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달콤한 산들바람 불어오는 언덕 위로 날아가라/ 구원의 강 요단강에서, 황폐한 저 시온성에서 불어오는 조국의 따뜻한 향기/ 오 아름다운 내 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리.’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1840)의 실패, 아내의 죽음…. 실의에 빠진 20대 후반의 베르디(1813~1901)는 서글프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의 지배인 바르톨로메 메렐리는 낙담한 베르디에게 대본 한 권을 쥐어줬다. 작가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쓴 ‘나부코’였다. 메렐리는 당초 독일 작곡가 오토 니콜라이에게 이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을 의뢰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대본에 강렬한 애착을 가졌던 메렐리는 포기하지 않고 베르디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어느 날 밤 베르디는 대본을 보다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부분에서 어둡기만 하던 그의 마음에 등불이 켜진 것이다.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이탈리아식으로 줄여 부른 이름이다.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히브리인들의 고통과 환란, 그 가운데서도 민족의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강인한 결속력에 베르디는 감동했다.
베르디는 의욕적으로 작곡에 매달렸다. 당시 북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과 나폴레옹의 압제 아래 있었다. 민족해방과 통일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열망이 일렁이던 시기였다. 베르디의 마음에도 이런 민족의식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1842년 3월 9일 라 스칼라에서 ‘나부코’ 초연이 이뤄졌다.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인 ‘나부코’는 그에게 최초의 성공뿐 아니라 ‘국민적 영웅’이라는 열매를 안겨줬다. 초연 이후 67회나 연속 상연될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3막에서 ‘가라, 내 마음이여’로 시작하는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은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바빌로니아에서 억압과 노역에 시달리며 포로생활을 하는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합창한다. 1901년 베르디 장례식 때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이 노래가 연주됐다.
이 곡은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2의 국가’라 부를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1986년 리카르도 무티의 라 스칼라 음악감독 취임 공연에서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이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가 무려 30분 동안 쏟아졌다. 토스카니니가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를 금지한 이래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라 스칼라의 금기를 깨고 한 번 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베르디의 재기작이자 출세작인 ‘나부코’는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페라는 아니다. 방대한 스케일과 성악적 요구가 많은 작품 특성상 제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1월 15~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나부코’를 만날 수 있다. 솔오페라단이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 팀을 초청해 이 장대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나폴리 산카를로 국립극장 예술감독, 바로니 페트루첼리 국립극장장을 지낸 잔도메니코 바카리가 연출을 맡고, 알도 시실로가 지휘를 한다. 나부코는 바리톤 파올로 코니, 아비가일레는 소프라노 에바 골레미와 메조소프라노 안젤라 니콜리, 이즈마엘레는 테너 레오나르도 그라메냐, 자카리아는 베이스 안토니오 피로치가 맡았다. 5만~28만 원, 문의 1544-9373.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1840)의 실패, 아내의 죽음…. 실의에 빠진 20대 후반의 베르디(1813~1901)는 서글프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의 지배인 바르톨로메 메렐리는 낙담한 베르디에게 대본 한 권을 쥐어줬다. 작가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쓴 ‘나부코’였다. 메렐리는 당초 독일 작곡가 오토 니콜라이에게 이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을 의뢰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대본에 강렬한 애착을 가졌던 메렐리는 포기하지 않고 베르디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어느 날 밤 베르디는 대본을 보다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부분에서 어둡기만 하던 그의 마음에 등불이 켜진 것이다.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이탈리아식으로 줄여 부른 이름이다.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히브리인들의 고통과 환란, 그 가운데서도 민족의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강인한 결속력에 베르디는 감동했다.
베르디는 의욕적으로 작곡에 매달렸다. 당시 북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과 나폴레옹의 압제 아래 있었다. 민족해방과 통일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열망이 일렁이던 시기였다. 베르디의 마음에도 이런 민족의식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1842년 3월 9일 라 스칼라에서 ‘나부코’ 초연이 이뤄졌다.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인 ‘나부코’는 그에게 최초의 성공뿐 아니라 ‘국민적 영웅’이라는 열매를 안겨줬다. 초연 이후 67회나 연속 상연될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3막에서 ‘가라, 내 마음이여’로 시작하는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은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바빌로니아에서 억압과 노역에 시달리며 포로생활을 하는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합창한다. 1901년 베르디 장례식 때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이 노래가 연주됐다.
이 곡은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2의 국가’라 부를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1986년 리카르도 무티의 라 스칼라 음악감독 취임 공연에서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이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가 무려 30분 동안 쏟아졌다. 토스카니니가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를 금지한 이래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라 스칼라의 금기를 깨고 한 번 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베르디의 재기작이자 출세작인 ‘나부코’는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페라는 아니다. 방대한 스케일과 성악적 요구가 많은 작품 특성상 제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1월 15~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나부코’를 만날 수 있다. 솔오페라단이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 팀을 초청해 이 장대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나폴리 산카를로 국립극장 예술감독, 바로니 페트루첼리 국립극장장을 지낸 잔도메니코 바카리가 연출을 맡고, 알도 시실로가 지휘를 한다. 나부코는 바리톤 파올로 코니, 아비가일레는 소프라노 에바 골레미와 메조소프라노 안젤라 니콜리, 이즈마엘레는 테너 레오나르도 그라메냐, 자카리아는 베이스 안토니오 피로치가 맡았다. 5만~28만 원, 문의 1544-9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