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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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만나는 꽃이라 더욱 예뻐라

층꽃나무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10-28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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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깊어가면서 풍성하던 가을꽃들이 어느새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나무의 단풍 빛은 밤의 찬 기운을 받아 더욱 붉게 물들지만 꽃들은 하나 둘씩 스러져간다. 수목원의 가을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보랏빛 꽃송이를 아름답게 피워내는 꽃나무가 있다. 바로 층꽃나무다. 여름 끝머리부터 피기 시작했을 텐데 여전히 그 자태를 유지하고 버티는 모습이 새삼 반갑고 대견하다.

    식물 가운데는 나무 같은 풀이 있고, 풀 같은 나무가 있다. 층꽃나무는 정말 풀 같은 나무다. 자그마한 포기를 만들면서 줄기 가득 꽃송이를 매단 모습은 나무와 다름없지만, 한겨울같이 기후나 환경이 자신의 섭생과 맞지 않으면 땅 밖으로 나온 부분이 모두 죽어버리므로 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나무가 주로 자라는 시골에선 정식 이름보다 층꽃풀, 난향초(蘭香草)라고 부른다.

    층꽃나무는 꽃 모양만 자세히 보면 왜 ‘층꽃’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답이 나온다. 작은 꽃들이 잎 나오는 겨드랑이 부근에 한 무더기씩 층층이 달리기 때문이다. 보통 20~30송이 정도가 한 층에 모여 나오며, 전체적으로는 조건만 좋으면 20층씩 달리기도 한다. 남보라색 꽃송이를 자세히 보면 꽃은 통꽃으로 중간에서 5갈래로 갈라져 거의 수평이 되게 벌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꽃잎 5장 가운데 아래 한 장만 특별히 크고 가장자리가 아주 가늘게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즈음엔 열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붙어 있는 꽃받침 안에 열매가 5개씩 들었다.

    식물체 전체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는 층꽃나무의 영어 이름은 블루 스피레아(Blue Spirea)로, 푸른 조팝나무라는 뜻이다. 식물학적으로 조팝나무와 전혀 무관하지만 줄기 끝에 꽃송이들이 층층이 달리는 모습이 마치 꽃으로 만든 방망이 혹은 휘어지는 채찍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층꽃나무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관상용이다. 정원이나 길가 화단에 넓게 심어놓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군락을 이뤄 심어놓으면 나비와 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밀원식물로 이용하기도 한다.

    더욱이 층꽃나무는 꽃이 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지는 아주 긴 개화기를 갖고 있어 관상수로서의 개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같은 무렵 꽃이 피는 구절초류와 색을 배합해 심으면 더욱 화려한 화단을 만들 수 있다. 꽃이 달린 부분이 길기 때문에 꽃꽂이용으로 잘라 쓰기에도 적합하다. 한방에서는 난향초라고 해 약으로 쓴다.

    층꽃나무가 자라는 곳은 따뜻한 지방의 산지이다.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남쪽 해안이나 섬지방의 볕이 잘 드는 산에서 볼 수 있다. 남쪽지방 산자락을 오르다 햇살 좋은 사면에 멀리 바다를 보고 피어 있는 층꽃나무를 만난다면 그 또한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가을에 만나는 꽃이라 더욱 예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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