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사회

신선설농탕 10년 운영하면 퇴출 ‘갑질’?

특별한 문제없는데도 가맹해지   길 건너편에 직영점 차리기도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07-25 14: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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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를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본사에서 계약한 지 10년이 됐다며 일방적으로 가맹해지 통보를 해왔습니다. 사정해도 소용없었어요. 시세보다 훨씬 낮은 권리금을 부르면서 가게를 본사에 넘기라고 하더라고요. 공정거래위원회, 구청 등 백방으로 알아봐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대요. 하지만 이게 말이 됩니까.”

    신선설농탕 서울 목동 파리공원점은 2007년 김용하 씨가 20년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퇴직금에 대출을 껴서 문을 연 가게다. 부인과 아이 셋이 달린 그는 쉬는 날도 없이 가게를 착실히 키워나갔다. 이듬해 한 방송사 고발프로그램에서 신선설농탕의 설렁탕에 땅콩가루와 치즈가루가 들어간다고 보도해 고객 항의가 빗발쳤고 매출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해는 마가 꼈는지, 연말에는 광우병 파동으로 그나마 있던 손님마저 발길을 뚝 끊었다. 그래도 어렵사리 연 가게를 접을 수 없어 그는 묵묵히 장사를 했다.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동네 주민들이 애용하는 가게가 되면서 수익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신선설농탕 전국 매장 가운데 매출 상위권에 들던 안산점이 가맹계약 10년 차가 되자 본사가 가맹해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불안한 마음에 “우리도 가맹해지되는 거냐”고 본사 측에 물었고 “문제없이 운영하면 가맹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본사 “기업은 도덕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때 안산점이 폐점하는 걸 보니 너무 불안했어요. 본사 직원한테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기업은 도덕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올해 초 10년 전 계약했던 날로부터 딱 90일 전에 가맹해지 통보가 왔습니다. 해지 날짜가 5월 연휴라 일주일만 더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요. 계약 마지막 날 본사에서 나와 로고가 박힌 물품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부 다 가져갔죠.”



    10년간의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김씨는 “점주들 사정은 외면하면서 겉으로 사회봉사하는 착한 기업인 척 포장하는 본사가 너무도 괘씸하다. 본사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선설농탕 경기 북수원점도 마찬가지다. 2007년 6월 가맹점을 연 상옥자 씨도 3월 서면으로 가맹해지 통보를 받았다. 본사를 철석같이 믿던 그는 가맹해지는 상상도 못 한 터라 충격이 더 컸다.

    “2년 전 간판에 문제가 있어 본사 측에 몇백만 원을 주고 새로 교체했어요. 지난해에는 천장에 문제가 생겨 저녁 장사를 접고 공사를 했죠. 어떤 바보가 가맹해지를 앞둔 가게에 그런 시설투자를 하겠어요. 매년 재계약하는데, 올해 초 재계약 때만이라도 언질을 해줬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거예요. 가맹해지 3개월 전 통보하고 가게를 본사 측에 넘기라는데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그는 지난해 가을 암 선고를 받았다. 본사에 알리면 폐가 될까 염려돼 조용히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다. 가맹해지 통보를 받았을 때 몸을 추스르던 터라 다른 가게를 알아볼 여력이 없어 1년만 말미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본사 상무도, 대리도 제가 아프다는 사정을 다 알았지만 계약 연장을 안 해줬어요.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어렵사리 돼지국밥집을 열자 닷새 뒤 100m 떨어진 건물에 본사 직영점 오픈 계약을 하더라고요. 본사는 우리 가게를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 했어요. 네 번이나 찾아와 권리금을 제시했는데 그 돈으로는 다른 가게를 차릴 수 없어 거절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단골손님을 다 가져가겠다는 심산인 거죠.”

    그나마 김씨와 상씨는 설렁탕이 아닌 칼국수, 돼지국밥 등 다른 음식점을 차려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맹해지된 서울 노원점주는 본사가 인근에 직영점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설렁탕집을 차렸다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본사가 노원 직영점을 오픈하면서 10년 전 가격으로 할인행사까지 하는 바람에 타격이 더 컸다.

    장사가 잘되는 가맹점에 대한 신선설농탕 본사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적은 권리금을 주고 넘겨받아 직영점으로 전환하거나 인근에 직영점을 열어 기존 고객을 흡수하는 것. 2015년 안산점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경기 용인 수지점과 서울 광진 자양점도 모두 직영화됐다. 이들은 모두 가맹해지를 3개월 앞두고 통보받아 차선책을 찾지 못한 채 본사에 가게를 넘겼다. 목동 파리공원점주였던 김씨는 “본사는 앞으로 가맹사업을 안 할 거라며 기존 가맹점을 모두 정리하고 있다.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점주들을 내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선설농탕이 10여 년 전 가맹사업을 시작한 게 세무조사를 받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부터였어요. 점주들이 가게를 키우면서 신선설농탕이 다시 안정화됐고 본사는 서울 이태원동에 빌딩까지 세웠죠. 그러고 나니 이제는 가맹점을 버리는 거예요. 책임 있는 임원을 만나 얘기라도 듣고 싶어요.”



    ‘10년 동안 가맹점 보호’ 법 규정이 발목 잡아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상 본사는 가맹계약을 맺고 10년 동안은 가맹점에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일방적으로 가맹해지를 할 수 없다. 이는 10년 동안이라도 가맹점주가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도록 2007년 가맹사업법을 개정해 만든 최소한의 법적 조치였다. 그러나 이 법에는 10년이 경과할 경우 본사가 가맹계약을 이어가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결국 점주를 보호하고자 만든 법령이 점주들에게 독이 돼 돌아간 셈이다.

    경기 북수원점주였던 상씨는 “소송도 관련법이 없어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2015년 본죽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질타를 받자 결국 본사가 가맹해지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김태훈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관련 법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본사가 가맹점주를 상대로 계약해지 관련 가처분신청을 하면 법원에서는 본사의 손을 들어줘요. 지금도 10년을 빌미로 계약을 해지하는 업체가 많죠. 현재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에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가맹점주들의 주장에 대해 하성민 신선설농탕 상무는 “9년 전부터 회사는 더는 가맹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가맹사업법상 10년이 지난 매장들에 계약해지 통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맹사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가맹점 고객들의 서비스 불만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직영점과 편차가 매우 컸고, 가맹점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본사에 소송을 하겠다는 고객도 있었다. 그런 부분들을 회사 차원에서 직접 관리하고자 가맹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가맹해지를 한 노원점, 목동 파리공원점, 북수원점 등에 대해 “해당 가맹점들은 서비스 문제가 제기됐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점주들은 “본사에서 실시하는 서비스만족도 조사에서 평균 중위권에 들었던 지점”이라며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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