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장소녀’의 영웅적 이미지를 수없이 봐왔다.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잔 다르크다. 당시에는 여성이 남장을 하는 것이 큰 ‘죄’였다. 그녀는 수많은 남성 속에서 ‘전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리고 유사시 정조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반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법정 명령에 따라 다시 여자 옷을 입었다. 하지만 감옥을 찾아온 한 잉글랜드 영주가 그녀를 강간하려 들자 다시 남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은 단지 정조를 지키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제주도 신화의 대표적 여신 자청비(自請妃)는 자신에게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남장을 결심한다. 빨래터에서 만난 나그네 문국성 도령이 글공부를 하러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즉석에서 남장을 하고 따라나선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고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며, 함께 서당에 앉아 글공부를 한다.
날이 갈수록 자청비의 공부는 일취월장하고, 문 도령은 자청비를 따라가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한 방에서 잠을 자다 보니 점점 자청비 성별도 의심되기 시작한다. 자청비를 시험하려고 문 도령은 내기를 제안한다. “우리 오줌 갈기기 내기를 해보면 어떨까?” 문 도령은 남성성을 과시함으로써 그녀의 기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자청비는 꾀를 내 대나무 막대기를 잘라 바짓가랑이에 넣어둬 오줌 갈기기 내기에서조차 문 도령을 이긴다.
제주도 신화의 대표적 여신
낙심한 문 도령에게 전갈이 날아온다. 본래 하늘 옥황의 아들 문 도령은 서수왕 딸아기한테 장가를 가야 했다. 자청비는 그제야 아쉬운 마음이 들어, 버드나무 이파리에 재치만점 연애편지를 써서 문 도령을 흔들어놓는다. “눈치 모른 문 도령아, 멍청한 문 도령아. 연 3년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도 남녀 구별 눈치 모른 문 도령아.” ‘배움’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는 최고 미디어가 돼준다. 문 도령은 그제야 둘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깨달았고, 둘은 마침내 설레는 첫날밤을 맞는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하지 못한 문 도령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설상가상 자청비네 하인 정수남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는다. 자청비는 사방에서 여성성을 실험당하고 있다. 부모는 딸이 “조신하지 못하다”며 꾸짖고, 연인은 사랑을 나눴으나 사랑에 책임지지 않으며, 그녀 육체를 노리는 하인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정수남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자청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다. 분명 정당방위였으나 부모는 오히려 자청비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이년아 저년아, 계집년이 사람을 죽이다니. 네년은 시집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종은 살려두면 우리 두 늙은이 걱정 없이 먹여 살려준다.”
자청비는 ‘딸자식보다 종놈의 경제적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부모와 함께 살 수 없어 또 한 번 남장을 한다. 첫 번째 남장은 ‘세상의 배움’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 남장은 ‘나만의 운명’을 찾기 위한 모험이다. 그녀는 한 주모할머니 집에서 신세를 지는데, 그 집에서 비단 짜는 일을 돕다 자신이 짜는 그 비단이 문 도령의 결혼식 폐백에 쓸 비단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또다시 글솜씨를 한껏 발휘해 문 도령에게 애절한 사랑 메시지를 남긴다. 비단 무늬 자체를 사랑의 글자로 가득 도배한 것이다. “가련하다 자청비.” 그녀의 간절한 메시지는 하늘나라 문 도령에 가 닿고, 문 도령은 마침내 자청비를 만나러 온다. “드디어 내가 왔노라”며 늠름한 남성미를 발산하려는 문 도령에게 그녀는 “문구멍으로 손가락을 내놓아보십시오”라며 문 도령의 정체성을 시험한다. 문 도령이 손가락을 내놓으니, 자청비는 씩 웃으며 바늘로 손가락을 콕 찔러버린다. 하늘나라에서 몸소 행차하신 문 도령은 화가 잔뜩 나서 그녀를 떠나버린다.
부모도 모자라 이번에는 연인에게까지 버림받은 자청비. 어디에도 몸 붙일 곳이 없는 그녀는 결국 세 번째 남장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한층 강도 높은 남장인데, 바로 머리를 빡빡 밀고 승복을 입은 뒤 목탁을 치며 쌀을 얻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자청비는 그렇게 떠돌다 옥황상제의 궁녀들을 도와줘 문 도령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자청비에게 남장은 순결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꾸기 위한 최고의 무기였던 것이다.
자청비의 마지막 관문은 하늘나라 시부모였다. “이놈 저놈 죽일 놈아, 이게 무슨 말이냐? 내 며느리 될 사람은 쉰 자 구덩이를 파놓고, 숯 쉰 섬을 묻어 불을 피워놓고 불 위에 작두를 걸어 칼날 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릿감이 된다.”
운명을 개척하는 ‘자청’ 정신
그녀는 눈물로 세수하고 여린 발로 작두 위에 올라탄다. 그녀는 타오르는 숯불을, 번뜩이는 작두를, 거대한 구덩이를 모두 통과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끄트머리에 가서 긴장이 풀렸는지 발뒤꿈치가 슬쩍 미끄러졌고, 성기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것이 자청비신화가 설명하는 ‘월경’ 기원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여인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 그것이 “여자아이 열다섯 살이 넘어가면 다달이 몸엣것 오는 법”이라는 것이다.
자청비는 하늘나라에서 일어난 큰 사변까지 막아내 천자에게 상을 받는다.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내주며 자청비에게 포상하려는 천자 호의를 그녀는 단호히 거절한다. “저에게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은 과하십니다. 주실 것이 있으면 오곡 씨앗이나 내려주시옵소서.” 천자가 오곡 씨앗을 내주니 자청비는 문 도령과 더불어 칠월 보름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이것이 바로 ‘백중날’기원이다.
부모와 연인은 때로는 전혀 모르는 남보다 더 심한 걸림돌이 되는데, 자청비는 이름처럼 고난을 ‘자청’해 모든 간난신고를 이겨낸다. 그녀의 남장은 ‘남성처럼 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 강인한 여성성’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로 기능한다.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오곡 씨앗’이라는 지극히 소박하고 인간적인 희망에서부터 시작하는 그녀의 용기. 그녀는 힘 안 들이고 얻은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안다. 씨앗을 뿌려 오곡을 키우고,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자청비가 가진 눈부신 여성성의 비밀인 것이다. 그녀의 첫 번째 남장은 ‘여성의 자리’를 포기한 것이고, 두 번째 남장은 ‘딸의 자리’를 포기한 것이며, 세 번째 남장은 ‘평범한 인간의 자리’마저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많은 것을 포기할수록 더 소중한 것을 얻어냈다. 그것은 바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용기와 자유다. 자청비가 쟁취한 자유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씨앗을 뿌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청’ 정신이었다.
그림 제공·한겨레 아이들 ‘농사와 사랑의 여신 자청비’
제주도 신화의 대표적 여신 자청비(自請妃)는 자신에게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남장을 결심한다. 빨래터에서 만난 나그네 문국성 도령이 글공부를 하러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즉석에서 남장을 하고 따라나선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고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며, 함께 서당에 앉아 글공부를 한다.
날이 갈수록 자청비의 공부는 일취월장하고, 문 도령은 자청비를 따라가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한 방에서 잠을 자다 보니 점점 자청비 성별도 의심되기 시작한다. 자청비를 시험하려고 문 도령은 내기를 제안한다. “우리 오줌 갈기기 내기를 해보면 어떨까?” 문 도령은 남성성을 과시함으로써 그녀의 기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자청비는 꾀를 내 대나무 막대기를 잘라 바짓가랑이에 넣어둬 오줌 갈기기 내기에서조차 문 도령을 이긴다.
제주도 신화의 대표적 여신
낙심한 문 도령에게 전갈이 날아온다. 본래 하늘 옥황의 아들 문 도령은 서수왕 딸아기한테 장가를 가야 했다. 자청비는 그제야 아쉬운 마음이 들어, 버드나무 이파리에 재치만점 연애편지를 써서 문 도령을 흔들어놓는다. “눈치 모른 문 도령아, 멍청한 문 도령아. 연 3년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도 남녀 구별 눈치 모른 문 도령아.” ‘배움’은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는 최고 미디어가 돼준다. 문 도령은 그제야 둘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깨달았고, 둘은 마침내 설레는 첫날밤을 맞는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하지 못한 문 도령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설상가상 자청비네 하인 정수남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는다. 자청비는 사방에서 여성성을 실험당하고 있다. 부모는 딸이 “조신하지 못하다”며 꾸짖고, 연인은 사랑을 나눴으나 사랑에 책임지지 않으며, 그녀 육체를 노리는 하인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정수남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자청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다. 분명 정당방위였으나 부모는 오히려 자청비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이년아 저년아, 계집년이 사람을 죽이다니. 네년은 시집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종은 살려두면 우리 두 늙은이 걱정 없이 먹여 살려준다.”
자청비는 ‘딸자식보다 종놈의 경제적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부모와 함께 살 수 없어 또 한 번 남장을 한다. 첫 번째 남장은 ‘세상의 배움’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 남장은 ‘나만의 운명’을 찾기 위한 모험이다. 그녀는 한 주모할머니 집에서 신세를 지는데, 그 집에서 비단 짜는 일을 돕다 자신이 짜는 그 비단이 문 도령의 결혼식 폐백에 쓸 비단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또다시 글솜씨를 한껏 발휘해 문 도령에게 애절한 사랑 메시지를 남긴다. 비단 무늬 자체를 사랑의 글자로 가득 도배한 것이다. “가련하다 자청비.” 그녀의 간절한 메시지는 하늘나라 문 도령에 가 닿고, 문 도령은 마침내 자청비를 만나러 온다. “드디어 내가 왔노라”며 늠름한 남성미를 발산하려는 문 도령에게 그녀는 “문구멍으로 손가락을 내놓아보십시오”라며 문 도령의 정체성을 시험한다. 문 도령이 손가락을 내놓으니, 자청비는 씩 웃으며 바늘로 손가락을 콕 찔러버린다. 하늘나라에서 몸소 행차하신 문 도령은 화가 잔뜩 나서 그녀를 떠나버린다.
부모도 모자라 이번에는 연인에게까지 버림받은 자청비. 어디에도 몸 붙일 곳이 없는 그녀는 결국 세 번째 남장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한층 강도 높은 남장인데, 바로 머리를 빡빡 밀고 승복을 입은 뒤 목탁을 치며 쌀을 얻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자청비는 그렇게 떠돌다 옥황상제의 궁녀들을 도와줘 문 도령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자청비에게 남장은 순결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꿈꾸기 위한 최고의 무기였던 것이다.
자청비의 마지막 관문은 하늘나라 시부모였다. “이놈 저놈 죽일 놈아, 이게 무슨 말이냐? 내 며느리 될 사람은 쉰 자 구덩이를 파놓고, 숯 쉰 섬을 묻어 불을 피워놓고 불 위에 작두를 걸어 칼날 위를 타 나가고 타 들어와야 며느릿감이 된다.”
운명을 개척하는 ‘자청’ 정신
그녀는 눈물로 세수하고 여린 발로 작두 위에 올라탄다. 그녀는 타오르는 숯불을, 번뜩이는 작두를, 거대한 구덩이를 모두 통과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끄트머리에 가서 긴장이 풀렸는지 발뒤꿈치가 슬쩍 미끄러졌고, 성기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것이 자청비신화가 설명하는 ‘월경’ 기원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여인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 그것이 “여자아이 열다섯 살이 넘어가면 다달이 몸엣것 오는 법”이라는 것이다.
자청비는 하늘나라에서 일어난 큰 사변까지 막아내 천자에게 상을 받는다.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내주며 자청비에게 포상하려는 천자 호의를 그녀는 단호히 거절한다. “저에게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은 과하십니다. 주실 것이 있으면 오곡 씨앗이나 내려주시옵소서.” 천자가 오곡 씨앗을 내주니 자청비는 문 도령과 더불어 칠월 보름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이것이 바로 ‘백중날’기원이다.
부모와 연인은 때로는 전혀 모르는 남보다 더 심한 걸림돌이 되는데, 자청비는 이름처럼 고난을 ‘자청’해 모든 간난신고를 이겨낸다. 그녀의 남장은 ‘남성처럼 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 강인한 여성성’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로 기능한다.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오곡 씨앗’이라는 지극히 소박하고 인간적인 희망에서부터 시작하는 그녀의 용기. 그녀는 힘 안 들이고 얻은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안다. 씨앗을 뿌려 오곡을 키우고,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자청비가 가진 눈부신 여성성의 비밀인 것이다. 그녀의 첫 번째 남장은 ‘여성의 자리’를 포기한 것이고, 두 번째 남장은 ‘딸의 자리’를 포기한 것이며, 세 번째 남장은 ‘평범한 인간의 자리’마저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많은 것을 포기할수록 더 소중한 것을 얻어냈다. 그것은 바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용기와 자유다. 자청비가 쟁취한 자유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씨앗을 뿌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청’ 정신이었다.
그림 제공·한겨레 아이들 ‘농사와 사랑의 여신 자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