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한창호의 시네+아트

자기모순에 빠진 부성(父性)의 비극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의 ‘엘리자의 내일’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08-08 10: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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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은 21세기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루마니아 영화계의 선두주자다. 그는 두 번째 장편 ‘4개월, 3주...그리고 2일’(2007)로 제60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루마니아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불법 낙태수술을 받으려는 두 여대생의 모험을 통해 공산주의 시절 루마니아의 부패와 좌절감을 안타깝게 그려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계승하는 사회비판의 예리함과 스릴러 같은 긴박한 스토리 전개는 문지우의 영화세계를 설명하는 두 가지 특징이 됐다.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엘리자의 내일’은 ‘4개월, 3주...그리고 2일’의 비판의식을 현대로 확대한 작품이다. 1990년대 들어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루마니아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가졌는데, 당시 기대가 지금 어떻게 실현됐는지 되돌아본다. ‘엘리자의 내일’은 곧 당대의 변화를 이끈 ‘90년대 세대’의 자기성찰이다.

    감독 문지우가 90년대 세대이고 영화 주인공인 중년 의사 로메오도 마찬가지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고교 졸업반인 딸 엘리자를 영국에 유학 보내는 것이다. 우등생인 딸은 장학금까지 제안받았다. 로메오는 루마니아에 아무런 희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여긴다. 90년대 세대로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지만, 그곳은 여전히 부패와 부정이 횡행하는 땅이라 여기는 것이다.




    딸의 유학 준비는 다 끝났고, 고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영화의 원제)에서 평소 점수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시험 전날 엘리자는 성폭행을 당할 뻔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끝날 때까지 문지우 특유의 스릴러 형식으로 쉴 틈 없이 전개된다. ‘엘리자의 내일’은 아버지 뜻대로 실현될까.



    로메오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과거 공산당 시절과 다름없는 루마니아 사회의 윤리적 타락이다. 그는 청탁, 새치기 같은 범죄가 거의 일반화됐다고 여긴다. 특히 자기들끼리 이권을 나눠 갖는 권력층의 조직적 부패를 문제로 지목한다. 로메오는 딸 엘리자만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 로메오에게 ‘영국’은 그런 사회의 상징일 테다. 그런데 딸은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첫날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로메오는 어처구니없게도 경찰 간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시험 성적에 관여할 수 있는 정치가를 만난다. 딱 한 번만이라며 말이다.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펼쳐질 때마다 영화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스타바트마테르(Stabat Mater)’를 조용히 들려준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슬퍼하는 마리아를 위무하는 음악이다. 로메오를 바라볼 때 아마 관객 대부분의 심정이 마리아와 비슷할 것 같다. 연민과 슬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정과 부패 탓에 루마니아에서 딸을 키울 수 없다던 그는 스스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자기모순에 빠진 로메오의 모습은 저 멀리 루마니아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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