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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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로 관심 끌고 풍자로 웃기고

‘무한도전’의 위기관리법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입력2014-06-09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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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로 관심 끌고 풍자로 웃기고

    ‘무한도전’의 차세대 리더를 뽑는 국민투표 ‘선택 2014’에 출마한 멤버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보여준 위기관리법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준다. 최근 끊임없이 제기돼온 위기설로 몸살을 앓던 이 예능 프로그램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하며 ‘국민예능’으로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들어 ‘무한도전’은 ‘국민예능’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해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과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밀려 시청률 꼴찌를 기록한 적이 있고, 멤버 중 한 명인 그룹 ‘리쌍’의 길이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탄에 젖었을 때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하차하는 일도 겪었다. 시청률도, 대외 이미지도 하락세를 타던 ‘무한도전’이 과거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오랜 골수팬조차 의심하기 시작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무한도전’은 정공법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세대 시청자 참여 유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치며 총 4회에 걸쳐 ‘차세대 리더’를 뽑는 기획 ‘선택 2014’를 준비한 것. 국민 MC로 사랑받는 유재석이 중심을 잡고 있는 현 시스템에 의문을 던지고, 유재석은 물론 박명수, 노홍철, 정준하, 정형돈, 하하 등 다른 멤버에게도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점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기획은 ‘무한도전’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진 셈이다.

    이 기획이 특별한 점은 무엇보다 시청자 참여를 적극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선택 2014’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걸맞게 실제 선거를 방불케 하는 형태로 진행된 이 기획에는 시청자 45만8398명이 참여했다. 5월 17, 18일 사전투표와 22일 본 투표 등 총 사흘에 걸쳐 진행한 투표에 참가한 인원수다.



    사전투표는 전국 10개 도시 11개 투표소에서, 본 투표는 온라인과 함께 서울 2개 지역 투표소에서 진행했는데, 각 투표소에는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찾아왔다. 새벽 6시부터 줄을 서는 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도 흉내 낼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냄으로써 ‘무한도전’은 ‘국민예능’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증명할 수 있었다.

    위기 속에서도 이토록 많은 시청자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기획의 촘촘한 전개였다. ‘선택 2014’ 방송 4회 중 첫 회에서 멤버들은 출마선언을 시작으로 공약 발표, 기조연설 토론회를 열었고, 2회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는지 여부로 후보자 검증을 진행한 뒤 길거리로 나가 열띤 선거유세를 펼쳤다. 웃자고 시작한 일이 제법 진지한 틀 속에서 펼쳐지니 지켜보던 시청자도 실제 선거에 참여하는 양 이들이 내놓은 공약을 면밀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투표로 관심 끌고 풍자로 웃기고

    ‘무한도전’이 6·4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한 선거 방송은 시청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약 46만 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유재석이 차세대 리더가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청자 눈길은 6·4 전국동시지방선거로 향했다. ‘무한도전’은 실제 선거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이번 기획의 또 다른 취지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심심찮게 6·4 지방선거를 직접적으로 언급했고, 투표 시간이나 여러 규칙도 이번 지방선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선택 2014’를 바라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생겼으니 바로 정치 풍자다. 후보 검증 과정에서 서로를 헐뜯는 모습, 이행 불가능한 공약을 부르짖는 모습, 인맥만 강조하는 모습, 가식적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외치는 모습, 자기 실리만을 위해 후보 단일화를 선택하는 모습 등 ‘선택 2014’에서 멤버들이 보여준 행태는 실제 정치판에서 펼쳐지는 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치판의 고질적 문제가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재현되는 광경은 시청자에게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사회 풍자에서 웃음은 꽤 강력한 무기다. 웃음 속에 조롱을 쉬이 감출 수 있다는 점에서 희극은 예부터 사회 풍자 기능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대표적인 정치 풍자 예능으로 인기를 모았던 케이블채널 tvN의 ‘SNL 코리아’마저 최근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등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치 풍자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무한도전’은 정치를 프로그램 안에 과감히 끌어들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가 자신의 사회적 구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점에 ‘무한도전’의 이러한 행보는 일종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는 평이다.

    쿨하게 사과하는 정공법 선택

    ‘무한도전’의 오랜 애청자인 한 30대 직장인은 “‘선택 2014’ 특집은 우리의 결정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리얼하게 보여줬다”며 “멤버들의 유치한 말장난이 정치인의 헛소리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거짓 가르침보다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2005년 4월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무한도전’은 지금까지 9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번 ‘선택 2014’ 특집 방송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5월 23일 편성됐던 ‘홍철아 장가가자’ 편에서 멤버들의 여성 비하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위기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겠다는 의지 속에 ‘선택 2014’를 마련한 제작진과 멤버들은 이번에도 정공법을 택했다. ‘선택 2014’ 마지막 회 방송에서 차세대 리더로 뽑힌 유재석이 시청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곤장을 맞은 것이다. 연출자인 김태호 PD 역시 곤장을 맞았다. 선거 과정에서 유재석이 내건 공약, 즉 ‘시청 앞에 곤장을 설치해 잘못했을 때는 따끔하게 맞기’와 맞물리는 절묘한 상황을 통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접한 시청자는 다시 이 프로그램을 끌어안고 웃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무한도전’은 세월호 참사로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된 이후 돌아온 첫 방송에서 이 비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국민의 아픔을 위로하려 한 유일한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웃음뿐 아니라, 아픔과 슬픔 등 국민의 다양한 정서를 모두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지와 책임을 드러낸 것이다.

    쌓인 세월만큼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무한도전’은 늘 영리한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러니 세월만큼 품격도 생겼다. 품격을 갖춘 ‘무한도전’은 그렇게 웃음 끝에 개운한 여운을 남기는 데 성공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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