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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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 무력감을 날려주마

‘비참할 땐 스피노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7-15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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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함 무력감을 날려주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자음과모음/ 280쪽/ 1만5000원

    철학책이 우울증 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 ‘비참할 땐 스피노자’는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책이다. 감정이 바닥을 칠 때 ‘프로작’을 삼키는 대신 철학책을 펼쳐 들라니. 스피노자의 대표작 ‘에티카’를 읽다가 난해함에 질려 중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제목을 보는 순간 고개부터 젓게 될 게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다르다. 재즈피아니스트 출신 철학자인 저자는 ‘에티카’를 꼭꼭 씹어 새로운 형태로 요리해놓았다. 신(神)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1부 내용을 뒤로 돌리고, 사랑과 행복 등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대해 논의한 3부를 맨 앞으로 끄집어냈다. ‘에티카’에 등장하는 “사랑은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라는 문장을 풀이하면서 “행복이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 달려 있고 구원 또한 사랑하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면 철학자의 임무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고 지속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대상을 발견해내는 데 있다”고 덧붙인다. 말하자면 철학이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서와 욕망을 중시했다. 이성을 숭상하고 감성을 배격하는 근대 철학 흐름에 맞섰고, 자유의지에 대한 맹신도 비판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욕망이다. 그는 욕망을 “계속해서 실존하려는 노력”이며 그와 동시에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차용해 비참한 사람에게 조언을 건넨다.

    “우리는 이따금 회한과 후회에 사로잡힌다. 왜 그렇게밖에는 하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중략) 그러나 우리 의지가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런 질문은 의미 없는 게 된다. 과거 우리가 한 행동과 운명은 그런 상황과 인식, 분석 등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오늘날 인식과 경험은 과거 그 사건 당시의 우리가 갖지 못했던 것이며 따라서 과거 우리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나쁜 것으로 보이는 과거의 그 선택이 오늘날 판단을 가능하게 만든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며 동시에 더 나은 선택지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회고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 가능했으며 따라서 그것이 나쁜 선택이었음을 오늘날 깨닫게 됐다는 사실은 과거 우리가 이해하고 해석한 조건 아래서 그것이 나쁜 선택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해준다.”

    우리를 괴롭히는 ‘악(惡)’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악은 사물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과 맺는 관계 속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 4부 서문에 쓴 “음악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선한 것이고 절망한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다. 귀머거리에게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문장을 소개하면서 “악은 만나지 말아야 할 두 사물이 만났을 때 생겨난다. 예를 들어 뱀의 독은 인간이 그것을 먹고 소화시키면 더는 악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물은 없다”고 단언한다. “악의 문제는 우리가 사물을 적합한 조건에 둘 때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이 책을 출간하기에 앞서 ‘우울할 땐 니체’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를 차례로 펴냈다. 우리 삶에 철학을 끌어들이면 정말 우울함과 무력감과 비참함을 날려버릴 수 있을까. 이유 없이 비참한 오후, 스피노자를 펼쳐 들고 한 번쯤 실험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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