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가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고 말한 후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중진의원에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권에 근접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 여의도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대권으로 가기 위해선 친박(친박근혜)계가 가진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어떤 형식으로든 뛰어넘어야 할 산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김 대표는 가장 주목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인사 7명이 포함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라는 악재를 뚫고 4·29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수도권 3곳을 싹쓸이하는 압승을 이끌어낸 결과다. 특히 오랜 기간 여권의 선거 승리 공식이던 ‘박근혜 마케팅’ 없이 사실상 자력으로 일궈낸 승리였고,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첫 맞대결에서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
탄탄해진 그의 입지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차기 대선(대통령선거)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0% 안팎에 머물던 김 대표가 최근 20%를 훌쩍 넘어서는 일이 잦아졌고, 이에 따라 2·8 전당대회를 전후해서부터 3개월 가까이 압도적인 1위를 고수하던 문 대표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대표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에는 여전히 ‘설마’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새누리당 한 비례대표 초선의원은 “카리스마가 있고 당대표직도 무난하게 수행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김무성 대통령’ 이미지가 금방 떠오르지는 않고 뭔가 좀 어색하다”고 했다. 유력 대권주자인 건 분명해 보이지만 ‘2%’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인 김무성’의 이미지를 확장해줄 수 있는 인재풀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박 대통령만 해도 진작부터 친박계 핵심 인맥이 형성됐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계와 각 분야 전문가 그룹에서도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씨줄날줄로 엮여 있었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실질적인 대권구도의 큰 흐름은 내년 4월 20대 총선 결과에 따라 지금과는 판이해질 가능성도 적잖다. 그런데도 이 측근 의원은 “대세론 비슷한 게 형성된 뒤엔 오지 말래도 사람이 모여들겠지만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로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부터 대권 청사진을 그려갈 인재들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김 대표는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뒤 당직 인선 과정에서 인물난에 시달렸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무총장에 기용하려다 무산된 게 단적인 예다. 유 원내대표는 이미 19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를 목표로 자신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김 대표는 그에게 당 살림을 맡기면서 ‘김무성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후 이군현 사무총장과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김학용 당대표 비서실장, 김성태·서용교 의원 등을 축으로 ‘김무성 사단’의 일단이 꾸려졌지만, 서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만한 전략가가 없다는 게 당 안팎의 여전한 평가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은 당대표직 수행 말고는 다른 데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면서도 “앞으로 함께 일할 유능한 사람들을 묶어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과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김학용 당대표 비서실장, 김성태ㆍ서용교 의원 등 ‘김무성 사단’으로 불리는 의원들(왼쪽부터).
김 대표가 대권 고지를 밟기 위해 넘어서야 할 가장 큰 난관이 박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집권여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하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다.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이 같은 상황을 “집권 3년 차 여당 대표로서의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야권 유력주자들이나 여권 내 다른 잠룡들은 민감한 현안을 두고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넓혀갈 수 있지만,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도우면서 현실 권력과의 차별화도 시도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자칫 잘못하면 스텝이 꼬일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불발을 전후로 한 김 대표의 대처를 찬찬히 되짚어보면 여러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김 대표는 130일 넘게 여야가 이해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해내며 어렵게 도달한 합의문에 직접 서명했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의 상향 조정을 명기하는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친박계가 강력 반발하자 최종 본회의 통과를 유보했다. 그 스스로 “청와대 입장과 당내 갈등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김 대표는 청와대의 눈치나 보는 무력한 여당 대표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다수 전문가가 이번 공무원연금 합의안에 대해 다소 미흡하지만 사회적 대타협의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점에 비춰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연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논의 연계를 부정하며 정치권의 합의 노력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그는 이를 정면으로 치받는 대신 협상 재량권을 요구하며 “합의안에 대해 정부의 공식 평가를 내놓으라”는 다소 소극적인 반항을 했는데, 이 역시 그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김 대표는 지난해 당권을 쥔 이후부터 최근까지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9월 중국 방문 중에 개헌론을 불쑥 꺼냈다 하루 만에 공개 사과를 하며 물러선 게 단적인 예다. 정치권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이기도 한 김 대표는 ‘경제 블랙홀’이라는 박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사석에서 “개헌은 물 건너갔다”고 얘기한다.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증세 논쟁으로 불이 붙자 어느 순간 “세출 구조개혁이 먼저”라며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유턴하기도 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과정에서 김 대표가 보인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고 2012년 대선 승리 일등공신이지만, 2009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을 기점으로 이미 수차례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금도 공개석상에서는 “한 번도 친박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얘기하지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대표가 친박계의 거부감을 희석할 수 있느냐가 대선가도의 최대 과제”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의 또 다른 과제는 바로 ‘중원’ 표심을 얻을 수 있느냐다. 총선과 대선 승부의 분수령이 중원이라는 데 대해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올해 초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이 경쟁적으로 중원 장악 프로젝트를 내놓은 건 이 때문이다. 특히 양측은 공히 중원의 개념을 수도권, 충청권 등 지역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고 이념적 중도층, 중산계층, 4060세대 등으로 확대했다. 이는 어느 측면에서든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가 강한 대선주자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의미다.
지역·계층·연령별 중원 민심 확보
2월 16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왼쪽)가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거부감은 그의 대권가도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당장 총선에서 승리해야 이듬해 대선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총선은 당내 경선과 달리 중원 싸움이어서 당대표의 강경보수 이미지는 표의 확장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비주류 투톱’의 한 축인 유 원내대표가 안보·국방 분야에선 강보수이지만 경제·사회 분야에선 중도개혁 색채가 강해 김 대표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더라도 자칫 유 원내대표에게 구심점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간 제 나름 노력해온 경제전문가 이미지 역시 유 원내대표의 부상 이후 별반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공약으로 중도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팽팽했던 대선 판도를 유리하게 끌어갔고, 일방적인 우세가 예상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중도실용을 앞세웠다. 김 대표가 경쟁자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까지 포용해 보수혁신을 주장한 것까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별다른 결과를 내놓지 못한 마당에 여전히 ‘보수 아이콘’ 전략을 유지하는 건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 측도 이 대목을 고민하고 있다. 한 측근 재선의원은 “지난해 7·30 재보선이나 이번 4·29 재보선에서 연달아 수도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건 사실이지만 총선과 재보선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수도권과 40, 50대 유권자들의 인식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데, 솔직히 아직은 뭐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 구심점 전략’으로 가기만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거다 싶은 전략이 확립되지 못한 현실, 그것이 김 대표가 안고 있는 고민의 또 다른 일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