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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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손맛 깃든 영혼의 음식

서울 수제비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10-12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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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손맛 깃든 영혼의 음식

    서울 삼청동 ‘삼청동수제비’의 수제비(왼쪽)와 여의도 ‘영원식당’의 수제비.

    수제비를 맛으로 먹는 시절이 됐지만, 수십 년 전 가난한 시절에는 수제비가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였다. 일제강점기 전쟁으로 쌀이 부족해지자 수제비를 먹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요새 밀가루가 흔해졌습니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한 탓으로 집집마다 밀가루 음식을 해먹게 되는데 대개는 그 만드는 방법이 일률적이고 또 특별한 방법이 없이 어느 집이나 한결같이 수제비가 아니면 개떡같이 해먹거나 국수를 해먹는 것이 큰 별식으로 알고 있습니다’(1946년 11월 3일자 ‘경향신문’).

    광복 이후 미국산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대량 들어오면서 수제비는 실향민을 비롯한 도시 빈민이 가장 즐겨 먹는 일상 음식이 된다. ‘쌀밥이 납작보리밥으로, 납작보리밥이 수제비의 대용식으로 변해갔다’(1963년 12월 17일자 ‘경향신문’)란 기사에서 알 수 있듯 1960년대 초반 시작된 분식장려운동 덕에 수제비는 가정식은 물론 외식으로도 등장한다. 도구가 필요 없고 밀가루를 반죽해 호박이나 김치를 넣은 뒤 손으로 반죽을 뚝뚝 끊어 넣어 끓이면 되는 수제비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수제비는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오래전부터 먹어온 여름 별식이자 귀한 음식이었다. 1517년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사성통해(四聲通解)’에 ‘슈져비’란 한글 표기가 처음 등장한다. 1460년 전순의(全循義)가 쓴 ‘식료찬요(食療纂要)’에는 ‘우엉분말로 수제비를 만들어 된장국물에 넣고 삶아 먹는 곰국’이 나온다. 1527년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박탁’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수제비의 옛말인 ‘나화’로 풀이하고 있다. 수제비는 구름과 닮았다 해서 ‘운두병(雲頭餠)’(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으로, 물고기가 뒤섞인 모양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영롱발어(玲瓏撥魚)’ ‘산약발어(山藥撥魚)’(16세기 말 ‘산림경제’)란 말로도 불렸다.

    어머니 손맛 깃든 영혼의 음식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 위치한 ‘대원식당’의 얼큰 김치수제비.

    전국에 분식집이 우후죽순 번질 무렵인 1965년 서울 양동(낙원동과 비원 사이 돈의동 근처)에 칼국숫집들이 들어서는데, 이 중 ‘할머니칼국수집’은 멸칫국물을 기본으로 한 육수에 졸깃한 수제비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양 많고 푸짐한 이곳 수제비는 가정식에서 외식으로 변하는 수제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삼천포 출신인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수제비와 맛, 모양이 유사해 이 집 수제비는 내게 영혼의 음식 그 자체다. 이 집은 원래 칼국수로 유명하지만 칼국수와 수제비를 반반씩 섞은 음식도 인기가 좋다.



    1980년대 초 문을 연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옆 ‘삼청동수제비’는 북촌이 유명해지면서 외국인까지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오전 11시에 입장해도 사람이 제법 많다. 멸치와 조개로 우린 육수에 조개, 감자, 호박, 당근 같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맛을 낸다. 국물은 시원한 가을바람 같고, 얇게 떼어 넣은 수제비는 가을 구름처럼 가볍고 졸깃하다.

    서울메트로 홍대입구역 근처에 자리한 ‘대원식당’은 얼큰한 김치수제비로 제법 이름 있는 곳이다. 국물이 진하고 매워 젊은이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여의나루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원식당’의 수제비는 서울 수제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설렁탕 국물 같은 개운한 고깃국물에 얇은 수제비와 풀어놓은 달걀이 잘 어울린다. 수제비 한 그릇에 네 가지 김치가 딸려 나온다. 여의도 직장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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