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한국을 첫 방문한 할리우드 배우 마크 러팔로는 국내 팬들의 환대에 ‘비틀스가 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4월 16일 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들은 국내 팬들의 환대에 큰 기쁨을 얻고 돌아갔다. 특히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었는데, 17일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도 팬들이 열렬히 환호하자 당황한 듯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그는 28일(현지시간) 미국 ABC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 앤드 마이클’에 출연해 “한국에서 비틀스급 인기를 누렸다”며 팬들의 모습을 흉내 내고 “한국 팬들은 물만 마셔도 열광하고 환호했다. 내 아들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으로 이사 가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2 “서울에서는 매일매일이 생일 같다.”
영국 대표 밴드 오아시스의 전 리더 노엘 갤러거는 4월 3~4일 서울에서 공연한 후 4월 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공연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슨 일을 했기에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다. 환호소리가 정말 컸다. 직접 들어봐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팬들이) 모든 기타 솔로와 브라스 파트까지 ‘라라라’ 하며 따라 부른 게 최고였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팬들에게 격한 환영을 받아본 해외 스타들에게 광고 카피처럼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도 “열정적으로 잘 노는 민족”이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국내 팬들의 공연 관람 문화는 ‘떼창(관객이 단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 코리아’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5월 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가진 비틀스의 주역 폴 매카트니도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들뜬 모습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남긴 그는 이튿날 트위터에 ‘환상적이었다. 한국 팬들은 어떤 팬들보다도 우리를 가장 열렬하게 환영했다’는 글을 올리며 식지 않은 감동을 표현했다.
국내 팬들의 떼창과 열렬한 환호는 거장 폴 매카트니에게도 큰 감동을 줬다.
마룬5, 뮤즈, 메탈리카, 퀸, 비욘세, 에미넴 외에도 수많은 스타가 국내 공연 후 팬들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내한공연을 안 해본 스타는 있어도 한 번만 한 스타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팬들은 좀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적 스타들의 공연을 만끽하고, 스타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식 환호에 흠뻑 젖어든다. 너도나도 입을 모아 ‘최고’로 꼽는 국내 팬들은 언제부터 준비된 관객이 된 걸까.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전 피겨 선수 김연아. 남다른 열정으로 유명한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최근까지도 소치겨울올림픽의 판정 문제에 항의하고 있어 화제가 됐다.
국내 팬들의 열정은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계에서도 국내 팬들의 열과 성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붉은악마’의 단체 축구 응원은 이미 유명하고, 야구와 피겨스케이팅도 마찬가지다.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선수가 연기할 때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 치고 환호하며 인형과 꽃을 투하하는 격한 반응으로 유명하다. 과거 국내에서 쇼를 선보인 한 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스케이트를 타면서 그렇게 열정적인 응원은 처음 봤다. 또 한국에 오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추진력과 지구력도 상당하다. 일부 피겨스케이팅 팬은 2월 201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열린 서울 목동아이스링크를 찾아 2014 소치겨울올림픽 여자 싱글 부문에서 김연아가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밀려 은메달을 획득한 판정에 대해 항의 의사를 표현했다. 팬들은 경기장 내에서는 ‘소치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는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2017년 2월까지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소치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판정 조작에 대해 제소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소책자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일본 스포츠 매체에서는 ‘1년이 다 돼가는데 항의 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게 놀랍다’고 평가했다.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대한빙상경기연맹도 못 한 일을 해내기도 했다. 2008년 팬들의 힘으로 김나영의 ‘컵 오브 러시아’ 출전권을 따냈던 것.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피겨스케이팅 갤러리’ 팬들은 컵 오브 러시아에 출전하는 선수 2명이 기권해 빈자리가 생긴 걸 알고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문의하고, 러시아빙상연맹 측에 직접 전화하는 한편 신청서를 기간 내 보내는 것을 도와 러시아로부터 초청권을 얻어내기도 했다.
출범 34년을 맞은 프로야구계에도 전문가급 지식을 자랑하며 프런트의 운영 문제부터 심판의 판정 오류까지 꼬집어내는 ‘매의 눈’이 수두룩하다.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가를 열창하고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국내 야구팬들의 응원 문화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응원 문화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 야구, 떠들썩한 함성과 오징어(In Korean Baseball, Louder Cheers And More Squid)’라는 기사를 통해 국내 프로야구 응원 문화를 주목했다. 국내 야구팬들은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조직적으로 응원을 펼치며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풍선막대를 두드린다. 음악과 춤, 노래와 함성으로 가득 찬 국내 야구장 응원 문화는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모습이다. 올해는 사상 최초 10구단 체제로 830만 관중 시대를 예고하고 있어 야구팬들의 기대도 상당하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팬은 일본 팬과 비교하면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숙한 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분위기였지만 대규모 축구 응원 등을 통해 학습이 돼 이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좀 더 쉬워졌고, 몰입해서 즐기는 문화가 조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의 공연 등이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큰 호응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젊은 층일수록 음악을 듣고 손뼉만 치기보다 몰입해 즐기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그게 ‘떼창’ 등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봤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람은 감동적인 장면에 대한 반응도 개별적으로 하기보다 집합적으로 하는 문화적 요소를 갖고 있다. 또한 그런 요소가 있다 해도 다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닌데, 아무래도 직장 모임, 군대 같은 곳에서 직제적인 훈련이나 학습이 잘돼 있는 편이다 보니 그런 면이 집단적인 응원, 행동 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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