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국경 근처 튀니지 마을에서 리비아인들이 반군 깃발을 걸어놓고 물건을 파는 모습(왼쪽).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의 시리아 난민 아이들.
안타까운 이 사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튀니지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청년층의 분노를 촉발했다. 극심한 실업과 그에 따른 경제 불안, 집권층의 부정부패, 무능한 정권의 장기집권과 억압통치 등으로 불만이 쌓여 있던 시민도 결합했다.
결국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당시 튀니지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2011년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지 23년 만이다. 이 혁명은 아프리카와 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가 됐다. 서방 언론은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튀니지…정치·사회적 갈등 이어져
12월 17일 ‘재스민 혁명’이 처음 발생한 지 3년이 됐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시민혁명 물결은 중동 맹주를 자처하는 이집트로 퍼져나가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오던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했다. 이어 중동,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일부 국가에서 민주화 촉구 시위를 촉발하는 데 동력을 제공했다. 튀니지 이웃국가인 리비아와 예멘도 국민 다수의 요구로 정권이 교체됐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중동 현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봄이 온 것 같았지만 완전한 봄은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튀니지를 포함해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서는 아직도 혼란이 계속된다. 시리아는 내전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슬람과 세속주의 세력 간 충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집트에서는 자유민주선거로 선출된 이슬람주의자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군부가 축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리비아는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민병대가 여전히 활개치고 동서 지역 간 갈등이 더 깊어졌다. ‘아랍의 봄’이 지나간 나라마다 종파 및 부족 갈등에 고실업과 나날이 치솟는 물가가 개선되지 않은 점도 국민 불만을 증폭하고 있다. 시리아 유혈사태는 2년 9개월째 지속되고,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이 붕괴한 예멘에서도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은 폭력 사태와 일부 약탈에도 시민 힘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낸 첫 아랍권 시민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벤 알리 전 대통령을 몰아낸 시민혁명의 성공은 중동 지역에 민주화 시위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중동 지역 시위 사태는 곧바로 각국 독재와 왕정체제를 위협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을 이양받은 과도정부의 지휘 아래 튀니지에서는 내각 개편과 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이어졌다.
벤 알리 정권 붕괴 후 처음으로 치른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온건 이슬람 성향의 엔나흐다당은 세속주의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했지만, 연립정부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튀니지 노동계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끄는 정부에 대항해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올해 초 야권 지도자의 잇따른 암살로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이어 정국 혼란이 극에 달하자 집권당과 야권이 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는 중이다. 여야는 새로운 과도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새 총리에 메흐디 조마아 산업부 장관을 선임하는 데 합의했다. 이번 새 총리 선임은 올해 내내 지속한 튀니지의 정국 혼란을 끝내려는 집권당과 야권의 첫 성과물로 해석된다.
이집트…정권교체 후 국론 분열 몸살
이집트는 ‘아랍의 봄’ 이후 갈수록 깊어지는 국론 분열에 심한 몸살을 앓는다. 이집트는 30년간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한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뒤 지난해 치른 자유민주선거를 통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대선)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 전 대통령이 7월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군부가 무르시 지지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 세력은 ‘군사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지금도 군부 반대시위를 벌인다. 이에 맞서 군경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감옥에 갇혀 종신형을 기다리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자 간 갈등, 치안 불안, 경기침체, 고실업률, 물가 상승 등에 따른 국민 불만도 크다. 이집트 군부가 제시한 로드맵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군부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한 새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내년 1월 14~15일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미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거부를 선언한 상태다. 특히 새 헌법에는 민간인도 군사 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시위 탄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새 헌법이 통과하면 이집트 과도정부는 내년 봄엔 총선, 여름엔 대선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악화 일로다. 시리아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세력 간 3년 가까운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최소 900만 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유엔은 추정했다.
알카에다 연계 세력이 반군에 합류하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면서 양측 교전도 갈수록 격화한다. 여기에 이란은 알아사드 정부를, 터키는 반군을 지원하면서 중동 전 지역에서 혼란 양상이 커지고 있다. 시리아 사태를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시리아가 소말리아 같은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8월에는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광범위한 화학무기 공격이 이뤄져 500~1400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서방은 정부군 소행으로 단정하고 공습을 계획했으나 미국과 러시아가 화학무기 폐기안에 합의해 사태가 마무리됐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화학무기 폐기 작업을 진행 중이고, 유엔은 현장조사 보고서에서 사린가스가 사용됐다고 확인했으나, 공격 주체는 밝히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해 유엔과 미국, 러시아 등 관련국이 논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도출하진 못했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내년 대선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고 공언해 반정부 세력의 요구를 일축한 상태다. 유엔은 내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평화회담을 열겠다고 밝혔지만 이 회담이 정상적으로 열릴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리비아…공권력 공백 사태 정권 불안
카다피 몰락과 함께 그의 관저였던 밥 알아지지아도 폐허로 변했다. 카다피군의 것으로 보이는 장갑차가 잔해 위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공공의 적’이던 카다피가 40년 넘게 리비아를 철권통치하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문제도 등장했다. 각 지역 일부 민병대는 아직까지 무기를 보유해 사실상 공권력의 영향력 밖에 남아 있다.
서부의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동부 벵가지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세력 간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10월 알리 자이단 리비아 총리가 트리폴리 한 호텔에서 무장단체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소동은 리비아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2년 전에는 벵가지에 있는 미국 영사관이 습격받아 주리비아 미국대사가 사망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발생했다. 리비아 중앙정부가 치안을 사실상 무장단체에 위탁해 사회 혼란을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멘 역시 새로 구성한 과도정부 주도로 국가 정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지만, 안정 회복과 국가 재건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예멘에서는 2011년 1월 반정부시위가 발발하고 10개월 만에 살레 대통령이 면책을 조건으로 퇴진하는 내용의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슬람 무장세력과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정부 요인 암살을 비롯, 군인과 경찰을 겨냥한 테러를 지속하고 있다. 북부에서도 시아파 알후티 반군과 수니파 살라피스트의 충돌 등 혼란이 이어져 파탄 난 민생경제는 손쓸 여력조차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