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골프홀릭

외국 선수 우승하자 휭하니 떠난 대통령

트럼프와 US여자오픈

  • 이사부 골프 칼럼니스트 saboolee@gmail.com

    입력2017-07-25 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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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은 2박 3일 동안 골프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골프장 안에 거처가 있어 거기서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람들과 만났다. 거처에서 자동차로 1분 거리에 있는 전용 관람석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갤러리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자국 선수 몇몇을 초대해 기념촬영도 했다. 대통령이 골프장 주인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제72회 US여자오픈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GC)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말이 많았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후 산적한 국정을 뒤로하고 바로 골프장으로 직행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성 비하 발언으로 여성단체의 비난을 받는 그가 여자골프대회를 찾았으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골프장 밖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단체들의 시위도 벌어졌다.

    하지만 골프장에서는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경호원들이 갤러리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 관람석을 오갈 때 갤러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정도였다. 대통령 거처 앞에 중무장한 경호원들이 있긴 했지만 갤러리들은 그 근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다. 경호원도, 경찰도 사진을 찍는 갤러리들이나 취재진을 개의치 않았다. 대통령이 지나갈 길만 막지 않으면 됐다.

    대통령이 와 있어 경기에 크게 방해됐다는 선수도 없었다. 펑샨샨이 인터뷰에서 “라운드를 하는데 갤러리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 살짝 방해됐다”고 밝힌 것이 거의 전부였다. 리디아 고는 15번 홀 그린에 공을 잘 올렸는데도 갤러리들의 박수가 나오지 않아 의아했는데, 가서 보니 다들 대통령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고 했다. 박성현이 우승한 뒤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첫 질문이 트럼프 대통령이 보고 있었는데 기분이 어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박성현은 “대통령이 오늘(4라운드)까지 있는 줄 몰랐다.

    15번 홀은 파5였기 때문에 버디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홀에서 박성현이 버디를 잡아 단독선두로 치고 나가자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대회를 찾은 것은 당선 후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전에는 자신의 골프장에서 큰 대회가 열리면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갔다. 지난해 8월 대선 유세 기간에는 자신의 소유인 스코틀랜드 텐베이GC까지 날아가 리코위민스브리티시오픈을 관전했다. 헬기로 골프장 상공을 몇 바퀴 돈 그는 골프장에 내려 취재진에게 골프장을 홍보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4일 오전 프랑스 파리를 떠나면서 트위터로 골프장 직행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필자가 12일 트럼프내셔널GC에 도착하니 대통령 방문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였다. 일단 가장 좋은 위치에 대통령 전용 관람석이 마련돼 있었고, 도착 당일 오전부터는 폭발물 탐지견들이 미디어 텐트 등 대통령 거처와 관람석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며, 경호원들도 보였다.

    대통령 전용 관람석은 15번 홀 그린 옆에 따로 설치됐다. 이곳은 15번 홀 그린은 물론, 16번 홀 티잉그라운드, 18번 홀 그린, 10번 홀 티잉그라운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이다. 5m 높이에 2면은 (아마도 방탄) 유리로 만들어져 안팎에서 잘 보이게 돼 있다.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취재진은 혹시 트럼프 대통령이 우승자인 박성현을 만나지 않을까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바로 관람석에서 내려왔고, 박성현이 18번 홀 그린에서 트로피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 조용히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미국 선수가 ‘톱10’에 단 1명도 들지 못해 서운했을 수도 있다. 만약 미국 선수가 우승했어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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