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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돼지도 행복한 세상

[책 읽기 만보]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인간도, 돼지도 행복한 세상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창비/ 192쪽/ 1만5000원

우리나라 돼지 99%는 평생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동물을 흙에서 기를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분뇨가 지하수나 하천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보통의 돼지는 창문이 없는 시멘트 축사에서 분말 사료만 먹다 도축장으로 가는 날 처음 햇빛을 보고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전직 군인이자 여행작가 이력이 있는 저자는 7년 전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농촌으로 이주한다. 귀농이나 귀촌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목가적 풍경을 떠올리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농촌에는 도시에서 떠밀려온 각종 기피 산업시설이 있는데, 축산업도 그중 하나다. 그가 귀농한 충청도에는 국내 최대 축산단지가 있다.

전국에서 돼지가 가장 많이 사는 동네. 이는 곧 사료를 싣고 오는 화물차와 돼지를 싣고 가는 화물차가 종으로 횡으로 끊임없이 달린다는 얘기다. 그곳의 안개 낀 아침은 분뇨 냄새 가득한 아침을 뜻했다. 귀촌 후 축산동물과 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목격한 저자는 채식을 시작하는 한편, 이런 고민에 빠진다. ‘잡식동물인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동물을 학대하는 축산 방식이 문제라면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자연양돈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기로 한다. 돼지에게 깨끗하고 넓은 마당을 제공하고, 농가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건강한 사료를 먹이며 키우는 것이다. 인근 농업학교에서 흑돼지 세 마리를 분양받기로 한 날, 처음 본 돼지는 그가 상상한 백일 지난 새끼 돼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1㎏으로 태어난 돼지가 16주가 되면 75㎏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첫날 한 마리가 울타리를 탈출해 보리밭에서 추격전을 벌인 이후 돼지에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들이 코믹하게 펼쳐진다. 그럼에도 첫 번째 돼지를 잡는 날 그가 느낀 것은 죄책감이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싼값에 고기를 양껏 먹으려면 공장식 축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저자는 삼겹살과 목살만 선호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비인기 부위도 소비한다면 돼지 전체 마릿수를 줄일 수 있고, 자연양돈 방식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가 살아 있는 동안 받는 불필요한 고통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세 마리 돼지가 떠난 이듬해 봄, 마당에는 토마토 싹이 났다. 돼지는 토마토를 먹으며 자랐고, 토마토는 돼지 똥을 양분 삼아 싹을 틔운 것이다. 하나의 삶이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경이로운 순환은 그렇게 계속된다.





주간동아 1294호 (p64~64)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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