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이라 어학 실력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도착 일주일 만에 식당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유럽에 간 그는 귀국을 앞두고 한 달간 여행을 다녔다. 박물관, 미술관 견학과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뒤 ‘전공인 불어를 더 열심히 잘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 게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2 2011년 워홀비자로 캐나다에 다녀온 대학 4학년 김학성 씨는 진로를 고민하다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취업 때 기업들이 요구하는 ‘글로벌 인재상’에 맞는 ‘스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내 유학원을 통해 현지 어학원과 숙소를 정한 다음 캐나다로 건너간 그는 두 달간 학원에 다니며 공부에만 집중했다.
한국에서 미리 지불한 학원비 외에 생활비와 숙소비로 준비해간 돈은 300만 원. 하지만 월 80만 원에 달하는 홈스테이 비용 때문에 돈이 부족했던 그는 결국 한국으로부터 돈을 송금받았다. 두 달 동안 어학연수를 끝내고 현지인이 경영하는 커피숍에 일자리를 얻었다.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귀국 전 두 달간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했다.
2012년 4만8496명 젊은이 출국
서울 이화여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워킹홀리데이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외교부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영국은 워홀비자 대신 ‘YMS(청년교류제도)비자’를 발급한다. 워홀비자와 유사하지만 체류기간이 2배 길고 협정 체결 후 5년간 우리 외교부에서 발급하는 정부후원보증서를 갖춰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2012년 6월 협정이 체결된 YMS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내국인은 연간 1000명으로 제한돼 2012년 경쟁률이 3대 1에 달했다.
워홀비자 신청 경쟁률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어권 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호주 워홀러(워홀비자를 가진 사람)가 전체 워홀러의 70%를 차지하는데, 이는 비자 발급 쿼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워홀러가 선호하는 영어권이지만 연간 쿼터가 각각 1800명, 4000명이라 경쟁률이 높다.
외교부 워킹홀리데이인포센터 봉장종 과장은 “연간 쿼터가 있는 국가는 비자 신청을 선착순으로 접수하기 때문에 경쟁률 파악이 어렵지만 캐나다는 영국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한 것 같다. 전반기에 2000명을 모집했는데 접속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됐다. 뉴질랜드도 선착순 모집 첫날 3시간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고 했다.
김학성 씨는 “2011년 초 캐나다 워홀비자를 신청할 때는 우편으로 접수를 받았다. 우체국 소인에 찍힌 날짜와 시간 순으로 접수가 마감되다 보니 접수 첫날 새벽 5시에 나가 3시간 동안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8시에 문을 여는데 내 앞에 벌써 2명이 먼저 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워홀 재수생, 삼수생도 나온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은 워홀스터디 등 모임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대학 3학년 때 워홀비자로 캐나다에 다녀온 주영준 씨는 “비자 신청서를 처음 쓰는 데다 영어로 돼 있고 제출 서류까지 전부 영어로 써야 하니까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내가 쓴 영어 표현이 정확한지 헷갈리고 불안하니까 수수료를 주고 유학원에 맡기는 경우도 많다. 아니면 스터디 모임을 만들거나 워홀을 준비하는 친구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서류를 돌려보면서 체크해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학점 따기나 취업 준비로 바쁜 젊은이가 스터디 모임까지 만들어가며 워킹홀리데이에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매력은 1년 동안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부모 등 주위 간섭 없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한 20대에게는 다른 나라 언어와 새로운 문화를 익히고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점 또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높은 토익점수와 다양한 경험 축적 등 취업에 대비한 ‘스펙’ 쌓기에 도움도 되지만, 무엇보다 워킹홀리데이를 ‘젊은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여긴다. ‘30세’라는 나이 제한과 ‘취업하면 자유는 끝’이라는 초조감도 젊은이의 등을 떠민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서 축제도우미, 무료급식 봉사 등 다양한 체험을 한 주영준 씨(왼쪽).
스펙 쌓기 그리고 독립 생활 만끽
정부가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젊은이로 하여금 여행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접하고 견문을 넓히게 하려는 데 있다. 중간에 경비가 떨어지면 일해서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 언어도 배우라는 취지인 것.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이 사이에 ‘돈 안 드는 어학연수’ ‘돈도 벌고 어학연수도 하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지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두 달치 생활비만 들고 가기 때문에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환경과 문화가 낯선 데다 언어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싼 숙소와 급료가 형편없는 일자리를 찾다 보니 애초 목적한 어학연수를 할 돈도 시간도 없고, 언어가 안 되니 계속 열악한 일자리만 전전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귀국한 뒤 한국에서 어학원에 등록하는 등 워킹홀리데이 제도의 본래 취지를 벗어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봉장종 과장은 “최소 3개월치 생활비는 들고 가야 한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00만~450만 원이다. 거기다 비자 수수료와 신체검사비, 항공료 같은 경비를 합치면 600만~700만 원은 있어야 한다. 대학생을 비롯한 20대는 돈 없이도 갈 수 있는 게 워킹홀리데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 적지 않은 돈이 든다”고 했다. 열정과 열의만으로 누구나 무작정 갈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가 아닌 것이다.
2011년 호주에서 워홀러로 1년을 지내고 온 대학 3학년 서보리 씨는 처음부터 영국 케임브리지대 입학을 목표로 호주로 떠나 어학원에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했다. 그는 “어학연수가 첫 번째 목적이었지만 12주 연수가 끝나면 일하면서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학원을 마칠 때까지만 필요한 경비를 부모에게 도움 받았다”고 했다. 그 후 현지인 집에서 숙식하며 아이를 돌봐주는 일자리를 얻은 그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영어를 배워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고, 숙식까지 해결되다 보니 여유도 생겨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하면서 보냈다. 워홀러 생활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7년 차 제과·제빵사인 20대 후반 임종인 씨는 워킹홀리데이인포센터 ‘구인·구직난’에 자기 이력을 간략하게 올려놓았다. 호주에서 일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그는 “일자리도 없이 무작정 가서 고생만 하다 온 사람을 많이 봤다. 내 경우 기술이 있으니까 현지 제과점 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만약 취업이 결정되면 워홀비자로 나가 일하면서 공부도 더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씨나 임씨처럼 워킹홀리데이 목표가 뚜렷하고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서 떠난 워홀러는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마칠 확률이 높다. 비자를 받고 출국하기 전까지 2달여 여유가 있어 아르바이트와 영어공부에 매진한 주영준 씨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 덕에 잊지 못할 워홀러 생활을 했다. “국내에서 캐나다 현지 일자리를 알아보고 화상인터뷰로 면접까지 봤다”는 그는 도시를 이동할 때 미리 유스호스텔 등 안전한 숙소를 예약하고, 일자리를 구할 때는 구직자를 위한 커리어센터에서 무료로 이력서 교정을 도움 받는 등 여러 정보를 적극 활용해 돈을 아끼고 시행착오도 최소화했다.
그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관련 카페에서 국내 대기업이 지원해주는 한국인 워홀러 대상 어학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덕에 두 달간 무료로 어학공부를 할 수 있었다. 밴프센터 등 현지 지역커뮤니티에서 일하며 축제도우미, 무료급식 봉사 등 여러 차례 자원봉사를 했던 일이 뿌듯했고 또 기억에도 남는다”며 “워킹홀리데이 경험은 20대 때밖에 못 하니, 현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투자하는 게 돈보다 훨씬 값진 것들을 얻어오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호주에서 1년간 워홀러로 지내다 학생비자로 체류기간을 연장해 6개월 동안 어학공부를 하고 돌아온 대학 4학년 안원경 씨.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그의 원래 꿈은 기자였다. 안씨는 “3년 내내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일이 버거워 기자 꿈을 포기했다. 그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호주로 떠났다”고 했다. 학보사 일을 핑계로 대학 시절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본 그녀는 호주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식당 설거지, 호텔 청소 등 밑바닥 일을 묵묵히 해냈다.
안씨는 “땀의 소중함, 노동 가치를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캔버라에 갔을 때는 아이티에 고아원을 짓고 자선사업을 하는 현지인 부부 집에서 살았다.
“부부가 한 달씩 아이티 고아원으로 자원봉사를 다녀오고 그곳 아이 4명도 입양했다. 그들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게 있다. ‘왜 자선사업을 하느냐’고 했더니 자신들은 좋은 땅에 태어나 특혜를 받았으니 선행은 자신들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때 내 인생의 값진 가치와 미래를 얻어왔다. 접었던 꿈에 대한 도전의식도 다시 생겨났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워홀 성공
2013년 5월 경북대에서 열린 ‘워킹홀리데이 설명회’ 현장.
한편 20대 후반 직장인 워홀러 쿠키(홍콩) 씨는 국내 여행사에서 3개월째 일한다. 국내 한 대학 어학원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고 귀국한 그가 워홀비자로 다시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한국이 좋고 무엇보다 정이 많으면서 친절한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워홀비자로 한국에 오는 홍콩인은 1년에 200명 정도다. 20대 초반 워홀러가 가장 많다. 2014년 7월 비자 기간이 끝나면 홍콩에 돌아가 취업할 생각인 그가 어엿한 여행사 사무직 자리를 꿰찬 건 한국어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워홀러는 우리와 협정을 맺은 14개국을 통틀어 2012년 1345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적다. 외교부는 ‘한국어’라는 언어적 한계로 메리트가 적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된 한류 열풍으로 최근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워홀러가 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 잇달아 워홀러 피살사건 2건이 발생해 자식을 해외로 보낸 부모의 한숨이 깊어지는 등 우리 사회가 뒤숭숭하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공관에 보고된 워홀러의 사건 및 사고는 호주 362명, 캐나다 15명, 뉴질랜드 5명, 프랑스 5명, 일본 2명, 독일 2명, 아일랜드와 대만이 각 1명씩이다. 주로 사기나 소매치기 같은 사례가 많고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물놀이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 해수욕을 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당하는 사고가 많다. 외교부 영사서비스과 서한나 서기관은 “귀찮아서 또는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벌어지랴’ 하는 마음에 재외거주등록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소재 파악이 제때 안 되면 공관에서 신속히 대처해 수습하기 어렵고 더 큰 위험 상황이 닥칠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외교부는 워킹홀리데이 경험자와 현지 한국인 워홀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안전하고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준비 과정과 생활환경, 애로사항 등을 파악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려는 것. 서한나 서기관은 “호주 워홀러를 파악하고자 호주 정부와 현재 협의를 진행 중이다. 2014년 1월부터 캔버라대사관에 ‘헬로워홀’을 설립해 상담과 정보 제공 등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호주 사례를 지켜본 뒤 일본과 캐나다 등으로 점차 확대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