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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영광을 팔아 미래의 전설을 사볼까

‘부시맨’ 김성길, 그리고 지명권 트레이드의 추억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현재의 영광을 팔아 미래의 전설을 사볼까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김성길. [동아DB]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김성길. [동아DB]

‘부시맨’ 김성길(63)을 기억하시나요? 

네, 가네모토 세이키치(金本誠吉)라는 일본 이름도 있던 그 재일교포 언더핸드 투수 맞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주로 패전 처리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1987년 중반 삼성 라이온즈의 부름을 받아 한국 프로야구 무대로 건너왔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9년간 1승 7패 2세이브밖에 못 했던 김성길은 1987년 11경기에 나와 국내 무대 적응을 거친 뒤 1988년 8승 4패 6세이브를 거두고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습니다.


지명권 트레이드, 처음에는 애물단지 처리용

한국 무대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롯데 자이언츠와 1승 1패로 맞섰던 1991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이 경기 삼성 선발투수 성준(57)이 롯데 4번 타자 ‘자갈치’ 김민호(58)에게 2점 홈런을 맞자 당시 삼성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성근(77) 감독은 성준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김성길을 올렸습니다. 김성길은 연장 13회까지 12와 3분의 1이닝 동안 189구를 던졌지만 경기는 결국 3-3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경기 다음 날 동아일보는 ‘36세의 노장 김성길의 꺼질 줄 모르는 투혼에 삼성 팬들은 눈물겨워 했(다)’고 썼습니다. 문제는 투혼으로 포장한 혹사도 결국 혹사일 뿐이라는 것. 김성길은 마무리 투수였지만 이해 정규리그 때 이미 188과 3분의 1이닝을 던진 상태였습니다. 



김성길은 이듬해(1992) 70이닝을 던져 1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14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그해 11월 23일 ‘학다리’ 신경식(58)과 함께 당시 막내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됩니다. 그때 삼성에서 이 둘을 내주는 대가로 받은 건 현금과 신인 선수 지명권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신경식을 내주고 4000만 원을 받았고, 김성길을 내준 대가로 받은 게 1993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권이었습니다. 

트레이드 합의 다음 날 열린 이해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은 2차 2순위로 동국대 정영규(50)를 선택해 김성길의 트레이드 상대는 결국 정영규가 됐습니다. 이것이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현역 선수와 신인 지명권을 맞바꾼 트레이드였습니다. 

정영규는 1993년 4월 19일까지 타율 1위(0.414), 출루율 1위(0.564), 장타력 2위(0.552)를 기록하는 등 반짝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이에 ‘쌍방울은 화병이 날 판이고 삼성은 즐거움을 감추느라 표정이 묘하다’는 언론보도도 나왔지만 결국 타율 0.257, 11홈런, 41타점으로 그해를 마감했습니다. 1994년에는 타율 0.236, 2홈런, 6타점에 그쳤고 그해 12월 1일 정경훈(47)과 함께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됐습니다. 

그렇다고 쌍방울이 웃었던 것도 아닙니다. 김성길 역시 1993년 26경기에 나와 2승 5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3.93을 기록한 뒤 현역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렇게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 별다른 소득 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로 제일 재미를 본 구단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호시탐탐 프로야구 진입 기회를 노렸지만 기존 구단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프로야구 리그를 만들겠다며 1994년 11월 28일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합니다.


지명권으로 리그 최고 수준 대어 확보

1996년 현대 유니콘스의 ‘괴물신인’ 박재홍(오른쪽)이 3회 초 3점 홈런을 날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30홈런-30도루 클럽 가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1996년 현대 유니콘스의 ‘괴물신인’ 박재홍(오른쪽)이 3회 초 3점 홈런을 날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30홈런-30도루 클럽 가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동아DB]

그리고 ‘돈다발’을 앞세워 선수 싹쓸이에 나섰습니다. 예를 들어 피닉스는 연세대 4학년이던 박재홍(46)에게 계약금으로 4억3000만 원을 안겼는데 이는 ‘야생마’ 이상훈(48)이 1993년 LG 트윈스로부터 받은 당시 최고 계약금 1억8800만 원과 비교하면 약 2.3배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이후 1995년 9월 21일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유니콘스를 창단하면서 피닉스 선수들의 처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당시 대졸 선수는 대부분 고교를 졸업할 무렵 이미 연고 팀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피닉스 측은 이들을 이적료 없이 지명받은 구단으로 보내주는 대신 계약금을 돌려받겠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따라서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가 광주일고 졸업생 박재홍을 데려가려면 4억3000만 원을 피닉스에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해태 측은 이 돈을 물어주기 어려웠고(또는 아까웠고), 결국 1996년 2월 28일 박재홍에 대한 지명권을 유니콘스에 넘겨주는 대신 투수 최상덕(48)을 받아오는 트레이드에 합의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유니콘스에서 해태 대신 피닉스에 4억3000만 원을 물어주는 방식이었지만 어차피 그 돈이 그 돈이었습니다. 

박재홍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1996년 타율 0.295, 30홈런(1위), 108타점(1위), 36도루(4위)를 기록했고 기자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뽑혔습니다. 프로야구에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개설한 건 이해 박재홍이 처음이었습니다. 

박재홍은 이후 2002년까지 현대에서 뛰면서 타율 0.292, 176홈런, 621타점, 167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프로야구에서 박재홍보다 홈런을 많이 친 건 이승엽(42·삼성·255홈런) 한 명뿐이고, 박재홍보다 도루가 많은 선수도 정수근(42·두산 베어스·330도루), 전준호(50·당시 현대·190도루), 유지현(48·LG·189도루) 등 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승엽은 이 7년 동안 도루를 28개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박재홍보다 도루가 많은 세 선수가 때린 홈런을 다 합쳐도 82개로 박재홍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히어로즈 선발투수 마일영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스포츠동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히어로즈 선발투수 마일영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스포츠동아]

이렇게 가난한 구단 ‘씨앗 도둑질’로 재미를 본 현대는 2000년 신인 드래프트 때는 아예 ‘현질’을 시도합니다. 쌍방울에서 대전고 왼손 투수 마일영(38)을 2차 전체 1순위로 지명하자 현금 3억 원을 주고 마일영을 데려온 겁니다. 그러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인터넷 블로그 ‘최형석의 야구 이야기’에 따르면 이 트레이드는 이전 사례와 달리 사전 조율 절차 없이 현장에서 진행된 데다, 당시 외환위기로 쌍방울이 팀의 존폐조차 불투명할 만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 문제가 됐습니다. 쌍방울은 이미 김기태(50), 김현욱(49), 박경완(47) 같은 주축 선수를 현금을 받고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한 상태였습니다.


지명권 트레이드 드디어 부활

이에 KBO는 전력 불균형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마일영 사례는 인정하되 그 뒤로는 지명권 트레이드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규정을 손질했습니다. 이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는 프로야구에서 지명권 트레이드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달라집니다. KBO가 올해 5차 이사회를 통해 최대 2장까지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다시 규정을 손질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현금 트레이드는 금지지만 선수와 지명권을 바꾸는 건 가능합니다. 당장 우리 팀에는 필요하지 않으나 다른 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를 내주고 미래 전력을 받아올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스포츠에서는 멈춰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현재와 미래를 바꿀 때는 서로 다른 셈법을 쓰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나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프로야구를 보면서 쌓이는 추억도 많아질 겁니다. 빨리 (부활 이후) 첫 번째 지명권 트레이드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주간동아 2019.09.06 1205호(창간기념호①) (p104~106)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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