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경기 안성 농협안성교육원에서 열린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찬 축산업’ 구현을 위한 비전 선포식.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과 이기수 농협중앙회 축산경제사업부문 대표이사(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참가했다.
이기수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는 최근 축산업계 미래를 얘기하면서 중국 고대의 국민 계도서 ‘관자(管子)’에 나오는 내용을 자주 인용한다. 축산농가가 매년 수만 호씩 사라지는 현실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또한 한국 농업의 미래 핵심이 축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젊고 유능한 축산인력을 확보하고 키우는 일에 농협과 한국 농업의 100년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사업부문(농협 축산경제)이 5월 22일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찬 축산업’이란 비전을 선포하고 1000억 원의 유통자금을 젊은 축산인 확보에 투입키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농협 축산경제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2020년까지 축산농가 5100호를 육성키로 했다. 젊은이가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축산업의 생산기반을 근본부터 강화해나가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표이사는 “축산업에 대한 배타적 분위기가 확산하고 각종 민원 및 규제까지 겹쳐 축산농가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축산업 현실이지만, 축산업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식량산업이자 생명안보산업”이라며 “유능한 청년들이 생활하는 농촌, 젊은이가 찾아오는 축산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책적 배려와 함께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젊은 축산인을 키워야 하는 까닭
경북 경주에서 G-farm을 운영하는 김곤민 대표(가운데)와 김천생명과학고를 졸업하고 농장에 취업한 조진현 씨, 베트남 근로자 빈 씨(위). 강원 횡성 정진영농조합법인의 정수정 이사가 농장에서 썼던 신발들을 수세 소독하고 있다.
축산농가 고령화에 대비한 영농승계자 확보 비율도 저조한 편이다. 2014년 12월 축사실태조사 연구 분석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한우 농가의 경우 후계농 비율이 9.8%, 낙농 29.%, 양돈 29.9%, 육계 14.9%, 오리 13%, 산란계 24.1%에 불과했다. 영농승계자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9.4%만 ‘승계자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답했고, 나머지 50.6%는 ‘승계자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산농가 감소 경향도 심각했다. 2000년 55만8200호에 달했던 축산농가는 2014년 12월 현재 12만9000호로 줄었다. 특히 소규모 한우사육 농가의 이탈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만 해도 13만 농가에 이르던 것이 2014년 7만 농가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 닭의 경우는 2000년 21만8000호에서 지난해 12월 3000호로 줄었다.
김재필 농협 축산경제 차장은 “향후 축산농가 경영주의 고령화 문제는 축산업의 영속성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표출할 개연성이 높고, 나아가 국가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며 “지속가능한 미래 축산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선 산업에 대한 하드웨어적 지원과 함께 이를 수행할 젊고 유능한 축산 후계인력 양성이라는 소프트웨어적인 지원이 함께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축산업의 고령화와 이탈 현상에도 우리 농업에서 축산업의 비중은 크다. 2013년 축산물 생산액은 농업생산액 44조6000억 원 가운데 36.4%인 16조2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1인당 소비량은 육류 42.7kg, 달걀 12.1kg, 우유 71.3kg에 달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전체 농업 중 축산물 생산액 비중은 2030년 50%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돼 농촌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축산업 생산 유발액으로 따지면 연간 58조 원으로 56만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후방 효과가 있다는 게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이다. 축산업이 식량주권 및 사회 안정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자 농촌경제의 핵심 성장산업이라는 게 축산업 종사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농업이 힘들고 소득이 불안정하다는 선입관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축산업은 본인 능력 여하에 따라 높은 소득이 보장될 수도 있으며 도시근로자 수준 이상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한국농수산대 졸업생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축산업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한국농수산대 졸업생 가구 평균소득은 6814만 원에 달하며, 그중 축산학과 졸업생의 평균 가구소득은 9071만 원(대가축학과 7303만 원, 중소가축학과 1억840만 원)으로 기업체 대졸 신입사원 초임연봉(평균 3048만 원)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축산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축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하는 사례가 적잖다.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회계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정수정(34·여) 씨는 2011년 7월 아버지가 하던 양돈농장(정진영농조합법인)에서 일하려고
8년간 다니던 삼성물산 재무팀을 그만뒀다. 그는 구제역 등으로 휘청거리던 영농법인의 이사를 맡아 농장 경영에 현대적 경영방식과 인력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알고 보면 고소득 보장하는 축산업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찬 축산업’ 현장을 찾은 이기수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앞줄 가운데).
정씨가 이사로 있는 강원 횡성군의 ‘정진농장’은 대지가 4만2975㎡에 달하며 키우는 돼지만 5600마리(모돈 450마리)에 이른다. 여기에 농장장 1명과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등 외국인 근로자 6명이 일하며 돈사만 24개에 이른다. 정씨는 분뇨처리, 생산일지 같은 각종 정보와 사료, 약품재고 등을 일일이 컴퓨터로 정리 정돈하고, 직원들에겐 월급 외에 별도로 모돈 마리당 연간 출하 마릿수인 MSY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기 시작했다. 직원 숙소도 개선하고 소독시스템도 바꿨다. 정씨의 이런 노력으로 정진농장 돼지들은 도드람포크라는 브랜드를 얻게 됐고 MSY도 21~22마리로 올라갔다. 일부는 군대에 납품하기도 한다.
경북 경주와 영천에서 ‘G-farm’을 운영하는 김곤민(39) 씨는 2006년 양돈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홀로서기를 한 경우다. 축산업에 뛰어든 지 10년도 안 된 지금, 2개 농장을 합쳐 모돈 510마리를 키우고 있고 MSY가 한때 24.8마리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원가를 절감하고 꾸준히 공부한 결과였다. 그는 8년간 지역 학교 등에 장학금을 주며 축산 후계자들을 키워오고 있고, 졸업생 가운데 일부를 농장에 직접 고용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미래 축산인을 키우고 있는 것. 축산후계자 양성에 대한 그의 지론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담보, 보증 여력이 없더라도 교육을 철저히 받고 의지가 있는 축산 2세대에겐 지금보다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5100농가 축산물 생산액 1조3000억 원
농협 축산경제가 축산업의 생산기반 강화를 위해 선제적으로 시작한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찬 축산업’은 김씨 지론처럼 축산 2세대에 대한 지원이 주축이 되고 있다. 젊은이가 농촌으로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 환경오염산업이란 부정적 인식, 초기 투자자본 과다, 각종 규제로 인한 진입장벽 같은 현안들을 함께 넘을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협 축산경제는 △젊고 유능한 전문 축산인력의 신규 창업 지원 △휴·폐업 및 고령화에 따른 유휴 축사를 신규 축산농가에 분양 및 임대하는 축사은행사업 △소규모 친환경 축산단지 조성사업 △중소규모 번식우 위탁농가 육성사업 △축산 귀농·후계농 종합상담센터 운영 △한우도우미(헬퍼) 사업 △한우사랑운동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한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그 중요성을 알리고자 일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한우뱅크사업을 실시하고, 한우신탁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런 사업들을 통해 농협 축산경제는 2020년까지 신규 후계농 5100농가를 새롭게 육성할 계획이다. 이 농가들이 생산할 축산물은 1조3000억 원에 달하고, 농가소득은 25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후방 연관 효과까지 모두 따지면 생산유발액은 2조9000억 원, 고용인원은 4만4000명에 달한다.
이기수 대표이사는 “후계축산인력 육성은 사람 중심 정책으로, 기존 자본 투입 중심 정책에서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큰 사업이므로 정부, 국회, 학계 등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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