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고 한다. 드라이버로 250m를 쳐도 1타, 퍼터로 1cm를 쳐도 1타로 계산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드라이버를 아무리 멀리 쳐도 그린에서 3퍼트, 4퍼트를 해버리면 아무 소용없다. 또 드라이버가 덜 맞아도 그린에서 1퍼트로 마무리하면 스코어가 좋아지고 내기에서 돈도 딸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골퍼가 드라이버를 잘 치는 사람보다 퍼트를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몇 년 전까지 프로 무대에서도 이 속설이 통했다. 그런데 최근 이 속설이 흔들리고 있다. 6월 19일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였던 117회 US오픈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번 US오픈에서는 브룩스 켑카(미국)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세계 랭킹 1~3위가 모두 컷오프된 가운데 랭킹 22위였던 켑카는 4라운드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는 US오픈 사상 첫 왼손잡이 우승을 노렸던 브라이언 하먼(미국), 올 시즌 가장 주목받는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를 4타 차로 제쳤다.
그렇다면 그의 우승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정교한 퍼트였을까. 아니다. 정답은 ‘정교한 장타’였다. 상식적으로 정교한 장타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 공이 멀리 나갈수록 정확도는 떨어진다. 클럽 번호가 커질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켑카가 이번 US오픈에서 보여준 통계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이번 대회 기간 72개 홀을 돌면서 퍼트를 123번 해 홀당 평균 퍼트 수가 1.71개였다. 컷을 통과한 선수 가운데 공동 51위다. 68명이 컷을 통과했으니 하위권이다. 그럼에도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높은 그린 적중률이다. 72개 홀을 도는 동안 그는 단 10개 홀에서만 그린을 놓쳤다. 나머지 62개 홀에서는 모두 정타로 그린에 공을 올렸다. 그린 적중률은 86.11%. 컷을 통과한 선수 가운데 단연 1위다. 하먼은 77.78%로 공동 7위, 마쓰야마는 66.67%로 공동 40위다. 그나마 마쓰야마가 준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퍼트가 받쳐줬기 때문이다. 마쓰야마는 이번 대회에서 홀당 1.5개 퍼트로 전체 2위였다. 높은 그린 적중률은 곧 버디를 잡을 기회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켑카는 72개 홀 가운데 21개 홀에서 버디를 잡아 최다 버디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켑카가 그린 적중률에서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면도날 같은 아이언샷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이빙 거리가 길고 페어웨이 적중률이 높았기에 가능했다. 드라이빙 거리에서 평균 322.10야드(약 294m)를 기록해 7위였다. 약간 내리막도 있었지만 4라운드 18번 홀에서는 3번 우드로 379야드를 보내기도 했다. 거리뿐 아니라 페어웨이 적중률에서도 87.50%를 기록해 공동 4위였다. 악명 높은 미국골프협회(USGA)의 코스 관리로 이번 대회가 열린 에린힐스골프클럽(GC)은 길이도 길고, 공이 코스를 살짝만 벗어나도 죽음이었다. 마지막 라운드는 4라운드 중 가장 짧은 7721야드(약 7060m)로 조성됐지만 1라운드 때는 7845야드로 코스가 세팅돼 역대 대회에서 가장 길었다.
켑카보다 비거리가 더 길었던 선수 6명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트레이 멀리낵스(미국)로 공동 9위였다. 참고로 공동 13위를 차지한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자 김시우(22)는 드라이빙 거리 311.20야드(22위)를 기록했다. 거리만 멀리 친다고 다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페어웨이에 안착시키는지도 중요하다. 켑카는 파3홀을 제외한 56개 홀에서 7개 홀을 제외하고 모두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냈다.
특히 승부가 결정된 마지막 라운드에서 켑카는 그린 적중률 94%(17/18)로 1위, 페어웨이 적중률 86%로 공동 6위(12/14), 드라이빙 거리 318.10야드로 7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인 통계와 딱 들어맞는다. 중반까지 공동 1위를 달리다 막판에 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퍼트가 연달아 성공했기 때문이다. 평균 퍼트 수 1.72개는 4라운드 합계와 비슷했지만 순위는 공동 37위로 훨씬 높았다. 마지막 날 그린이 그만큼 더 까다로웠던 것이다.
결국 켑카가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과 함께 골프대회 사상 가장 많은 우승상금인 216만 달러(약 24억6450만 원)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길고 정확한 티샷에서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