사를 사는 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을 사는 것”이라 했고, 신입사원 공개채용 합격자의 부모에게는 모두 ‘훌륭한 인재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난 화분을 보냈다.

“경영에는 실패했지만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경영자는 아니었다. 평생 떳떳하고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했다고 자부한 명예를 되찾고 싶다.”

강 전 회장이 9월 30일 열린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 검찰은 그가 2조3264억 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회사자금 557억 원을 횡령해 STX그룹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분식회계 내용 중 5841억 원 부분만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분식회계 부분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상고심에서는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주간동아 2015.11.02 1011호 (p38~3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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