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승 지음/ 글항아리/ 362쪽/ 1만8000원
희귀한 고서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섭치, 즉 쓰레기 고서는 불타고, 썩고, 마구 버려진다. 저자는 변변치 않은 존재로 취급받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고서에 짠한 마음이 발동했다. 많은 사람의 손때가 묻은 책은 분명 많은 사연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미고사(白眉故事).’ 중국 고사성어를 분류해 엮은 사전으로, 조선 선비에게는 전자사전 같은 존재였다. 한 권에 100장도 되지 않는데다 완질이 5권이라 부담 없이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책장을 넘겼다. 특히 이 책은 과거시험을 보는 선비의 필수품이자 ‘베스트셀러’였다.
요즘엔 편지는커녕 e메일도 귀찮아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렇지만 문자메시지를 통해 마음을 연결하는 편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짧은 편지를 지칭하는 척독요람(尺牘要覽)은 편지 쓰는 요령을 담았다. 편지를 받는 상대와 편지를 쓰는 상황에 따라 분류했는데, 죄다 손으로 쓴 필사본이다. 너도나도 베껴 써서 돌려봤다. 그만큼 널리 읽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논어 한 권이 있다. 판본은 활자본을 복각한 목판본이다. 책 주인은 그다지 높은 학식을 겸비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비교적 쉬운 내용도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공부하려는 열정만은 대단했다. 필기해놓은 내용이 뒤로 가도 줄어들지 않는다. 책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특별한 존재와 평범한 존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관계다. 남에게는 평범한 존재가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은 이유는 나와 맺은 관계 때문이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고서 속에서 옛사람의 사연과 향기를 찾아내는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통도유사(通度遺事)
조용헌 지음/ 김세현 그림/ 알에이치코리아/ 260쪽/ 1만5000원
646년 자장율사가 터를 잡은 통도사. 오랜 세월 터를 지키는 그곳에는 민속신앙, 불교신앙, 신화가 살아 있다. 세상사 공부를 위해 유랑을 멈추지 않는 저자가 통도사를 프리즘으로 동서고금의 정신세계를 탐색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이주은 지음/ 이봄/ 286쪽/ 1만5000원
유럽의 19세기 말~20세기 초 20년을 ‘아름다운 시절’이라 부른다. 영화, 기차, 바캉스, 백화점 등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이 폭발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100년 전 문화와 예술, 그 시대 사람의 감성을 오늘의 눈으로 살펴본다.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박주택 지음/ 문학과지성사/ 174쪽/ 8000원
‘사루비아꽃이 피어 있는 집 앞/ 붉은 긴 옷을 입은 검은 피부의 여인이/ 마당을 쓰네. 머리에 터번을 쓴 사내 밭에서 검게/ 타네/ 돌의자에 앉았다 가는 까마귀는 며칠 전부터 유리/ 창을’(‘까마귀’ 중에서). 알맹이의 존재를 비튼다.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존 리더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990쪽/ 5만3000원
지질, 식생, 환경, 인간 등 모든 면에서 어느 대륙보다 훨씬 오래된 아프리카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곧 시원(始原)의 역사를 안다는 의미다. 아프리카 대륙을 인격체로 대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시선으로 아프리카와 관련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
고삐 풀린 뇌
데이비드 J. 린든 지음/ 김한영 옮김/ 작가정신/ 312쪽/ 1만7000원
쾌감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욕망이다. 쾌감을 넘어서는 중독은 언제라도, 누구든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 의지를 통해 모든 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반하는 쾌감 회로의 진실을 다룬다.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
제인 브록스 지음/ 박지훈 옮김/ 을유문화사/ 380쪽/ 1만5000원
우리가 지금 누리는 긴 저녁시간과 안전한 밤길은 모두 백열등이 만든 싸고 풍부한 빛 덕분이다. 선사시대 석등부터 백열등을 거쳐 현대 발광다이오드(LED)까지, 조명이 어떻게 인간과 세상을 변모시켰는지 그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