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지음/ 동아일보사/ 216쪽/ 1만2800원
그동안 우리 민족을 알게 모르게 지배해온 것은 ‘운명예정론’이다. 여기에는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푸념, 원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운명이 정해졌다면 죽어라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노력한들 바꿀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운명을 개척하려 할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잣대로 분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자기 이름을 딴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과 ‘이영돈PD 논리로 풀다’ 기획 진행자로 맹활약하는 저자는 사주, 궁합, 관상, 굿 등에 관한 통념에 냉철한 이성을 들이댄다. 저자는 이를 위해 각계각층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다양한 사례를 수집했다. 그뿐 아니라 관찰카메라와 뇌파 분석 같은 과학적 실험도 진행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세 사람이 있다. 그런데 누구는 노숙자로, 누구는 일용직 노동자로, 누구는 대학교수로 살아간다. 동일한 사주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각자의 삶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주팔자는 목·화·토·금·수 음양오행을 근간으로 뽑는다. 육십갑자를 대입하면 약 51만8400개 경우의 수가 나온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이라 할 때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전국에 100여 명 있는 셈이다. 사주는 남녀를 구분하니 자신과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 약 50명이 어딘가에 사는 것이다. 역술가들은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다르게 사는 이유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부모를 잘 만난 것, 관상 등이 그것이다. 운명, 말 그대로 정해진 것에 변수가 있음은 역설적으로 ‘운명은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닐까.
저자는 “역술가들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는 ‘바넘 효과’를 잘 이용한다”고 말한다. 일단 역술가의 말을 믿고 의지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요즘 힘들었구나’ ‘좋은 기회를 날렸구나’ ‘대인관계가 삐걱댔구나’ 하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 쉽게 먹힌다.
‘척 보면 압니다?’ 관상가들은 얼굴에 그 사람 운명이 들었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관상만으로 사람 운명을 알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성전환수술을 한 30대 여성 무용단원을 관상가 4명에게 보여줬다. 굴곡진 그녀 삶을 맞춘 관상가는 2명뿐이었다. 사실 인상과 관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인상이 좋다고 해서 관상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일부 관상가는 “관상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며 성형수술을 권하곤 한다. 성형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활기차게 산다면 모를까 무조건 믿어선 곤란하다.
취재팀의 시선은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믿는 사람, 즉 무당과 굿에도 초점을 맞춘다. 무당의 통과의례는 물론, 칼날이 시퍼렇게 선 작두를 타는 사람들을 만난다. 일부 무당은 ‘노세보 효과’를 악용하기도 한다. 사람이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불길한 말 한 마디를 툭 던져 안 그래도 약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주보다 관상이, 관상보다 심상이 우위’라는 말도 있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