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4명, 서울대·성균관대 3명씩
한국은행과 주요 금융지주, 은행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용된 금융권 CEO 총 16명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연세대가 4명(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 김한조 외환은행장,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권선주 기업은행장)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각각 3명씩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 정부에선 1명도 없던 연세대 출신이 이번 정권 들어 4명이나 기용되면서 단숨에 대세를 형성했다.서울대 출신은 5명에서 3명으로 소폭 줄었다. 성균관대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종준 하나은행장, 이순우 우리은행장 등 기존 출신이 유임하면서 이전 수준을 유지했다. 서강대 출신은 1명도 없다가 현 정부 들어 2명(홍기택 KDB산업은행장,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주요 국책은행장에 선임됐다.지난 정권에서 승승가도를 달리던 고려대 출신은 4명(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신충식 NH농협은행장)에서 1명(서진원)으로 대폭 줄었다.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과 윤용로 외환은행장(퇴임 예정)이 물러나면서 소수 정예로 두각을 나타내던 한국외대 출신도 현 정권 들어 종적을 감췄다.출신 지역별로 살펴보면 최다 배출자를 자랑하던 영남 기세가 한풀 꺾였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총 11명이 이 지역 출신이었지만, 현재는 이보다 2명 줄어든 9명 수준이다. 대신 불모지였던 호남(임종룡, 권선주)과 강원(이주열, 임영록)에서 CEO를 각각 2명씩 배출했다.
특히 충청권 인사가 이번에는 1명도 기용되지 못했다. 이전 정권에선 4명(민병덕, 윤용로, 신충식, 김용환)이 충청 출신으로 영남 다음으로 많아 주류를 이룬 바 있다.
금융권을 호령하던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도 찾아보기 힘들다. 강만수 전 KDB산업은행장, 김용환 전 한국수출입은행장, 신동규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 5명에 육박하던 모피아 출신은 현 정권 들어 3명으로 감소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모피아 출신 전임자가 대체로 카리스마 넘쳤다면, 현 정부에서 CEO로 임용한 인사는 비교적 조용하고 온화하다는 평을 듣는다.
현 정부 들어 중앙은행뿐 아니라 17개 시중·특수은행(수협은행 제외) 자리는 모두 민간 출신 인사가 차지했다. 이에 모피아 출신이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결정타는 민간 출신인 이덕훈 행장이 임명된 한국수출입은행장 자리였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몇 안 되는 기획재정부(기재부) 산하기관이다. 기재부는 차관 출신인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강하게 밀었다. 허 전 대사는 기재부 시절 한국수출입은행과 직무 연관성이 높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업무에 깊이 관여했고 해외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관에서 봤을 땐 최적임자였다.
17개 은행 모두 민간 출신 취임
기재부는 혹시 몰라 현직 차관 2명까지 천거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떨어졌다. 한 기재부 출신 인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털어놨다. 한국수출입은행과 더불어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 자리에 기재부 출신 인사의 진출이 무산되면서 이제 모피아 시대가 종식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산하기관이 많은 다른 부처의 고위급은 퇴임 후 재취업이 아직까지는 자유롭다. 기재부와는 분명 대조된다. 기재부에 시선이 집중된 틈을 타 다른 부처 인사나 대통령선거(대선) 캠프 인사가 일종의 ‘반사이익’을 누리는 셈이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끈끈함의 대명사 ‘모피아’라는 말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꼴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모피아 출신 인사의 강점을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업무 추진력과 돌파력, 국익 차원에서 일한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아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고위 공무원까지 했을 정도면 ‘특엘리트’인데 전문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모피아가 사라진 자리에 대선 캠프 출신 등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인사를 기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인 출신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이순우 우리은행장(왼쪽부터).
모피아가 주춤한 틈을 타 금감원 출신이 금융기관 감사와 이사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른바 ‘금피아’가 부활하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3년여 동안 금융권 재취업이 막혔던 금감원 출신이 감사원 인사에게 빼앗겼던 자리를 속속 되찾는 모습이다.
김광식 전 금감원 기업공시국장은 하나은행 감사로 임명됐고, 김성화 전 신용감독국장도 신한카드 감사로 내정됐다. 김준협 전 저축은행 서비스국장은 현대카드 감사로 스카우트됐으며, 지난해 12월엔 이석근 전 부원장보가 신한은행 감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알짜배기인 사외이사로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 사외이사 3명 중 2명을 금감원 출신(전광수 전 금융감독국장, 이명수 전 기업공시국 팀장)으로 채웠다. 삼성카드와 롯데손해보험도 각각 양성용 전 부원장보와 강영구 전 부원장보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석우 감사실 국장은 애초 대구은행 감사직으로 이동이 예정돼 있었지만 낙하산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고사했다.
금감원은 퇴직을 앞둔 간부를 은행, 카드사, 보험사에 감사나 사외이사로 추천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계기로 당시 최수현 금감원 수석부원장(현 금감원장)이 주도해 전·현직 간부를 감사로 내려보내지 못하게 하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퇴직 후 먼저 유관협회 부회장 등의 자리에서 신분을 ‘세탁’해 취업 제한 조항을 빠져나간 뒤 금융권 감사로 자리를 옮기는 편법이 기승했다. 또 금감원 대신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는 감사원 출신들이 금융기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돼왔다.
금융연구원 출신 파워 세력. 이건호 KB국민은행장,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상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왼쪽부터).
현 정부 들어 금융연구원 출신도 새로운 파워 세력으로 등장했다. 대표주자는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미국 퍼듀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금융연구원에서 연구 생활을 했다. 전남대 경영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금융연구원에 복귀한 뒤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정 부위원장 외에도 이상제 상임위원과 임형석 전 국제협력관이 금융연구원 출신이며, 금감원에도 서정호 금융자문관이 자리 잡았다.
은행권에 진출한 금융연구원 출신 가운데 대표 인물은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 출신으로,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을 거쳐 올해 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0여 년 동안 금융연구원에 몸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