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막바지에 이른 신압록강 대교와 중국 측이 인근에 짓는 해관(우리의 세관) 건물, 그 부근에 들어선 ‘싱가포르 성’이라는 이름의 상업단지(왼쪽부터 시계 방향).
“북한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주중 북한대사관. 베이징에 있는 각국 대사관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북한대사관 모습은 그새 크게 달라졌다. 정문 앞에 과거에 없던 철문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철문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으니 대사관의 폐쇄성이 한층 두드러져 보였다.
철문 설치 이유는 일본 언론 때문이라고 했다. 차량이 나오느라 문이 열릴 때마다 고성능 카메라로 대사관 내부를 샅샅이 찍어대는 통에 이를 피하려고 아예 철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북한대사관을 오가는 차량은 문 두 개를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됐다. 문득 첨단장비와 풍부한 인력을 갖추고 북한 취재에 임하는 일본 언론이 떠올랐다.
2년 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북한대사관 관계자와 만났던 카페는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이 없었다. 또 다른 북한 고위급 인사와 만났던 러시아 카페는 사라지는 등 일대가 아예 새롭게 바뀌었다. 따라잡기 어려운 베이징의 변화 속도를 되새기며 12월 15일 단둥으로 가는 에어차이나에 몸을 실었다.
단둥 공항은 낡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향한 곳은 압록강변에 자리한 중롄 호텔. 단둥에 올 때마다 묵었던 곳이다. 객실로 들어서자 단둥 철교인 조중우의교와 신의주, 압록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비로소 북·중 접경지역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방안을 둘러보니 책상에 망원경이 하나 놓여 있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 쪽을 보라고 마련해둔 것이다. 들여다보니 북한 측 건물과 주민들 움직임이 제법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중롄 호텔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은 주변에 경쟁 호텔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 ‘망원경으로 북한 엿보기’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셈이다.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조중우의교’.
단둥 추위는 매서웠다. 아침 기온 영하 15도에 강바람까지 강했다. 두꺼운 옷도 찬바람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람을 안고 걸으며 신의주를 바라봤다. 그곳에도 과거에 볼 수 없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변에 새 건축물이 들어선 것이다. 가로로 길게 늘어선 푸른색 지붕의 낮은 건물. 미끄럼틀처럼 보이는 흰색 시설물도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단둥을 찾은 외국인이나 중국인에게 보여주려는 전시용 시설물일 테지만, 황량하고 낡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신압록강 대교 거의 완공
북한에서 큰일이 벌어질 때마다 세계 언론이 어김없이 단둥으로 모이는 건 대북(對北) 교역이 가장 많은 도시기 때문이다. 단둥은 특히 장성택 라인의 무역일꾼이 다수 진출한 지역이어서 장성택 처형의 후폭풍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단둥 북한 무역상 거리에는 심상찮은 분위기가 가득했다.
낚시용품을 파는 한 중국인 대북 무역상은 “단둥에 있는 북한 관리 중에 낚시광이 꽤 있다”면서 “평소에는 겨울에도 북한 손님이 꾸준히 찾아왔는데, 요즘은 아예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는 정상적으로 운행하지만 북한에서 나오는 차는 통제한다는 얘기였다. 단둥의 필자 취재원은 장성택 처형 직전 장성택 라인의 무역일꾼들이 속속 평양으로 소환됐다고 전했다.
북한 무역일꾼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이들은 북측 사업 파트너로부터 받아야 할 대금이나 물건을 받지 못해 속절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다. 사업 파트너가 장성택 비리에 연루돼 단둥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고스란히 떼일 판이었다. 한 중국인 무역상은 지난해 12월 나오기로 한 북한 근로자들이 아직 못 오고 있다며 발을 굴렀다. 500만 위안, 우리 돈 8억6000만 원가량을 사실상 포기한 대북 무역상도 생겼다.
장성택 처형은 북한의 석탄 수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둥 부두에서 석탄 수송선박 운항이 중단됐다. 현지 주민들은 항상 수북이 쌓여 있던 석탄이 장성택 사태 이후 현저히 줄었다고 전했다. 필자의 단둥 취재원은 최근 인근 군부대에 선양군구에서 파견한 군인들이 증강 배치됐다고 전했다. 이들이 주로 야간에 북한 접경지역 주변을 시찰한다는 것.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한 비상조치였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 대교는 거의 완공된 모습이었다. 강 위로 시원하게 뻗은 다리는 북·중 경제협력의 상징답게 위용을 자랑했다. 단둥 쪽 육지로 이어지는 일부 구간에 마무리 공사가 남았을 뿐이었다. 신압록강 대교는 북·중 교역에 큰 진전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현재 단둥과 신의주는 ‘북·중 우정의 다리’라는 뜻의 조중우의교(단둥 철교)를 통해 교역과 왕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다리는 열차와 자동차가 교대로 통행해 물류이동에 제약이 크다. 신압록강 대교가 완공되면 단둥 철교로는 기차만 다니고 모든 차량은 새 다리를 이용하게 된다. 신의주-단둥 노선이 북·중 교역의 70%를 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교 건설은 두 나라 무역과 물류이동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단둥시는 이에 대비해 세관 건물 이전도 준비하고 있다.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 해관(海關·우리의 세관) 건물이 뼈대를 갖췄다. 교역 급증에 대비해 단둥 철교에 있던 기존 세관을 없애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신압록강 대교에 대한 기대는 주변 지역 개발 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교가 시작하는 도로변에는 ‘싱가포르 성’이란 대규모 상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열기는 압록강 줄기를 따라 황금평 개발구까지 이어진다. 호화 별장과 아파트 단지 등 거대한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었다.
이렇듯 ‘뜨던 분위기’에 장성택 처형이 찬물을 끼얹었다. 당장 9월로 예정된 대교 개통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표적인 친(親)중국파 인사가 처형된 마당에 대교 건설이 기대만큼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근에 투자했던 이들이 후회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으로 쪽박을 차는 이가 속출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황금평 개발구를 둘러싼 이중 철조망(왼쪽)과 출입구.
압록강 하구 황금평 개발구로 향했다. 황금평 안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허리를 굽힌 채 뭔가를 찾는 모습이었다. 개발구 현장은 북·중 두 나라가 설치한 이중 철조망이 굳건히 지켰다. 철조망 사이에는 모두 아스팔트가 깔렸다. 탈북자를 감시하는 중국 경비 병력의 이동통로였다. 철조망 바로 아래에는 자그마한 막사가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중국 군인들이 숨어 감시하는 곳이라고 필자 취재원이 전했다. 이중삼중으로 경계경비다.
차량이 왕래하는 개발구 입구에는 사무실 건물이 완비됐고, 안쪽으로는 직선 차도가 길게 닦였다. 입구 근처에서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굴삭기 점검과 작동연습에 한창이었다. 공사를 위한 인프라는 모두 갖춰진 상태였다. 따지고 보면 준비야 이미 오래전에 마쳤다. 2011년 6월 장성택 당시 조선노동당 행정부장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참석해 성대하게 착공식을 열었다. 이후 2년 반이 지나도록 본격적인 착공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황금평 개발구 주변에는 호화 별장과 아파트, 상업단지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황금평개발구 관리위원회 임시사무실’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띄어 차를 세우고 들어가 봤다. 아직 정식으로 갖춰진 사무실은 아니었다.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 아니면 장성택 처형’의 후폭풍이었을까. 개발구와 주변 일대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이 무렵 북한 당국은 장성택 처형에도 북·중 경제협력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중국인은 별로 없어 보였다. 신압록강 대교와 황금평 개발구에는 중국 측 실망과 우려가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