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국제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아! 옛날이여

명예회복 위해 차기 대선 도전, 부패 유죄 선고로 발목 잡힐 듯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7-25 15: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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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 축구황제 펠레와 룰라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룰라는 대통령 재임 기간 국가부채를 해결하고 브라질을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영웅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라는 긴 이름을 가진 룰라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1945년 가난한 농부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난 룰라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12세 때 구두닦이로 사회에 뛰어든 그는 14세 때 선반공으로 일하다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첫 번째 부인은 출산 도중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노조운동에 뛰어든 룰라는 75년 브라질 최대 노동조합인 철강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됐고, 80년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하원의원으로 활약하다 1989, 94, 98년 등 연속 3차례 대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2002년 대선에서 4수 만에 정권을 잡은 룰라는 급진좌파 정책을 추진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온건 실용좌파 노선을 택했다. 2006년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성공한 룰라는 집권 말기 지지율이 87%에 달할 정도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중남미 좌파 대부의 수모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브라질은 룰라의 대통령 재임 기간 연평균 4.1%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빈곤 퇴치 정책으로 2900만 명을 ‘먹고사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했고, 중산층 3000만 명을 만들어냈다. 룰라의 퇴임을 막고자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3차례 연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브라질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들어온 룰라는 퇴임 이후 두 차례의 불명예로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룰라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호세프는 정치적 스승인 룰라 덕에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됐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정부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탄핵돼 퇴진했다. 또 높은 성장률을 보이던 브라질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룰라의 과거 정책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월소득 120헤알(약 4만2700원) 미만 가구에 소득의 절반 이상인 70헤알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볼사 파밀리아 정책이 저유가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은 브라질 경제에 엄청난 부메랑이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자원 대국인 브라질은 경기침체와 함께 무상 교육 및 의료 등으로 엄청난 재정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국가신용등급은 추락했고 국민의 삶은 다시 팍팍해졌다. 게다가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인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최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라는 말을 들어온 룰라는 더는 수모를 당할 수 없다며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번에는 부패 스캔들이 발목을 잡을 개연성이 높다. 브라질 연방법원의 권력형 부패수사 전담인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7월 12일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룰라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형이 이대로 확정되면 내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지며 정치 생명까지 끝날 것이 분명하다. 룰라는 2009년 상파울루 주 구아루자 시의 복층 아파트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대형건설업체 OAS로부터 370만 헤알(약 13억10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소장에 따르면 당시 OAS는 룰라에게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데 힘써준 대가로 뇌물을 건넸다고 한다. 브라질은 물론 남미 최대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는 룰라의 재임 시절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당시 브라질 정부는 신규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페트로브라스에 독점개발권과 지분 30%를 보장하는 대신 설비의 85%를 국산 제품으로 쓰도록 했다.



    정치적 아웃사이더 선출 가능성

    페트로브라스의 부패스캔들은 고위 간부 출신 내부 고발자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최대 2억 달러(약 2245억2000만 원) 이상이 노동자당의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브라질 연방검찰은 2014년 3월부터 모루 판사의 지휘 아래 페트로브라스의 비리를 캐기 위한 이른바 ‘라바 자투’(Lava Jato · 세차용 고압분사기) 작전이라는 수사를 3년째 벌여왔다. 브라질에서는 판사가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검찰은 페트로브라스에서 정치권으로 흘러간 뇌물과 선거자금, 특혜 계약 등의 규모가 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또 대형건설업체 오데브레시와 세계 최대 규모의 육류 수출업체 JBS도 각종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경기장 건설 공사를 둘러싼 부패 의혹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지금까지 260명을 기소했으며, 연방법원은 12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에게 선고된 형량을 모두 합치면 1317년 21일이나 되고, 100억 헤알(약 3조5590억 원)이 국고로 환수 조치됐다. 특히 룰라와 페르난두 콜로르 지멜루 전 대통령, 호세프 탄핵으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이 기소됐다. 또 에두아르두 쿠냐 전 하원의장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전·현직 각료, 상·하원의원 등 80여 명도 수사 대상이다.

    룰라는 “이번 유죄 판결은 내년 10월 대선에 도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음모”라며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룰라는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구속되지는 않는다. 항소심은 최소 8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룰라는 항소심에서 형이 확정되면 형량의 2배인 19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돼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치 생명도 끝난다. 룰라는 또 4건의 다른 부패 혐의도 받고 있다. 좌파 진영의 대선후보로 유력한 룰라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의 지지율로 대선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선 전까지 항소심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룰라는 출마가 가능하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재집권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룰라의 꿈이 좌절될 수도 있다. ‘노동자 대통령’이라는 그의 신화도 사라질 공산이 크다.

    좌파 진영의 대표인 노동자당은 룰라외 다른 대선후보는 없다면서 배수진을 치고 있다. 반면 우파 진영 후보들은 이번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테메르 대통령과 우파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브라질사회민주당의 제라우두 아우키민 상파울루 주지사, 주앙 도리아 상파울루 시장 등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또 극우 성향인 기독교사회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연방 하원의원, 우파민주당의 호드리구 마이아 연방 하원의장, 브라질 사상 첫 흑인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조아킹 바르보자 변호사, 환경운동을 통해 ‘아마존의 여전사’로 불리는 마리나 시우바 전 연방 상원의원도 대권에 도전할 계획이다. 아무튼 대선 판도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후보나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인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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