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산속에서 양복 입고 내려오는 자, 광화문 앞에서 중앙청을 찾는 자, 술집에서 취한 김에 ‘동무’ ‘동무’ 하는 자, 이런 사람 보면 지체 없이 113, 오-오-오-, 간첩신고는 국번없이 113, 만약에 통화 중일 때는 재빨리 112, 뚜비뚜비뚜바뚜바.”
1970년대에 유행했다는 ‘간첩송’이다. 이 노래는 “한밤중에 이불 쓰고 북한방송 듣는 자, 맑은 날인데도 신발에 진흙 묻은 자, 청자담배 사면서도 청자담배 값을 모르는 자” 역시 113으로 신고하라고 가르친다(현 국가정보원 간첩신고 전화번호는 111이다).
그랬다. 지금의 40, 50대에게 간첩이란 순한 양의 탈을 벗기면 나타나는 뿔난 악마였다. 이유 없이 친절을 베푸는 아저씨가 지금은 성폭행범이 아닌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하지만, 1970~80년대는 간첩이 아닌지 다시 돌아봐야 했다. 학교에도, 문방구에도, 구멍가게에도, 아버지가 가는 대폿집에도 ‘반공, 방첩, 멸공’ 같은 구호가 서슬 퍼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때였고, ‘간첩 잡는 아빠 되고 신고하는 엄마 되자’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는 표어가 사방에 걸렸던 시절이다. 극장에선 ‘간첩 잡는 똘이장군’(‘똘이장군’)이 반공 영웅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어린 관객에게 쏟아부었다. 돼지 같은 모양을 한 혹 달린 괴수는 어린 관객 머리에 그대로 간첩 형상으로 각인됐다.
그렇다면 지금 어리고 젊은 세대에겐 어떨까. 필명 ‘HUN’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는 간첩이나 분단을 과거처럼 ‘역사적 실존’이나 ‘이념교육의 산물’이 아닌 ‘오락 장르의 판타지’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가난한 달동네, 허름한 슈퍼마켓에 동구(김수현 분)라는 청년이 일한다. 뭐가 좋은지 늘 헤벌쭉하니 웃고 다니고, 다 컸는데도 어린애처럼 코를 훌쩍이며, 골목 어귀를 다닐 때마다 엎어지고 자빠지니 동네 아이들에게조차 놀림 받는 바보 청년이다. 그런데 그의 실체는 따로 있다. 북한에서 특수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 북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인기계’로 훈련받고 의학, 공학, 화학 등 최고 교육까지 받은 특수 공작원이다.
‘오락 장르의 판타지’로 소비
그가 하는 짓은 꽤나 웃기다. 간첩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남들 보는 앞에서 우당탕탕 넘어지거나, 아이들이 놀려도 코흘리개처럼 웃기만 한다. 심지어 사람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대변을 보고도 ‘신분위장을 위한 작전’이라고 한다. 잘생긴 얼굴에 어처구니없는 작전. 지금 40대 이상 관객은 상상조차 못 할 간첩 모습이다. 더구나 같은 동네에 사는 또 다른 남파간첩의 위장신분 역시 파격적이다. 오디션을 보겠다며 기타를 튕기는 노랑머리 청년 해랑(박기웅 분)과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고교생 해진(이현우 분)이다. 한결같이 ‘꽃미남’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남으로 내려보낸 북에선 소식이 없다. 죽음보다 잔혹한 훈련을 견디고 남파된 동구와 간첩 청년들이지만, ‘조국의 위대한 혁명전사’로서의 임무는 멀기만 하고, 당면한 현실은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슈퍼마켓 아주머니와 형 같고 동생 같은 동네 청년들, 남달리 어여쁘게 보이는 또래 아가씨, 귀엽기만 한 아이들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드디어 북으로부터 지령이 떨어진다. ‘전원 자결’이다. 북의 지도자가 바뀌고,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니 간첩의 존재가 양측 모두에게 걸림돌이자 ‘공공의 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남파간첩들이 하나둘 자결을 선택하지만, 동구로 위장한 본명 원류환은 북에 남겨진 어머니의 안전을 확인하고자 살아남기로 한다. 해랑과 해진 역시 납득할 수 없는 당의 명령에 불복하고, 동구와 함께 싸우기로 한다. 결국 이들 3명을 처단하려고 북한에서 간첩교육 특수부대 총책임교관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전사 김태원(손현주 분)이 내려온다.
웹툰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새롭다. “들개처럼 태어나 괴물로 길러졌다”는 첫 대사처럼 오로지 이념과 당의 지령을 완수하려고 살인기계로 훈련받은 청년들이 남파 후 바보 청년, 로커 지망생, 평범한 고교생으로 위장해 살아간다는 발상 자체가 주는 재미와 웃음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가난하지만 따뜻한 심성의 달동네 주민과 함께 어울리면서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점차 깨달아간다는 내용은 제법 짠한 울림을 준다.
분단 다루는 시각의 변화
후반부는 액션 스릴러로 간첩 청년들과 북한 암살단, 국정원 요원들이 물고 물리는 박력 있는 격투와 총격, 빠른 추격전이 펼쳐진다. 코미디와 가족극, 휴먼드라마, 액션 스릴러에 더해 꽃미남 청춘물까지 한국 영화가 쓸 수 있는 장르 패를 거의 다 동원했다. 만듦새는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만, 웹툰을 이미 본 관객에겐 다소 아쉽다. 웹툰 이상의 히든카드를 보여주지 못하고 인물, 공간, 장면, 이야기, 화면구도까지 원작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국 영화가 분단을 다루는 시각에서 중요한 변화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6·25전쟁 후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 영화는 남한 체제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북한 및 간첩을 그렸다. ‘똘이장군’처럼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목적 아동용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다수 제작했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통해 간첩이나 북한군을 단순히 괴물로만 그리지 않고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스크린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최근엔 경제난과 체제 위기로 더는 임무 지령을 받지 못하고 지원도 받지 못한 생계형 간첩이나 고립된 공작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잇따랐다. ‘의형제’ ‘간첩’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국가가 버린 정예요원’이란 최근 할리우드 첩보물의 대세에 한국 대중문화 특유의 ‘꽃미남’판타지를 결합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1970년대에 유행했다는 ‘간첩송’이다. 이 노래는 “한밤중에 이불 쓰고 북한방송 듣는 자, 맑은 날인데도 신발에 진흙 묻은 자, 청자담배 사면서도 청자담배 값을 모르는 자” 역시 113으로 신고하라고 가르친다(현 국가정보원 간첩신고 전화번호는 111이다).
그랬다. 지금의 40, 50대에게 간첩이란 순한 양의 탈을 벗기면 나타나는 뿔난 악마였다. 이유 없이 친절을 베푸는 아저씨가 지금은 성폭행범이 아닌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하지만, 1970~80년대는 간첩이 아닌지 다시 돌아봐야 했다. 학교에도, 문방구에도, 구멍가게에도, 아버지가 가는 대폿집에도 ‘반공, 방첩, 멸공’ 같은 구호가 서슬 퍼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때였고, ‘간첩 잡는 아빠 되고 신고하는 엄마 되자’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는 표어가 사방에 걸렸던 시절이다. 극장에선 ‘간첩 잡는 똘이장군’(‘똘이장군’)이 반공 영웅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어린 관객에게 쏟아부었다. 돼지 같은 모양을 한 혹 달린 괴수는 어린 관객 머리에 그대로 간첩 형상으로 각인됐다.
그렇다면 지금 어리고 젊은 세대에겐 어떨까. 필명 ‘HUN’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는 간첩이나 분단을 과거처럼 ‘역사적 실존’이나 ‘이념교육의 산물’이 아닌 ‘오락 장르의 판타지’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가난한 달동네, 허름한 슈퍼마켓에 동구(김수현 분)라는 청년이 일한다. 뭐가 좋은지 늘 헤벌쭉하니 웃고 다니고, 다 컸는데도 어린애처럼 코를 훌쩍이며, 골목 어귀를 다닐 때마다 엎어지고 자빠지니 동네 아이들에게조차 놀림 받는 바보 청년이다. 그런데 그의 실체는 따로 있다. 북한에서 특수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 북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인기계’로 훈련받고 의학, 공학, 화학 등 최고 교육까지 받은 특수 공작원이다.
‘오락 장르의 판타지’로 소비
그가 하는 짓은 꽤나 웃기다. 간첩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남들 보는 앞에서 우당탕탕 넘어지거나, 아이들이 놀려도 코흘리개처럼 웃기만 한다. 심지어 사람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대변을 보고도 ‘신분위장을 위한 작전’이라고 한다. 잘생긴 얼굴에 어처구니없는 작전. 지금 40대 이상 관객은 상상조차 못 할 간첩 모습이다. 더구나 같은 동네에 사는 또 다른 남파간첩의 위장신분 역시 파격적이다. 오디션을 보겠다며 기타를 튕기는 노랑머리 청년 해랑(박기웅 분)과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고교생 해진(이현우 분)이다. 한결같이 ‘꽃미남’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남으로 내려보낸 북에선 소식이 없다. 죽음보다 잔혹한 훈련을 견디고 남파된 동구와 간첩 청년들이지만, ‘조국의 위대한 혁명전사’로서의 임무는 멀기만 하고, 당면한 현실은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는 슈퍼마켓 아주머니와 형 같고 동생 같은 동네 청년들, 남달리 어여쁘게 보이는 또래 아가씨, 귀엽기만 한 아이들이다.
그러던 그들에게 드디어 북으로부터 지령이 떨어진다. ‘전원 자결’이다. 북의 지도자가 바뀌고,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니 간첩의 존재가 양측 모두에게 걸림돌이자 ‘공공의 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남파간첩들이 하나둘 자결을 선택하지만, 동구로 위장한 본명 원류환은 북에 남겨진 어머니의 안전을 확인하고자 살아남기로 한다. 해랑과 해진 역시 납득할 수 없는 당의 명령에 불복하고, 동구와 함께 싸우기로 한다. 결국 이들 3명을 처단하려고 북한에서 간첩교육 특수부대 총책임교관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전사 김태원(손현주 분)이 내려온다.
웹툰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새롭다. “들개처럼 태어나 괴물로 길러졌다”는 첫 대사처럼 오로지 이념과 당의 지령을 완수하려고 살인기계로 훈련받은 청년들이 남파 후 바보 청년, 로커 지망생, 평범한 고교생으로 위장해 살아간다는 발상 자체가 주는 재미와 웃음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가난하지만 따뜻한 심성의 달동네 주민과 함께 어울리면서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점차 깨달아간다는 내용은 제법 짠한 울림을 준다.
분단 다루는 시각의 변화
후반부는 액션 스릴러로 간첩 청년들과 북한 암살단, 국정원 요원들이 물고 물리는 박력 있는 격투와 총격, 빠른 추격전이 펼쳐진다. 코미디와 가족극, 휴먼드라마, 액션 스릴러에 더해 꽃미남 청춘물까지 한국 영화가 쓸 수 있는 장르 패를 거의 다 동원했다. 만듦새는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만, 웹툰을 이미 본 관객에겐 다소 아쉽다. 웹툰 이상의 히든카드를 보여주지 못하고 인물, 공간, 장면, 이야기, 화면구도까지 원작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국 영화가 분단을 다루는 시각에서 중요한 변화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6·25전쟁 후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 영화는 남한 체제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북한 및 간첩을 그렸다. ‘똘이장군’처럼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목적 아동용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다수 제작했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통해 간첩이나 북한군을 단순히 괴물로만 그리지 않고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스크린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최근엔 경제난과 체제 위기로 더는 임무 지령을 받지 못하고 지원도 받지 못한 생계형 간첩이나 고립된 공작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잇따랐다. ‘의형제’ ‘간첩’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국가가 버린 정예요원’이란 최근 할리우드 첩보물의 대세에 한국 대중문화 특유의 ‘꽃미남’판타지를 결합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