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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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해외 스타들도 인정한 ‘떼창 코리아’…열정 지나쳐 팬 갑질도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5-22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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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4월 한국을 첫 방문한 할리우드 배우 마크 러팔로는 국내 팬들의 환대에 ‘비틀스가 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 “한국에서 비틀스 멤버가 된 기분이었다.”

    4월 16일 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들은 국내 팬들의 환대에 큰 기쁨을 얻고 돌아갔다. 특히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었는데, 17일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도 팬들이 열렬히 환호하자 당황한 듯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그는 28일(현지시간) 미국 ABC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 앤드 마이클’에 출연해 “한국에서 비틀스급 인기를 누렸다”며 팬들의 모습을 흉내 내고 “한국 팬들은 물만 마셔도 열광하고 환호했다. 내 아들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으로 이사 가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2 “서울에서는 매일매일이 생일 같다.”

    영국 대표 밴드 오아시스의 전 리더 노엘 갤러거는 4월 3~4일 서울에서 공연한 후 4월 6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공연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슨 일을 했기에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다. 환호소리가 정말 컸다. 직접 들어봐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팬들이) 모든 기타 솔로와 브라스 파트까지 ‘라라라’ 하며 따라 부른 게 최고였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팬들에게 격한 환영을 받아본 해외 스타들에게 광고 카피처럼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도 “열정적으로 잘 노는 민족”이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국내 팬들의 공연 관람 문화는 ‘떼창(관객이 단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 코리아’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5월 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가진 비틀스의 주역 폴 매카트니도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들뜬 모습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남긴 그는 이튿날 트위터에 ‘환상적이었다. 한국 팬들은 어떤 팬들보다도 우리를 가장 열렬하게 환영했다’는 글을 올리며 식지 않은 감동을 표현했다.



    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국내 팬들의 떼창과 열렬한 환호는 거장 폴 매카트니에게도 큰 감동을 줬다.

    어디서든 노래와 춤 빼놓을 수 없어

    마룬5, 뮤즈, 메탈리카, 퀸, 비욘세, 에미넴 외에도 수많은 스타가 국내 공연 후 팬들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내한공연을 안 해본 스타는 있어도 한 번만 한 스타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팬들은 좀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적 스타들의 공연을 만끽하고, 스타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식 환호에 흠뻑 젖어든다. 너도나도 입을 모아 ‘최고’로 꼽는 국내 팬들은 언제부터 준비된 관객이 된 걸까.

    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전 피겨 선수 김연아. 남다른 열정으로 유명한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최근까지도 소치겨울올림픽의 판정 문제에 항의하고 있어 화제가 됐다.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역사서를 편찬할 때 다른 민족을 열전에 포함해 서술해왔다. 역사평론가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중국인들이 고대부터 자신들과 다른 것, 특이한 풍속이 있으면 다른 민족에 대한 내용도 열전에 포함해 서술해왔다”며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기고, 길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등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등도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겼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후한서’ 중 ‘동이열전’에는 서문에서부터 ‘동이족들은 (중략)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밤에는 남녀가 떼 지어 노래 부른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5월이면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 술자리를 베풀고 모여서 노래하고 춤춘다. 10월에 농사를 끝낸 후에도 이렇게 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과연 가무의 민족이라고 할 만한 기록이다.

    국내 팬들의 열정은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계에서도 국내 팬들의 열과 성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붉은악마’의 단체 축구 응원은 이미 유명하고, 야구와 피겨스케이팅도 마찬가지다. 국내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선수가 연기할 때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 치고 환호하며 인형과 꽃을 투하하는 격한 반응으로 유명하다. 과거 국내에서 쇼를 선보인 한 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스케이트를 타면서 그렇게 열정적인 응원은 처음 봤다. 또 한국에 오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추진력과 지구력도 상당하다. 일부 피겨스케이팅 팬은 2월 201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열린 서울 목동아이스링크를 찾아 2014 소치겨울올림픽 여자 싱글 부문에서 김연아가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밀려 은메달을 획득한 판정에 대해 항의 의사를 표현했다. 팬들은 경기장 내에서는 ‘소치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는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2017년 2월까지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소치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판정 조작에 대해 제소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긴 소책자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일본 스포츠 매체에서는 ‘1년이 다 돼가는데 항의 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게 놀랍다’고 평가했다.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대한빙상경기연맹도 못 한 일을 해내기도 했다. 2008년 팬들의 힘으로 김나영의 ‘컵 오브 러시아’ 출전권을 따냈던 것.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피겨스케이팅 갤러리’ 팬들은 컵 오브 러시아에 출전하는 선수 2명이 기권해 빈자리가 생긴 걸 알고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문의하고, 러시아빙상연맹 측에 직접 전화하는 한편 신청서를 기간 내 보내는 것을 도와 러시아로부터 초청권을 얻어내기도 했다.

    출범 34년을 맞은 프로야구계에도 전문가급 지식을 자랑하며 프런트의 운영 문제부터 심판의 판정 오류까지 꼬집어내는 ‘매의 눈’이 수두룩하다.

    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가를 열창하고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국내 야구팬들의 응원 문화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응원 문화다.

    한국의 응원이 독보적인 이유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 야구, 떠들썩한 함성과 오징어(In Korean Baseball, Louder Cheers And More Squid)’라는 기사를 통해 국내 프로야구 응원 문화를 주목했다. 국내 야구팬들은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조직적으로 응원을 펼치며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풍선막대를 두드린다. 음악과 춤, 노래와 함성으로 가득 찬 국내 야구장 응원 문화는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모습이다. 올해는 사상 최초 10구단 체제로 830만 관중 시대를 예고하고 있어 야구팬들의 기대도 상당하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팬은 일본 팬과 비교하면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숙한 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분위기였지만 대규모 축구 응원 등을 통해 학습이 돼 이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좀 더 쉬워졌고, 몰입해서 즐기는 문화가 조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의 공연 등이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큰 호응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젊은 층일수록 음악을 듣고 손뼉만 치기보다 몰입해 즐기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그게 ‘떼창’ 등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봤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람은 감동적인 장면에 대한 반응도 개별적으로 하기보다 집합적으로 하는 문화적 요소를 갖고 있다. 또한 그런 요소가 있다 해도 다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닌데, 아무래도 직장 모임, 군대 같은 곳에서 직제적인 훈련이나 학습이 잘돼 있는 편이다 보니 그런 면이 집단적인 응원, 행동 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타 만드는 건 팬심? 원조 팬 앞세워 제작진에 ‘감 내라 배 내라’도

    어서 와,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자신의 팬들과 언쟁을 벌인 배우 조승우(왼쪽).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새 멤버로 합류한 제국의아이들(ZE:A) 광희.

    “스타는 신이다. 관객은 스타를 그런 존재로 만든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저서 ‘스타’에서 한 말이다. 팬들끼리는 우스개로 유재석을 ‘유느님’(유재석+하느님), 김연아를 ‘연느님’(김연아+하느님)이라고 부르지만, 때때로 팬들이 스타를 응원하는 모습은 신을 숭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팬들은 스타를 바라보는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능동적이며 압도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열성적인 팬은 매니저나 홍보팀 직원을 자처한다. 스타가 새 프로그램에 합류했을 때 “우리 배우님 잘 봐달라”며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현장에 밥차를 지원하고 스타 이름으로 기부와 봉사활동을 벌이는 건 흔한 풍경이 됐다. 영국 문화연구자 존 피스크는 ‘팬덤의 문화경제학’에서 팬덤문화 내부의 차이를 ‘차별’과 ‘구별’로 설명한다. 팬들은 팬덤 안팎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는 경향이 있는데, 좋아하는 스타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과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 주류문화와 구별 짓는 한편, 좋아하는 작품이나 스타를 다른 작품이나 스타와 위계적으로 차별화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니지먼트사나 제작사, 더러는 스타도 팬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팬들이 같은 팬이나 작품을 관리하려 드는 이상 현상도 생겨났다. 최근 뮤지컬계에서는 조승우가 자신의 팬들과 싸움을 벌여 화제가 됐다. 전체 팬이 아닌 디시인사이드 ‘조승우 갤러리’ 팬들을 자신의 팬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5월 4일 조승우는 해당 커뮤니티에 ‘그동안 이곳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욕먹고 상처를 받았다. 새로운 문화라고 하지만 나는 욕이 난무하는 이곳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곳이 나의 안티 갤러리가 되어도 상관없다. 처음부터 나와 함께한 나의 진짜 팬들이 좋다’는 글을 남겼다. 이는 전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러 온 팬들에게 “갤(갤러리)을 하지 마라”고 말해 논란이 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제가 말씀드린 처음부터 함께해온 팬이란 무명일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응원해준 ‘몽룡이네’와 ‘위드승우’를 말씀드린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조승우 갤러리’ 팬들은 조승우가 말한 ‘진짜 팬’들은 배우를 등에 업고 좋은 좌석의 뮤지컬 티켓을 독점하는 등 특권을 누리면서 팬들 사이에서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승우 팬카페에서 그의 공연 앞자리 티켓을 얻으려면 초연 티켓을 인증하거나, 같은 공연을 10회 이상 예매한 티켓을 제시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신규 팬들의 진입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예능계에서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식스맨 프로젝트’가 단연 뜨거운 감자였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은 골수 시청자가 많은 프로그램인데, 일부 팬이 지나치게 프로그램에 간섭하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눈총을 받았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하차한 멤버 노홍철 대신 6번째 멤버를 뽑는 ‘식스맨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일부 팬은 “노홍철 말고 다른 연예인은 안 된다”며 프로젝트 자체를 반대하거나, 유력한 후보였던 장동민의 과거 언행을 밝혀내 중도 하차시키기도 했다. 이후 ‘식스맨’으로 최종 발탁된 광희에 대해서도 예원과 같은 소속사라는 이유로 반대 서명을 벌이는 등 제작진까지 쥐락펴락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기존 팬이 신규 유입되는 팬이나 프로그램 제작 상황을 통제하려 드는 이유는 뭘까.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가입 순서, 학번, 군번 등을 따지는 한국의 서열주의 문화가 팬덤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봤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원조 팬인데 너희는 뭐야’ 같은 태도는 성숙하거나 바람직한 팬 문화는 아니다. 팬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람이 스타의 관심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스타를 공유하고 즐거워하기보다 팬들을 배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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