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한 장면.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핀천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각색된 영화다. 앤더슨 감독은 2012년 작 ‘마스터’로 ‘미래의 거장’을 예약한 중견감독인데,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그에 대한 기대가 과장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영화 배경은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다. 누아르의 전형처럼, 도입부에서 사립탐정 닥(호아킨 피닉스 분)은 예상치도 않게 금발미녀인 옛 애인(리스 위더스푼 분)의 방문을 받는다. 그녀는 지금 토건재벌과 사랑에 빠져 있는데, 이 남자가 납치 위험에 처했으니 구해달라는 것이다.
자기 곁을 떠난, 사랑했던 여인이 갑자기 나타난 첫 장면부터 영화는 핀천의 몽상적인 공간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닥은 대낮부터 대마초를 너무 많이 피웠기 때문인지, 지금 자기 앞에 등장한 여인이 진짜인지, 아니면 환영인지 잠시 의심하는 눈치다. 그래서 옛 애인은 마치 공중에 살짝 떠서 걸어오는 것처럼 표현된다. 도입부부터 관객은 꼼짝없이 영화가 안내하는 꿈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주인공 닥의 테마 음악 ‘과거로의 여행’을 부른 .가수 닐 영.
흥미롭게도 이런 악취 나는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환각이다. 영화는 탐정 닥의 도피주의적 환각 속에 ‘영혼의 순수함’을 심어놓았다. 세상은 히피세대의 순수함을 비웃는 영리한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닥은 여전히 시대를 부정하고 자기 세대의 가치를 고집하는 외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의도적으로 세상과 거리를 둔 닥의 냉소는 오염된 세상에 대한 자기방어라는 것이다. 히피세대의 상징 같은 가수 닐 영의 노래 ‘과거로의 여행(Journey Through The Past)’, 그리고 펑크록 밴드 캔의 ‘비타민 C(Vitamin C)’ 등이 닥의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는데, 당대 주류에 반항하던 청년들의 노래는 말하자면 탐정 닥의 개성이자, 감독 앤더슨이 지지하는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