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비서실장과 동격인 장관급의 국가안보실이 독립적으로 운영돼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반면, 차관급의 외교안보수석실은 비서실장 산하에 위치하는 이원적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청와대 내에서 외교안보수석실이 국가안보실로 통합되지 않고 별도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이원적 구조 업무 혼선 가능성
이에 대해 인수위 측은 업무분장 같은 세부 운영 방안을 여전히 “준비 중”이라고 말하지만, 언론은 ‘옥상옥의 중복된 구조’ ‘업무 혼선’ 개연성을 조심스레 제기하며 우려를 표명한다. “북한 핵실험 같은 긴급한 안보 현안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당사자는 누구냐”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인수위는 이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국가안보실 신설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안보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 연장선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당시 정부 위기관리의 혼선을 지켜보면서 현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폐지한 데 대해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에게 오랫동안 조언해온 전직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필자에게 “박 당선인은 천안함 사건 당시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지적하며 ‘이렇게 된 것은 NSC 사무처를 해체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이어지고 정부의 대북정책이 수시로 혼선을 빚는 현상까지 지켜보면서 부처의 외교·안보 정책을 강력히 통합할 수 있는 중심을 재구축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 설명대로라면, 신설될 국가안보실은 NSC 사무처에 비견되는 중·장기 외교·안보 정책과 종합적 정보 분석의 최고 단위가 될 전망이다. 외교·안보가 단기적 현안을 초월해 장기적 안목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 점은 박근혜 정부의 안보 중시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지는 적절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청와대라는 권력기관 속성을 대입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가안보실의 높은 위상과 별개로 여전히 ‘문고리 권력’의 핵심은 예전처럼 외교안보수석실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 권력이란 다름 아닌 대통령의 외교·안보 일정표를 작성하고 집행하는 권한이다. 외교안보수석실에는 외교·국방·통일비서관 3명이 배치돼 부처의 주요 행사 일정을 파악하고 대통령의 외교·안보 일정표를 작성한다.
대통령의 시간표를 짜는 일은 단순한 기능직 업무가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핵심 영역이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일정 자체가 바로 대외 정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국 선택은 곧바로 외교 정책이 된다. 어떤 전문가와 언제, 어디서 만날지에 대한 계획 역시 대통령의 다음 외교·안보 행보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미국 백악관의 경우, 대통령 일정표 작성은 비서실이 아닌 NSC 사무처 업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NSC 사무처가 상징적 권위와 실질적 영향력을 지니는 원천이다. 특히 청와대의 경우, 통상 외교안보수석을 외교통상부(외교부)에서 맡아왔고 대통령 일정을 마지막으로 확정하는 의전비서관을 외교부에서 파견한 고위직 외교관이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부의 영향력은 국가안보실이 신설돼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수위가 청와대 조직개편안을 짜는 동안 외교부가 외교안보수석실을 변함없이 유지하도록 집요하게 로비했다는 얘기가 인수위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국가안보실이 실세가 아닌 허세가 될 개연성도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국가안보실이 담당한다는 ‘중·장기 전략적 대응’이라는 업무가 과연 실체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저마다 동북아 정세를 내다보면서 더 주도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수 있는 큰 틀의 외교·안보 정책을 구상하고자 했다.
외교부 집요한 로비 의혹
1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와 옥동석, 강석훈 위원(오른쪽부터)이 정부조직 후속 개편안을 발표하며 웃고 있다.
외교·안보 부처의 조직 이기주의와 비밀주의 벽을 혁파하고 국가의 종합 전략을 수립하려고 한 정부는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였다. 대통령 리더십이 외교·안보에 강력하게 관철되도록 한 기반은 바로 NSC 사무처였다. 그러나 이 경우 NSC 사무처 권한이 너무 커 부처 반발을 초래했고,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일관될수록 정치적 반대라는 역풍에 직면하는 문제점이 노출됐다.
결국 역대 정부의 중·장기 정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치밀한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이 부실한 것은 물론, 부처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규범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이명박 정부의 경우, 이전 정부의 정책 기반까지 송두리째 청산함으로써 5년 동안 외교·안보의 재앙을 자초했다.
정권 초기 이전의 외교·안보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외교안보자문단,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통일고문회의, 안보관계장관회의,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등 각종 공식, 비공식 기능을 확대하고 안보특별보좌관, 대외전략기획관, 위기관리수석 직위를 신설해 운영한 결과 업무 분장에 대혼란이 초래됐다. 대북정책도 비핵개방3000에 이어 상생공영 정책이 나왔다가 그마저도 용두사미가 됐으며, 국방개혁안도 정권 임기 중 각기 다른 계획이 3회 발표됐고, 위기관리 기능 역시 위기관리상황실이 위기관리센터로 개편되기까지 3차례 체제 개편을 맞았다.
그러는 동안 국가의 종합 외교·안보정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미처 예기치 못한 안보위기에 대응하느라 중·장기적 비전 자체를 만들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 글로벌코리아를 표방하고도 주변국 관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안보 정책의 사령탑이 될 국가안보실의 위상과 기능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는 이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반도 미래를 좌우할 외교·안보 정책이 부처 이기주의에 끌려 다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