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의 탄생<br>이광주 지음/ 한길사/ 336쪽/ 1만7000원<br>나의 유럽 나의 편력<br>이광주 지음/ 한길사/ 492쪽/ 1만9000원
유럽의 문화와 지성사, 특히 교양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온 저자(인제대 명예교수)가 유럽의 살롱, 클럽, 카페의 자유로운 풍경이 빚어낸 ‘담론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17세기 초 프랑스 살롱문화를 연 사람은 랑부예 후작부인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개인 서재를 갖고 있던 랑부예 부인은 저택에 ‘문예 살롱’을 꾸렸다. 그의 살롱에는 귀족과 정치가, 문인과 철학자가 모여들었다. 시와 문예작품이 낭독되고 음악이 연주되고 연극이 공연됐다. 랑부예 부인의 살롱이 파리 사교계에서 큰 화제가 되자 상층 부르주아 부인들도 앞다퉈 살롱을 열었다. 이처럼 프랑스 살롱은 교양 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공론(公論)의 장이자 귀족적 품위와 지성의 만남, 근대적 교양문화의 탄생, 문예공화국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영국에서는 남자들만의 클럽문화가 발달했다. ‘클럽(club)’의 어원은 라틴어 키르쿠스(circus)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귀족 청년들이 모여 스포츠를 즐긴 것을 가리킨다. 영국 클럽은 커피하우스(카페)에서 파생했는데, 신사들은 커피하우스 안에 칸막이를 치고 자신들만의 클럽을 차렸다. 클럽문화의 최대 수혜자는 정치인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와 역사적 비전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정략적이고 당파적인 담론을 자유롭게 펼쳤고, 이것이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독일 살롱문화는 베를린에서 꽃피웠다. 18세기 계몽주의 영향으로 자유에 대한 신념을 지니게 된 유대인들이 살롱문화를 이끌었다. 특히 부유한 경영인이자 계몽사상가 모제스 멘델스존(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이 자신의 집에서 연 독서협회가 독일 살롱문화의 원형이 됐다. 이후 수많은 살롱이 꾸려졌는데 대부분 부유하고 교육받은 유대인 여성이 주인이었던 점도 눈에 띈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차와 커피 보급이 담론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다.
“좋은 카페란 커피나 티를 맛보며 이야기와 담론을 자유로이 즐기는 곳,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나는 사교장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반듯한 시대란 사람들을 매료하는 좋은 카페, 카페문화가 꽃핀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담론문화는 국가의 품격과 직결된다. “국가의 품격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경우와 다름없이 서로 이웃에게 귀 기울이며 반듯한 말씨와 예절을 두루 갖추는 것을 일컫는다”는 저자의 말은 그와 반대인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비속어가 난무하고, 절제를 잃은 표현이 판을 친다. 시대착오적 국가주의자들이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을 적으로 압박한다. 저자가 이 시점에 ‘담론의 탄생’을 발표하며 서문에서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라고 쓴 이유다. 저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반듯한 사회, 좋은 사회란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라고. ‘담론의 탄생’과 함께 2005년 초판을 찍은 ‘나의 유럽 나의 편력’ 개정판도 선보였다.
맛있는 한 끼
주영욱 지음/ 덴스토리/ 240쪽/ 1만4000원
소비자와 시장을 분석하는 마케팅 리서치 전문가의 시선으로 서울 맛집 47곳을 찾았다. 일본 삿포로 스타일로 양고기를 참숯에 구워 내는 ‘라무진’(마포구), 닭볶음탕 하면 떠오르는 ‘목포집’(강남구), 스페인 음식 타파스를 먹을 수 있는 ‘미카사’(용산구) 등 그가 안내한 곳은 믿음직스럽다. 47곳을 차근차근 순례하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먹고 소통하는 ‘맛있는 삶’을 시작해보자.
재난 반복 사회 : 대한민국에서 내 가족은 누가 지킬 것인가?
김석철 지음/ 라온북/ 248쪽/ 1만3000원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부터 2014년 세월호 침몰까지 대형재난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저절로 ‘내 가족은 누가 지킬 것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원자력 사고 방지 및 핵 안보 전문가로 활동했던 저자가 ‘실패의 자산화’를 제안했다. 즉 선진국들도 대형재난을 겪었지만 확실한 후속대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것.
제국 : 평천하의 논리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책세상/ 448쪽/ 2만 원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인에게 제국은 불편한 주제이며 ‘나쁜’ 것이다. 그러나 독일 정치학자인 저자는 ‘반제국주의’로 집약되는 단선적 시각을 넘어, 제국을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정치적 조직 원리의 하나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책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다양한 제국의 유형과 건설 과정을 설명하고 제국 이후 시대인 오늘날 ‘민주적 제국’이 다시 세상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뇌, 신을 훔치다
KBS 파노라마 신의 뇌 제작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288쪽/ 1만3000원
지난 300여 년 동안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애써왔지만, 반대로 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가장 노력한 것도 과학이다. 급기야 최첨단 과학은 사라진 신의 거처를 찾아냈다. 그곳은 천상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뇌’. KBS 파노라마 ‘신의 뇌’ 제작진은 21세기에도 신이 건재한 이유를 탐색한 1년의 긴 여정을 책으로 엮으면서 미방영분 내용도 포함했다.
조선의 중인들
허경진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400쪽/ 1만8000원
한시에 미쳐 20대를 보내고 선조들의 삶과 고전문학 활동을 연결하는 공부에 천착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조선의 문예부흥과 근대화를 주도한 중인(中人)에 주목했다. 한양 인왕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시문학동인 ‘송석원시사’, 중국 ‘천자문’을 대신할 교과서 ‘아희원람’과 ‘계몽편’을 편찬한 출판편집인 장혼,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기자 오세창 등 흥미로운 중인들의 삶이 펼쳐진다.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88쪽/ 1만800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저자가 고양이, 사람, 생쥐가 주인공인 동화를 발표했다. 저자는 실제 자신의 아들(막스)과 동물보호단체에서 입양해온 고양이(믹스)를 주인공으로 이 작품을 썼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누가 누구의 주인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막스와 믹스. 어느 날 찬장을 뒤지러 온 생쥐 멕스가 믹스에게 말을 걸며, 고양이와 쥐의 우정이 시작된다.
이중톈 국가를 말하다
이중톈 지음/ 심규호 옮김/ 라의눈/ 424쪽/ 2만 원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의 진나라부터 한, 당, 송, 원, 명, 청 등 통일 제국을 이끈 과거 왕조의 역사를 돌아보며 현재의 문제를 살피고 내일의 나아갈 바를 제시한 책. 중국의 제국을 중심으로 정치이념, 관료제도, 법률에 이르기까지 정치 시스템을 전 방위로 분석함으로써 국가라면 꼭 해야 할 것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개정판.
화정
박찬영 지음/ 리베르/ 320쪽/ 1만5500원
광해군은 탁월한 외교정책을 펴고 대동법을 시행한 현군(賢君)일까, 새어머니 인목대비를 폐하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혼군(昏君)일까. 임진왜란 직후 51세 선조가 19세 인목대비에게 새장가를 가 태어난 정명공주는 82세까지 장수하며 17세기 조선사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 ‘화정(華政)’은 서궁 유폐 시절 그가 남긴 글씨로 ‘화려한 정치’ 또는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