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아무도 자동차를 사지 않는 미래가 올까

현대차의 미래와 자동차 피크

  • 입력2018-01-23 14: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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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 눈길을 끄는 뉴스가 있었다. 일본에서 더는 차를 사지 않겠다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신차 판매는 2015년 연간 494만 대로 바닥을 찍은 뒤 조금씩 회복 중이다. 그런데 10, 20대 운전면허 취득자는 10년 새 10% 이상 줄었다. 일본의 미래 세대가 자동차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짐작하다시피 가장 큰 이유는 자동차 유지비 때문이다. 그럴 만하다. 할부로 사면 자동차에 들어가는 비용이 월 100만 원 가까이 된다. 더구나 도쿄처럼 젊은이가 선호하는 대도시 주거지역은 한 달 주차료만 30만 원에 이른다.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차량 검사와 각종 수리비는 연 50만 원. 거기에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붙는다. 

    시내 가까운 곳이라면 지하철이 훨씬 낫다. 장거리 여행도 고속철도를 비롯한 철도 노선이 전국 곳곳을 촘촘히 연결하니 굳이 자동차에 의지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윗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은 20대는 휴일 외출도 줄이는 형편이다. 일본 20대의 휴일 외출 비율은 1987년 71%에서 2015년 55%로 떨어졌다. 

    구루마 바나레(車離れ·자동차 기피현상)! 일본 젊은 세대의 자동차와 결별은 일본만의 사정은 아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뜨거운 논쟁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 정점(Peak Car)’ 이론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하겠지만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에서 따온 것이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이 정점(peak)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석유 생산 정점’ 이론을 자동차에 적용한 것이다.



    다가온 현실, 자동차 정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자동차 정점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도시의 로빈후드’(서해문집)의 저자 박용남에 따르면 이 이론은 ‘인당 자동차 주행거리(1년 동안 평균 자동차 주행거리를 인구수로 나눈 것)가 8개 주요 선진국(승용차가 지배적인 교통수단 기능을 하는 미국,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아이슬란드, 일본, 스웨덴)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가설이다.

    정말로 그럴까. 자동차 정점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가 여럿 있다. 먼저 자동차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부터 살펴보자. ‘미국 내 주행거리 수치는 2005년 정점을 찍고 나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3년 4월까지 (1995년 1월 수치와 비슷한 수준인) 약 9% 하락했다.’ 

    자동차 주행거리 수치가 떨어진 직접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 국민도 새 차 구매를 포기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원인이라면 그 전인 2005년 자동차 주행거리가 정점을 찍고 하락한 사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동차 정점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자동차 문화 자체에 균열이 생겼음에 주목한다. 먼저 미국 자동차 문화의 토대가 됐던 이른바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교외의 쾌적한 주거공간에서 도심의 직장까지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던 문화가 도심 재개발 정책에 따라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늘어날수록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일도 불편해지고 있다. 굳이 외국으로 눈을 돌릴 것 없이 서울 도심의 차량 정체나 출퇴근시간대 자동차가 거북이걸음으로 답답하게 이동하는 강변북로를 떠올려보라. 앞으로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 등 도심 보행로가 늘어날수록 자동차로 서울 도심을 이동하는 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 문화를 필요 없게 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도 가세했다.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소통은 굳이 대면을 하지 않아도 업무의 상당 부분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현장 취재가 필요 없는 학술 행사도 자료를 구하려고 지방까지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접속으로 자료를 받는다.

    이뿐 아니다. 자동차를 공유하는 일이 디지털 기술로 가능해졌다. 이미 자동차 한 대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카 셰어링(Car Sharing) 서비스’, ‘우버’처럼 개인 자동차를 택시처럼 활용하는 서비스, 출퇴근 혹은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자동차를 함께 타는 ‘카풀 서비스’ 등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덕에 훨씬 쉬워졌다. 

    요즘 주목받는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면 이런 흐름은 더욱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금은 상당수 자동차가 출퇴근 때 두세 시간 움직이고서 하루 종일 주차장에 놓여 있다. 만약 이런 자동차가 시내를 운전자 없이 누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자동차를 유지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자동차 없는 대한민국?

    한국 사정은 어떨까. 2012년 3월 호주 정부의 연구를 보면 잘사는 20개국의 자동차 주행거리는 포화 상태다. 이 연구는 한국도 2018~2020년 서서히 자동차 정점 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만약 이 예측대로라면 올해(2018년)부터 2~3년 동안 한국의 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는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자동차 소비를 주도하던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고 있다. 노후를 꾸리기에도 벅찬 베이비부머가 새로운 자동차를 구매할 리 만무하다. 여기에 소비 여력이 부모 세대에 비해 적은 젊은 세대의 자동차 기피 트렌드까지 가세한다면 자동차 정점 이후 급격하게 탈(脫)자동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벌써 한국지엠은 국내 판매량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지엠이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총 13만2375대로 이는 2016년(18만275대)에 비해 26%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에 한국지엠 측은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고도성장기의 ‘자동차 드림’에 기반을 두고 전국 곳곳에 이중삼중으로 깔아놓은 도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왠지 불안해 보이는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동차 산업까지 몰락하면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할까. 지금이라도 ‘자동차 없는 도시’를 상상하고 준비하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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