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한국에서 열리는 ‘2013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17일 오전 경기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축구대표팀이 소집됐다. 홍명보 감독이 오후에 진행된 훈련에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홍 감독은 동아시안컵 최종 엔트리 발표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었다. 대표팀은 동아시안컵과 무관한 일로 최근 큰 홍역을 앓았다.
소집 복장부터 정신 강조
대표팀 미드필더 기성용(24·스완지시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조롱하는 글을 남긴 것으로 밝혀져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기성용이 에이전트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고, 대한축구협회(협회)가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지만 ‘진정성이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여론은 평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강조해온 홍 감독의 의중을 궁금해했다. 홍 감독의 원칙은 변함없었다. 그는 기성용 파문을 피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질문도 하기 전 먼저 입을 열었다. 홍 감독은 “협회 결정은 기성용의 잘못에 대해 책임과 용서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본다. 기성용은 스승에 대해 분명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 이것은 (내가) 대표팀 감독이 아닌 축구 선배로서 말하는 것이다. 기성용은 앞으로 바깥에 대한 소통보다 부족한 내면의 공간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기성용은 자격정지 같은 중징계를 받지 않아 규정상 대표팀 발탁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홍 감독은 “협회의 엄중경고 조치와 대표팀 감독으로서 향후 기성용의 선발은 별개다. 앞으로 기성용을 주의 깊게 관찰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2013 동아시안컵 최종 엔트리는 기성용 등 유럽파를 제외하고 K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다. 홍 감독은 8월 14일 페루와의 평가전 때도 가급적 유럽파를 부르지 않을 생각이다. 9월 이후에나 기성용 발탁에 대한 홍 감독의 생각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홍 감독은 기성용에게 진심으로 참회해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기성용의 SNS 논란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태극마크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에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강한 사명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부터 선수들은 파주 NFC에 들어갈 때 복장부터 달리해야 한다. 예전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지만 홍 감독은 정장을 요구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구두도 신어야 한다. 홍 감독은 “밖에 드러나는 규율보다 내부 규율이 더 중요하다. 파주 NFC에 입소하면서 티셔츠와 모자, 찢어진 청바지 차림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올림픽팀부터 시도하려 했으나 선수들이 옷도 없고 양복 살 돈도 없다고 해서 양보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다르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동선까지 명확히 정했다. 더는 개인 차량으로 파주 NFC 정문을 통과할 수 없다. 개인 차량을 이용할 경우 정문 앞에 주차한 뒤 본관 숙소까지 100m 이상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홍 감독은 “파주 NFC 정문부터 발걸음과 마음가짐이 시작된다. 여기에 들어올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할지 선수들에게 정문부터 생각해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홍명보호 1기 최종 엔트리에는 예상대로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승선했다. 홍명보의 아이들은 홍 감독이 지도자로 첫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FIFA U-20 월드컵부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지난해 런던올림픽 등 3개 대회에서 중용한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중앙수비수 홍정호(제주 유나이티드)와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미드필더 박종우(부산 아이파크), 한국영(쇼난 벨마레), 김민우(사간 도스), 조영철(오미야 아르디자), 공격수 김동섭(성남 일화) 등이다.
이 가운데 김민우와 김동섭은 와신상담 끝에 다시 홍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둘은 지난해 런던올림픽 최종 엔트리에서 안타깝게 탈락해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친구들이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을 TV로 봐야 했다.
홍정호도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런던올림픽대표팀의 주장이었다. 누구도 홍정호가 런던에 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꿈을 앗아갔다. 올림픽 직전 큰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오랜 재활 끝에 5월 건국대와 FA컵 32강전을 통해 복귀했고, 2012년 2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대표팀에 발탁됐다.
태극마크의 책임감과 명예
홍명보호 1기의 평균 연령은 24세다. 젊은 선수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얻은 몇몇 베테랑이 눈에 띈다.
최고참은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경찰축구단에서 뛰는 염기훈(30)이다. 홍 감독은 “공격진의 균형을 위해 경험이 필요했다. 최근 염기훈의 경기력을 계속 확인했는데 나쁘지 않았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1985년생 동갑내기인 미드필더 하대성(FC 서울)과 공격수 서동현(제주 유나이티드)도 각오가 남다르다.
하대성은 K리그 최고 중원사령관이다.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영리함, 넓은 시야, 창의적인 패스를 모두 갖췄다. 그러나 대표팀에만 가면 작아졌다. A매치 7경기 출전이 전부다. 하대성은 홍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하지만 홍 감독은 평소 하대성의 플레이를 칭찬하며 늘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한다. 하대성은 내년이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태극마크 징크스를 떨쳐내야 한다.
서동현은 태극마크로 부활의 정점을 찍을 태세다. 2008년 12월 이후 4년 7개월 만에 태극마크 주인공이 된 그는 2006년 수원 삼성에 입단할 때 가장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2008년 수원이 정규리그와 리그 컵을 석권할 당시 프로 3년 차였던 그는 13골2도움으로 2관왕의 주역이 됐다. 고비 때마다 조커로 투입돼 골을 터뜨리며 가뭄에 단비라는 뜻의 ‘레인메이커’라는 멋진 별명도 얻었다. 2008년 후반기에는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꾸준히 받으며 월드컵 출전도 꿈꿨다. 하지만 부상 등이 겹치면서 슬럼프를 맞았다. 서동현은 강원 FC를 거쳐 지난해 제주에 둥지를 틀며 부활했다. 지난해 12골3도움으로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고 올해도 3골5도움으로 제주의 상승세를 이끌며 합격점을 받았다.
사실 2013 동아시안컵은 결과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활약할 만한 재원을 가려내는 것이 홍 감독의 첫 번째 목표다. 홍 감독 역시 “지금 당장이 아닌 1년 후에 좋은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선수 위주로 뽑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감독 처지에서는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인 데다 데뷔무대라 성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마지막 경기는 언제나 뜨거운 시선이 쏠리는 한일전이다. 홍 감독은 “매 경기 투혼을 발휘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