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시즌 준우승에도 전격 경질된 김진욱 감독(왼쪽)과 새로 사령탑에 부임한 송일수 감독.
‘화수분 야구’로 표현되는 두산 야구는 그동안 유망주 육성은 물론, 선수 몸값 책정 등에서 다른 구단에 비해 합리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오프시즌에 보여준 지나치게 소극적인 투자와 선수 방출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구단 운영에서 얻은 프런트의 자신감이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우세하다.
두산은 KS 직후 진행된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팀 간판과도 같은 선수 3명을 모두 잃었다. ‘반드시 잡겠다’고 했던 외야수 이종욱과 ‘장기적 안목에서 팀의 지도자감’이라고 평가했던 내야수 손시헌이 모두 NC로 떠났고, PS에서 고비마다 홈런을 터뜨렸던 오른손 거포 최준석은 롯데로 이적했다. 두산은 이종욱에게 4년간 총액 45억 원, 손시헌에게 같은 기간 총액 25억 원을 제시했지만 이종욱은 총액 50억 원, 손시헌은 총액 30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팀을 떠났다. 최준석 역시 두산의 총액 31억 원 제안을 뿌리치고 롯데의 35억 원을 받아들였다.
개인별 총액 차이는 수억 원에 불과(?)하지만, 세 선수가 나란히 팀을 떠난 것은 보장금액에서 차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준석의 경우, 옵션을 뺀 보장금액만 놓고 봤을 때 두산은 22억 원이었지만, 롯데는 31억 원으로 8억 원 차이가 났다.
송일수 2군 감독 사령탑으로 임명
두산 프런트는 FA 시장에서 3명을 모두 빼앗긴 뒤 이렇다 할 보강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거품이 낀 FA 시장에서 과도한 지출은 나머지 선수들의 사기 측면에서 도움이 안 되고, 장기적 안목에서도 팀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다른 구단에 비해 유망주가 많은 두산은 이후 2차 드래프트에서 임재철, 김상현, 이혜천 등 여전히 힘을 쓸 수 있는 노장을 빼앗겼고, 은퇴를 권유했던 베테랑 투수 김선우가 현역 생활을 고집하자 결국 방출했다. 이어 미래의 4번 타자라 불리던 윤석민을 넥센 장민석(개명 전 장기영)과 맞트레이드했다. 두산 팬들은 연이은 간판선수 이탈에 ‘멘붕’(멘털 붕괴)에 빠져 등을 돌리고 있다.
두산 프런트의 ‘마이 웨이’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건은 김진욱 감독의 전격 경질이다. 두산은 11월 27일 일본 미야자키에서 한창 마무리 캠프를 지휘하던 김 감독을 불러들여 경질을 통보하고 송일수 2군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김 전 감독의 지휘력에 의문부호를 떨치지 못한 두산 프런트는 “김 감독 체제로는 내년에 절대 우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교체 사유를 설명했다. 3승1패로 앞선 KS 5차전에서 승부수를 띄우지 못해 시리즈 역전패의 단초를 제공한 점을 거론하며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그러나 두산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이와 다르다. 만약 김 감독을 경질하려 했다면 KS 직후 판단을 내렸어야 한다. 마무리 캠프까지 맡겨놓고 뒤늦게 칼을 뺐다는 것은 저간의 말 못 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FA 계약 전략은 물론,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 40인 작성, 윤석민 트레이드 등에서 김 전 감독은 철저히 소외됐고, 이 과정에서 참지 못한 김 전 감독이 프런트에 반기를 들면서 결국 사이가 틀어져 구단이 경질 카드를 빼냈다는 것이다.
두산 프런트는 김승영(55) 사장과 김태룡(54) 단장 쌍두마차 체제다. 두 사람 모두 20년 이상 베어스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히 선수 출신인 김 단장은 프런트 말단 매니저에서부터 시작해 단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다른 구단의 경우 단장과 사장이 대부분 모그룹 출신의 비전문가인 ‘낙하산’이 내려오는 것과 달리, 두산은 내부 승진으로 프런트 수뇌부를 꾸렸다. 단장을 거쳐 2011년 취임한 김 사장이 첫 내부 승진 사장이다.
두산의 모 코치는 송일수 2군 감독 선임과 관련해 “이제 프런트가 모든 걸 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김 사장과 김 단장은 김 전 감독 재임 2년 동안에도 코칭스태프 조각 등에서 사실상 전권을 휘둘러왔다. 김 전 감독 취임 첫 해 이토 쓰토무 현 지바롯데 감독을 수석코치로 앉힌 것도 김 단장의 작품이었으며, 이토 수석코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1년 만에 떠나게 만들고, 그 대신 황병일 수석코치를 영입해 김 전 감독을 보좌토록 한 것 역시 프런트의 판단이었다.
FA로 두산을 떠난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왼쪽부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재일교포 출신 송일수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영입한 것도 ‘김진욱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모 코치 말대로, 김 전 감독을 깜짝 경질하고 송 감독을 선임한 것은 두산이 ‘프런트 야구’를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항간에는 모기업 두산그룹이 자구책으로 야구단을 매각 리스트에 올렸다는 말도 들린다. 두산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도 “내년에 베어스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다. 두산이 FA 시장에서 지갑을 과감히 열지 못하고 보수적 태도를 보인 이유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FA에 대한 협상이나 선수 트레이드와 방출은 모두 구단의 판단이다. 사령탑 선임도 마찬가지다. 감독들도 “우리는 파리 목숨”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경질할 때 경질하더라도 프런트는 일단 임명한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만 묻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야구단 현장과 프런트의 관계에서 무게 중심이 프런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두산이 최근 들어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두산 프런트는 “FA 3명을 놓친 것은 합리적 기준을 지키다 보니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윤석민 트레이드는 이종욱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김선우는 러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몸 상태를 고려해 은퇴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김 전 감독의 해임 역시 상식선에서 이뤄졌다. 떠나는 감독에 대해 예의도 갖췄다”고 항변한다.
“팀 리빌딩은 구단 성적이 좋았을 때 해야 한다”는 두산 프런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김 전 감독 경질 등에서 나타난 두산 프런트의 일처리 과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주축 선수의 연이은 이탈과 감독 교체 등으로 두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김 전 감독 체제로는 우승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새 사령탑을 앉힌 두산이 내년 시즌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