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6

2017.12.06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영웅’ 이국종의 탄생

  • 입력2017-12-05 14: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국종 열풍’이다.

    11월 13일 북한군 병사 오청성(25) 씨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북한군 추격조가 쏜 총탄을 여러 발 맞아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이국종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는 사경을 헤매던 오씨를 살렸다.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더 살기 좋고 앞선 나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심한 총상을 입은 청년을 외상수술 분야 최고 권위자가 살려낸 감동 스토리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청년의 몸에서 기생충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사건은 정치적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였다.

    병사 몸속에서 큰 기생충이 나왔다는 사실이 과거 1970년대 국민의 구충제 복용을 상기케 하면서 ‘역시 북한은 낙후된 나라로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구나’라는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의료법 위반을 거론하면서 환자의 권리를 옹호했고, 북한 이탈주민이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말 자체는 그리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국민은 곧바로 분노했다. ‘한 생명을 살려놨는데 그의 기생충 감염 사실을 알린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라는 의견과 함께 ‘김종대 의원에게는 북한 사람의 체면 또는 존엄이 더 중요한가’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은 인지상정(人之常情)과 상식 차원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여론 향배를 파악한 김 의원은 “이국종 교수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함께 사과하자고 했다. 그러자 국민은 더욱 분노했다. ‘본인이 사과하면 될 일을 왜 함께 사과하자고 하는가’라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국개의원’(국회의원을 폄훼하는 표현)이 어디 감히 사람을 살린 의사선생님(이국종 교수)에 대해 함부로 말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국개의원’이 의사선생님을…”

    게다가 이 교수가 언론에 환자 수술 과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평소 생각과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하자 그의 인기는 신드롬으로 번졌다. 권역외상센터(권역 내에서 발생하는 외상환자의 응급의료를 담당하기 위해 지정된 병원) 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의견이 23만 건을 넘어섰고,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예산과 인력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도 여야 구분 없이 지원을 약속했다.

    의사 한 명이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나아가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친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교수 개인과 국민이 보인다. 먼저 이 교수에 대해 살펴보자. 그가 쏟아낸 말들이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비참하게 일하고 있는 중증외상센터 직원들을 고려해주세요.”

         “만일 의료법 위반이라면 제가 어떠한 처벌도 받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센터장인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병원 내에서 인기가 없고, 의료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함께 일하고 고생하는 직원들을 먼저 언급했다. 표정이 다소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이타주의(altruism)’를 보여주고 있다. 의료법 위반 가능성에 대해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병사 몸속의 기생충은 수술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었기에 국민의 이해를 돕고자 밝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과거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수술할 당시 여러 억측과 오해를 경험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고 여겨진다. 당당함과 솔직함이 엿보인다. 더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는 고민의 과정은 그가 신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그가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임을 입증하는 표현이다. 조직 구성원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일부 ‘보스’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오로지 중증외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을 살리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일 뿐 매력 없는 사람임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겸손함이 느껴지고,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자아도취 함정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회성이 뛰어나고 사교적이라면 그렇게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겠는가. 환자를 살리려는 ‘뚝심(grit)’과 반비례하는 ‘타협(compromise)’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비 삭감에도 환자를 살리는 데 필요한 의료행위를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이 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는 비록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지언정 눈치를 보고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환자 생명을 살리는 일이 최상위 가치에 놓여 있다. 현실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놓아줘야 했던 ‘이상주의(idealism)’를 실현하고 있다.

    열악하고 숨 막히며 불합리한 한국 의료 제도 아래서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친 그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상주의를 계속 펼치는 ‘행복한 소년’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타주의·이상주의 겸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옥상에 설치된 환자 이송용
헬기장에 선 이국종 교수.[홍중식 기자]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옥상에 설치된 환자 이송용 헬기장에 선 이국종 교수.[홍중식 기자]

    이제 국민의 마음을 읽어보자. 많은 국민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북한 주민이 비참하게 살아간다는 실상은 알게 됐지만, 우리 국민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인도적 차원의 식량, 의약품, 물품 지원이 가능할 뿐 그들을 직접적으로 보듬어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나 살기도 바쁜데 북한 주민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 발로 귀순한 병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유, 행복, 평화, 풍요를 찾아 목숨 걸고 대한민국으로 온 젊은 북한 청년이 잘 적응하고 제대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그런데 병사의 목숨이 위태로워졌고,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때 이 교수가 그를 살렸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과 도덕적 가치를 대리만족으로 실현한 것이다. 국민은 자신감과 희망을 느꼈다. ‘석해균 선장을 살린 다음에도 중증외상센터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개선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별로 대우받지 못하지만, 이국종 교수처럼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다 보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간 수많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국민에게 이 교수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을 테다.

    종합편성채널 JTBC 손석희 앵커와 이 교수의 인터뷰에서 성형외과와 일반외과를 비교하는 대목이 있었다. 손 앵커는 이른바 돈을 좇는 성형외과 의사에 빗대 진정으로 사람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외과의사인 이 교수를 칭찬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우위를 통해 돋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 생명을 살리는 대학병원 외과 교수 못지않게 뛰어난 의료 술기를 배우고 개발하는 성형외과 의사도 훌륭하다.”

    이 교수의 비사회성·비타협성·비공감성이 그가 추구하는 최고 가치인 ‘생명’을 살리면서 점차 정의로움, 비범함, 배려, 따뜻함으로 변화,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건을 제대로 갖춘 영웅 탄생의 화룡점정이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