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2017.11.29

법통팔달

①  사회적으로 유해 ②  성적 흥미에만 호소

음란성의 기준

  • 입력2017-11-28 17: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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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마광수 교수.[동아일보 신원건 기자]

    고(故) 마광수 교수.[동아일보 신원건 기자]

    칼럼을 쓰려고 찾아놓은 기사 속 사진에서 고(故) 마광수 교수가 애잔하고 쓸쓸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무엇이 그를 출구 하나 보이지 않는 그토록 답답한 곳으로 몰아넣었을까. 

    그는 1991년 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성을 띤다는 이유로 그 이듬해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현장에서 체포, 구속됐다. 그 뒤 유죄판결을 받고 대학에서 쫓겨났다. 알려진 대로 재판 과정에서 다수의 유력 문사가 그를 단죄하는 데 찬성 의견을 냈다. 

    그런데 마 교수의 사망 후 그에 대한 평가는 무척 긍정적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위해 불운하게 희생된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특히 당시 그를 몰아세웠던 측을 향한 소설가 장정일의 비판이 통렬하다. 장정일은 21세기를 눈앞에 두고도 한국인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유교적 이상국가에 봉사하는 위선적 문학관이 마 교수를 처단하게 된 근본 이유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그 문학관을 업은 야차(夜叉)들은 자신의 허위적 균형감각을 선전할 수 있는 타인의 불운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했다. 

    마 교수의 유죄판결 당시 그 기초로 삼은 유력 문사들의 견해는 음란(obscenity)에 관해 거의 일의적이면서 무척 엄격하고 완고했다. 결국 이것이 마 교수의 불행한 자살로 연결된 셈이다. 

    그러나 음란죄의 덫으로 포획할 수 있는 표현물의 범위는 시대적 · 사회적 상황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 처음 나타난 히클린(Hicklin) 원칙은 대단히 엄격한 기준으로 음란물을 단죄하려 했으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7년 이후 이 원칙을 폐기하고 음란물에 대해 아주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로스와 회상록 기준(Roth-Memoirs Test)’을 제시했다. 그러다 73년 연방대법원은 다시 태도를 바꿔 엄격과 관대의 중간을 취하는 ‘밀러 기준(The Miller Test)’을 세웠다. 



    우리 대법원도 과거에는 음란성에 관해 그 표현이 과도하게 성욕을 자극하고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정서를 해쳐 건전한 성풍속이나 성도덕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는 딱딱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는 일본의 오래된 판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2008년 그 태도를 극적으로 완화한다. 음란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러 사회통념상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 · 예술적 · 사상적 · 과학적 · 의학적 · 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한편 과거 헌법재판소는 음란표현은 헌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봤다. 이는 마 교수를 단죄한 판결의 기초가 된 의견들이 취한 태도다. 그러나 2009년 판례를 변경해 음란표현 역시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포섭되며, 다만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이와 같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를 두껍게 보호하고자 한 판례 변경은 우리 사회 민주화의 성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공기가 스며든 그 품 안에서 한류가 자라났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세계적인 한류 열풍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현 기준에서 보면 당시 ‘즐거운 사라’나 마 교수에게 가해진 비난은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최소한 그런 작품의 작가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일 따위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망령이 아닐까. 결국 마 교수는 시대를 앞서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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