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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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貧(낙빈)

  • 장석주

    입력2013-06-07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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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樂貧(낙빈)
    만질 수 있는 가난이 좋다.

    빗방울과 산사나무 열매의 붉은빛으로

    빚은 가난,

    불가피하게 당신이 가난이라면

    내가 빈 쌀독의 안쪽에 고요히 들어앉은



    공허라도 좋다.

    묵은 울음들을 쟁인 몸의 가난과

    허리에 흉터가 되어버린 가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빠진 접시거나

    굴러다니는 먼지 따위가 뭉쳐진 것,

    우연들로 이룬 해질녘의 가난이라면,

    향후 오십 년 동안 굶어

    나날이 뼛속 슬픔이 빠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난이면,

    당신이 가난 같은 느린 노래하면,

    비를 만져보면 가난의 질감이 느껴진다. 후드득, 후드득… 하늘에서 내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어제 저녁의 붉은 노을이 호사스러웠다. 가난한 당신, 지금 잘살고 있나. 당신과 함께한 세월, 언젠가는 이 시처럼 노래할 날이 있겠지. 당신이 아름답게 가난해서, 지금도 생각한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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