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

한밤,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빠지다

더위 식혀주는 브라케토 다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8-10 11: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밤,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빠지다
    선명한 루비색 위로 떠오르는 하얀 기포. 입안을 가득 채우는 산딸기와 장미 향기.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하며 함께 마셨다는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 와인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갈 때마다 브라케토 다퀴를 배에 한가득 싣고 갔다고 하니, 이 와인이 그들에겐 진정한 사랑의 묘약이었나 보다.

    브라케토 다퀴는 이탈리아 북동부 피에몬테(Piemonte) 주에서 만드는 발포성 레드 와인이다. 로마시대에는 이 와인을 Vinum Acquense라고 불렀는데, 당시 귀족들은 이 와인에 강력한 최음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로마가 패망하면서 Vinum Acquense의 인기도 사그라지고 그 이름도 잊혔지만 피에몬테의 아퀴 테르메(Acqui Terme) 마을에선 Vinum Acquense의 전통을 살려 브라케토 다퀴를 생산하고 있다.

    브라케토 다퀴는 다른 품종을 섞지 않고 브라케토 포도로만 만든다. 일교차가 큰 아퀴의 기후는 더운 낮엔 포도 안에 당분을 축적하고 서늘한 밤엔 진한 향을 만들도록 돕는다. 석회암과 모래가 많은 토양은 포도에 섬세한 맛을 더해준다. 그 덕에 아퀴에서 생산하는 브라케토는 진한 향과 달콤함, 우아함까지 갖추고 있다.

    레드 와인이면서 달콤하고 기포도 있는 브라케토 다퀴. 레드 와인으로는 결코 흔하지 않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떻게 한 와인 안에 모두 담은 것일까. 루비색은 포도를 으깬 뒤 포도껍질을 이틀간 포도즙에 담가 그 붉은빛이 배어들게 한 것이다. 단맛은 포도즙 안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변하기 전 발효를 멈춤으로써 와인 안에 잔당을 남겨서 얻는다. 발효는 압력탱크에서 진행하는데, 발효하는 동안 이산화탄소가 날아가지 않고 와인에 녹아들어 기포를 만든다.

    한밤,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에 빠지다
    브라케토 다퀴는 기포 강도에 따라 프리잔테(Frizzante)와 스푸만테(Spumante)로 나뉜다. 프리잔테는 기포가 약하고 부드러워 일반 코르크 마개로도 막을 수 있지만, 스푸만테는 기포가 강해 샴페인처럼 버섯 모양의 코르크를 써야 한다. 브라케토 다퀴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6~8도다. 차갑게 마셔야 기포의 톡 쏘는 맛이 오래 유지되고 브라케토 다퀴의 향긋함도 한층 더 발랄하게 느껴진다.



    브라케토 다퀴는 알코올 도수가 5~6%로 낮아 하루 중 어느 때라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주말 오전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긴다면 차가운 브라케토 다퀴를 프렌치토스트나 팬케이크에 곁들여보자. 차나 주스와는 또 다른 상큼함이 느껴진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기는 파티에 내놓아도 좋다.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마시기에도 그만이다. 레드 와인은 좀처럼 디저트와 어울리지 않지만 브라케토 다퀴는 단맛이 있어 과일과 케이크는 물론 초콜릿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브라케토 다퀴는 한식 안주와 함께해도 좋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매운맛과 부딪히지 않고 입안에 남은 맵고 짠맛을 기포가 씻어주기 때문이다.

    브라케토 다퀴는 음미하며 마시기보다는 가볍고 편하게 즐기는 사랑스러운 와인이다. 가격도 2만~3만 원대로 저렴한 것이 많아 부담이 없다. 시원한 브라케토 다퀴 한 잔으로 잠시나마 더위를 잊어보는 것. 말복 더위를 향긋하게 물리치는 꽤 괜찮은 여름나기가 아닐까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