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을을 위한 민주당’ ‘황교안 법무부 장관,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등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결의문을 제창하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6월 11일 회의 발언 중에서)
“비상한 각오로 대오 정렬해, 강철같이 뭉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6월 13일 비상의원총회 발언 중에서)
요즘 민주당 회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지도부 발언 내용을 보면 전쟁터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잇달아 불거진 대형 사건도 야당 전투 분위기에 불길을 더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기소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게다가 남북 장관급회담 무산까지 맞물리자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은 더 거세진다.
전자의 경우 대통령선거(대선)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고, 후자의 경우 민생문제다. 이로 인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분노한 민심이 반정부, 반새누리당 여론을 부추기리라 예상한다. 그런데 민주당의 이런 결연함에도 그들에게선 전쟁터에서 휘두를 ‘날카로운 칼’이 보이지 않는다. 정당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민심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6월 10~14일 전국 성인 2500명 대상,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1.1%로 새누리당 48.7%의 절반도 안 된다. 이 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3.2%에 달했다. 더구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주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즉 남북 장관급회담 무산도 이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맹렬히 비판하던 민주당으로선 힘이 빠지는 대목이다.
분위기는 좋은데 구심점 못 돼
한마디로 민주당은 자신의 뜨거움과 대중의 미지근한 반응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을 끄는 대형 이슈와 관련해 6월 국회에서 민주당의 전문성이 돋보여야 하는데, 결국 관심은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한 기업의 불공정 관행은 민주당의 핵심 의제인 경제민주화와 연관돼 있다. 새누리당조차 우려하던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원자력발전소(원전) 비리 사태 역시 야당의 견제능력이 돋보일 수 있는 사안이다. 여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 문제와 세금 논란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민주화운동 세대를 자극한다.
그런데 이 사안들에 대해 야당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정적 순간의 ‘한 방’은 박 대통령이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다. 민감한 사안에 칼을 빼든 주인공으로 부각된 인물은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도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뜨거운 감자’를 정곡으로 찌른 이 발언은 이른바 ‘박근혜식 원칙’ 이미지를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6억 원을 상기하며,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전두환 추징법’을 여당이 막는다면 이는 전 전 대통령과 여권이 한편이라는 증거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칼’을 전직 대통령에게 겨눔으로써 야권이 주장하는 ‘박근혜·전두환·새누리당 한통속’ 프레임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주장과 지적이 옳은데도 제1야당에 대한 지지가 미지근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먼저 민주당 ‘메신저’에 대한 점수가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시지 못지않게, 그것을 전달하는 메신저도 중요하다. 지난 대선과 최근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의 상당수는 현 야당 지도부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들은 “아예 민주당에 관심을 껐다”고도 말한다.
이는 ‘그래도 믿고 또 밀어줬던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과 트라우마’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역 유권자와 대화하면 ‘박 대통령도 싫지만 기득권 세력이 된 민주당도 싫다’는 말을 듣는다”며 “당이 반박근혜 층에서조차 그들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구세력으로 비판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민주당이 말은 그럴 듯하게 잘하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믿을 만한 대안세력인지 헷갈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대의원도 유권자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대해 ‘낡은 세력’ ‘고인 물’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그는 “메신저에 대한 신뢰 약화는 메시지의 진정성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둘째, ‘박근혜 박수 현상’에 비해 민주당 브랜드가 약한 점도 야당의 빛을 바래게 한다. 이철희, 김헌태 두 정치평론가는 저서 ‘박근혜 현상’을 통해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왜 대중에게 사랑받고 정치적 힘을 갖는지에 대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치 구도, 지역주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신화적 요소 등에서 이른바 ‘박근혜 신드롬’의 원인을 찾아 분석했다.
이후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여론이 ‘박근혜의 말’ 한마디에 주목하고 박수침으로써 박근혜의 정치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박근혜 박수 현상’이라고 명한 바 있다. 이를 현 시점에 적용하면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박근혜 현상’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10월 재보선까지 시간 빠듯
6월 12일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박 대통령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중도층 일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박 대통령의 행보에 “예상과 다른데”라며 관심을 갖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거나, 서울 중구청의 박정희 기념관 설립 계획에 직접 반대 의사를 밝힌 것 등이 이런 기류에 영향을 미쳤다. 보수 대 진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보다 ‘통합’ ‘민생’에 관심이 많은 중도층에게는 이런 행보가 신선해 보일 수도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작 여론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었다며, “이는 여야나 도덕성의 우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만들어진 신뢰의 이미지 차이”라고 말했다. 즉 박근혜 반대 집단이 어떤 사안에 대해 ‘민주당이 제대로 끝장을 보겠구나’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 데 비해, 박근혜 지지층에선 ‘박근혜니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김한길 대표는 당 혁신에 시동을 걸었다. 중앙당사 규모를 현재의 10분의 1로 축소하고 서울 여의도 이전, 당직자 대폭 축소 등의 당 혁신안을 6월 14일 발표했다. 그는 또 초선의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당내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7~8월에는 지도부와 의원들이 참여하는 ‘1박2일 버스투어’를 진행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제 10월 재보선까지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그동안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6월 임시국회까지 ‘장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이에 김한길 지도부가 과감한 당 혁신을 이루면서 ‘작고 날카로운 검’으로 민심을 파고들어 승부를 낼지 두고 볼 일이다. 과거 민주당은 민생문제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면도날 전략’으로 민심을 사로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