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0월 24일은 제70회 ‘유엔의 날’이다. ‘신생국’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1월 19일 유엔 회원국 가입신청을 냈지만,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 “유엔 가입은 분단 고착화”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다 42년 만인 1991년에서야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해 숙원을 이뤘다. 이후 93년 유엔아동기금(UNICEF) 한국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우리나라는 유엔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최초의 회원국이 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내년 유엔 창립 70주년에 앞서 우리가 먼저 기념해야 할 날이 있다. 10월 20일 한국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ESCAP) 가입 60주년 기념일이다. 이날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 겸 ESCAP 사무총장이 방한해 정부 고위 관계자를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사실 ESCAP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지만, ESCAP은 아·태 지역을 포괄하는 역내 최대 규모의 유일한 정부 간 기구로 그 구실이 매우 컸다. 남상민 ESCAP 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의 설명이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기 전 수혜국 처지였을 때 정부와 유엔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ESCAP이었다. ESCAP은 우리 정부가 국내 현실을 알리고, 각종 원조를 요청하는 창구이자 경제 부흥 노하우를 전달받는 통로이기도 했다. 주로 경제 관료들이 ESCAP 회의에 참석하거나 경제 기틀을 짤 때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공여국으로서 ESCAP을 통해 역내 빈곤 국가를 돕고 있으니 한국과 ESCAP의 인연은 참 깊다.”
유엔 산하 기구 중 가장 큰 규모
ESCAP은 1947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직속 5개 지역경제위원회 가운데 하나로 아·태 지역 경제 개발과 지역 내 국가 간 경제 관계 유지 및 강화를 목적으로 창립됐다. 본부는 태국 방콕에 있으며, 아·태 지역 62개 회원국을 두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의 경제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만큼 유엔 산하 지역기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직원 수만 600명이다.
ESCAP이 유독 한국과 인연이 깊은 것도 ESCAP이 전쟁으로 피폐된 국가를 효율적으로 원조하고자 설립됐기 때문이다. 1946년 원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로 설립됐지만 교육, 보건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면서 74년 ESCAP으로 개편됐고, 지역도 아시아·극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넓어졌다. 설립 당시 10개 회원국 가운데 중국, 인도, 필리핀, 태국 등 4개국만 개발도상국(개도국)이었고 나머지 6개국(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소련, 영국, 미국)은 선진국이었지만, 현재는 24개 아시아 지역 국가와 14개 최빈개도국이 53개 정회원국의 과반을 차지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ESCAP 내 위상도 함께 커졌다. ESCAP의 정규 예산은 5200만 달러. 비정규 예산으로 기술협력사업을 위해 국제기구와 공여국으로부터 기금을 받는데, 지난해 비정규 예산 1950만 달러 가운데 한국이 370만 달러를 내 최고 기여 국가가 됐다. 전문 직원 122명 중 10명이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기 전 한국인으로서 처음 유엔 산하기구 수장이 된 인물도 2000~2007년 김학수 전 ESCAP 사무총장이었다. 김 전 사무총장은 빈곤 퇴치와 환경 문제, 여성·복지 문제 개선에 적극 나서 ‘실행력을 갖춘 조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1년과 2010년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ESCAP 총회가 열렸고, 2010년 5월과 2006년 6월 각각 ESCAP 동북아사무소와 유엔 아시아·태평양정보통신기술교육센터(APCICT)가 인천 송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대처해야 할 문제들이 새롭게 나타나면서 ESCAP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아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강한 동북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환경 보호와 개발 논리를 내세우는 회원국 간 이해 충돌을 조율해야 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도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처와 고령화 문제 역시 ESCAP이 넘어야 할 새로운 산이다.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아·태 지역의 경제 성장동력을 개별 경제가 주도했다면, 미래의 성공은 지역 국가들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얼마나 통합하고 협력하는지에 좌우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역 연계성(regional connectivity)’으로 이러한 숙제를 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국가별 간극을 줄이기 위해 지역 연계성을 강화하는 경제 성장 해법을 모색한 것이다.
이를 위해 ESCAP은 중국이 제안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으로 지역 인프라 투자자금과 공급 부족 문제(ESCAP 추정 연간 8000억~9000억 달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동북아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과 에너지 및 물류 인프라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ilk Road Express)’ 구축 노력도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안으로 평가된다.
‘아시안 하이웨이’ 사업
킬라파티 라마크리쉬나 ESCAP 동북아사무소 대표는 동북아사무소 활용론을 강조한다.
“동북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지역 통합과 협력의 필요성을 의제로 제시하는 점은 긍정적이다. 국경을 넘어선 경제·사회적 교류는 지역 공동체 인식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데, 동북아는 각국이 모여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는 포괄적 다자기구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회원국들도 ESCAP 동북아사무소를 지역 협력의 경험을 쌓는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표지판에 ‘AH1’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이러한 지역 협력과 통합을 위한 ESCAP의 노력의 산물이다. ESCAP은 1959년부터 회원국의 수도와 관광지, 주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노선을 이은 도로망인 ‘아시안 하이웨이(AH)’ 사업을 펼쳐왔다. 일본 도쿄에서 출발해 부산-경주-대전-서울-개성-평양을 지나 중국 베이징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AH1’과 부산-동해안-북한-러시아로 이어지는 ‘AH6’ 등으로 명명해 아·태 지역의 공동 번영을 꿈꾸는 각국의 협력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은 “한국 정부와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이뤄온 모든 성과, 특히 유엔의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됐고, 개도국의 모범 사례가 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며 “유엔은 새천년발전목표(MDG)를 잇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2015년부터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청사진이 될 것이다. SDG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적, 지역적인 활동을 펼치는 데 한국이 선도적 구실을 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유엔 창립 70주년에 앞서 우리가 먼저 기념해야 할 날이 있다. 10월 20일 한국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ESCAP) 가입 60주년 기념일이다. 이날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 겸 ESCAP 사무총장이 방한해 정부 고위 관계자를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사실 ESCAP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지만, ESCAP은 아·태 지역을 포괄하는 역내 최대 규모의 유일한 정부 간 기구로 그 구실이 매우 컸다. 남상민 ESCAP 동북아사무소 부소장의 설명이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기 전 수혜국 처지였을 때 정부와 유엔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ESCAP이었다. ESCAP은 우리 정부가 국내 현실을 알리고, 각종 원조를 요청하는 창구이자 경제 부흥 노하우를 전달받는 통로이기도 했다. 주로 경제 관료들이 ESCAP 회의에 참석하거나 경제 기틀을 짤 때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공여국으로서 ESCAP을 통해 역내 빈곤 국가를 돕고 있으니 한국과 ESCAP의 인연은 참 깊다.”
유엔 산하 기구 중 가장 큰 규모
ESCAP은 1947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직속 5개 지역경제위원회 가운데 하나로 아·태 지역 경제 개발과 지역 내 국가 간 경제 관계 유지 및 강화를 목적으로 창립됐다. 본부는 태국 방콕에 있으며, 아·태 지역 62개 회원국을 두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의 경제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만큼 유엔 산하 지역기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직원 수만 600명이다.
ESCAP이 유독 한국과 인연이 깊은 것도 ESCAP이 전쟁으로 피폐된 국가를 효율적으로 원조하고자 설립됐기 때문이다. 1946년 원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로 설립됐지만 교육, 보건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면서 74년 ESCAP으로 개편됐고, 지역도 아시아·극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넓어졌다. 설립 당시 10개 회원국 가운데 중국, 인도, 필리핀, 태국 등 4개국만 개발도상국(개도국)이었고 나머지 6개국(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소련, 영국, 미국)은 선진국이었지만, 현재는 24개 아시아 지역 국가와 14개 최빈개도국이 53개 정회원국의 과반을 차지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ESCAP 내 위상도 함께 커졌다. ESCAP의 정규 예산은 5200만 달러. 비정규 예산으로 기술협력사업을 위해 국제기구와 공여국으로부터 기금을 받는데, 지난해 비정규 예산 1950만 달러 가운데 한국이 370만 달러를 내 최고 기여 국가가 됐다. 전문 직원 122명 중 10명이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기 전 한국인으로서 처음 유엔 산하기구 수장이 된 인물도 2000~2007년 김학수 전 ESCAP 사무총장이었다. 김 전 사무총장은 빈곤 퇴치와 환경 문제, 여성·복지 문제 개선에 적극 나서 ‘실행력을 갖춘 조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1년과 2010년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ESCAP 총회가 열렸고, 2010년 5월과 2006년 6월 각각 ESCAP 동북아사무소와 유엔 아시아·태평양정보통신기술교육센터(APCICT)가 인천 송도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대처해야 할 문제들이 새롭게 나타나면서 ESCAP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아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강한 동북아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환경 보호와 개발 논리를 내세우는 회원국 간 이해 충돌을 조율해야 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도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처와 고령화 문제 역시 ESCAP이 넘어야 할 새로운 산이다.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아·태 지역의 경제 성장동력을 개별 경제가 주도했다면, 미래의 성공은 지역 국가들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얼마나 통합하고 협력하는지에 좌우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역 연계성(regional connectivity)’으로 이러한 숙제를 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국가별 간극을 줄이기 위해 지역 연계성을 강화하는 경제 성장 해법을 모색한 것이다.
이를 위해 ESCAP은 중국이 제안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으로 지역 인프라 투자자금과 공급 부족 문제(ESCAP 추정 연간 8000억~9000억 달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동북아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과 에너지 및 물류 인프라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ilk Road Express)’ 구축 노력도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안으로 평가된다.
‘아시안 하이웨이’ 사업
킬라파티 라마크리쉬나 ESCAP 동북아사무소 대표는 동북아사무소 활용론을 강조한다.
“동북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지역 통합과 협력의 필요성을 의제로 제시하는 점은 긍정적이다. 국경을 넘어선 경제·사회적 교류는 지역 공동체 인식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데, 동북아는 각국이 모여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는 포괄적 다자기구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회원국들도 ESCAP 동북아사무소를 지역 협력의 경험을 쌓는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표지판에 ‘AH1’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이러한 지역 협력과 통합을 위한 ESCAP의 노력의 산물이다. ESCAP은 1959년부터 회원국의 수도와 관광지, 주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노선을 이은 도로망인 ‘아시안 하이웨이(AH)’ 사업을 펼쳐왔다. 일본 도쿄에서 출발해 부산-경주-대전-서울-개성-평양을 지나 중국 베이징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AH1’과 부산-동해안-북한-러시아로 이어지는 ‘AH6’ 등으로 명명해 아·태 지역의 공동 번영을 꿈꾸는 각국의 협력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샴샤드 악타 유엔 사무차장은 “한국 정부와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이뤄온 모든 성과, 특히 유엔의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됐고, 개도국의 모범 사례가 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며 “유엔은 새천년발전목표(MDG)를 잇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2015년부터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청사진이 될 것이다. SDG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적, 지역적인 활동을 펼치는 데 한국이 선도적 구실을 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