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새해 첫머리에 ‘희망’을 얘기한다. ‘국민 행복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가 2월 25일 새로 출범할 계사년(癸巳年) 벽두라 더 그렇다. 그동안 갈피조차 잡지 못하던 미국 재정절벽(Fiscal Cliff·감세혜택 종료와 급격한 재정 지출 감소로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는 현상) 협상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대미(對美) 수출에 청신호가 켜져 우리 경제가 일단 한숨을 돌린 점도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한 요소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27일 기획재정부(기재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 또한 국민의 기대심리를 한껏 부풀게 하는 보고서라 할 만하다. 이는 박재완 기재부 장관이 정부부처 가운데 국가의 장기전략을 다루는 곳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같은 해 1월 신설한 기재부 장기전략국의 첫 ‘작품’. ‘장기(長期)’라는 명칭이 붙은 국 단위 부서는 장기전략국이 정부 조직 사상 최초다.
‘장밋빛 청사진’ 아닌 장기전략
중장기 정책과제는 향후 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와 위험요인으로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이 불확실하다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방향으로 ‘창의와 개방에 기초한 스마트 지식경제’ ‘갈등 완화와 공생 발전으로 함께하는 사회’ ‘미래 위험을 이겨내는 지속가능한 체제’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아울러 ‘고등학교 문·이과 계열 통합’ ‘대기업 자금으로 중소기업 대출’ ‘고령자 기준 연령 70~75세로 상향 조정’ ‘양성평등형 휴직제 도입’ 같은 다양한 방안도 내놓았다.
2050년 한국 사회를 미리 내다본 이 같은 과제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중장기 정책과제 수립을 진두지휘한 최광해(52) 기재부 장기전략국장을 1월 2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중장기 정책과제는 현 시점에서 30년 이상 시계(視界)를 갖고 국가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장기간의 경제, 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거기에 적합한 정책과제를 추출하기가 녹록지 않았을 텐데.
“이번 정책과제는 7차례의 민관 합동 중장기전략위원회(공동위원장 박재완 기재부 장관,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개최와 30여 회의 전문가 간담회를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먼저 통찰력을 극대화하려고 중장기전략위원회를 만들어 관계부처 및 민간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부터 결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위원회를 개최했고, 기재부 제1차관 주재 실무조정위원회도 7차례 열었다. 이를 위해 관계부처, 주요 국책연구기관, 학계와 공동으로 장기전략위원회 아래 실무작업반 10개를 구성하는 한편, 장기전략네트워크도 구축해 각계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제, 토론 과정을 반복했다. 편협한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를 축약한 게 아니다.”
▼ 당초 지난해 9월 중에 장기전략 보고서를 내놓기로 한 것으로 안다.
“장기전략위원회를 지난해 4월 30일 꾸려 시일이 촉박했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어쨌든 9월 말 초안을 거의 작성하긴 했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전면 재검토를 거쳐 정책기조를 대폭 수정했다.”
▼ 미래를 내다보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뜬구름 잡는 식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나.
“큰 방향성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수록 단기적인 일도 좀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만일 1년만 일하는 어부가 있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5년을 생각하는 어부라면 어린 물고기들은 놔줄 것이다. 30년 후를 내다보는 어부라면 물고기를 잡는 데 머물지 않고 키울 궁리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1년짜리 어부 처지에선 30년짜리 어부가 얼마나 허황돼 보이겠나. 눈앞 현안에만 집중하면 장기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 일각에선 2006년 노무현 정부 말에 나온 ‘비전 2030’과 다를 바 없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부모 육아부담률을 2030년까지 37%로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은 ‘비전 2030’은 1100조 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 방법을 찾지 못해 비판받았다.
“중장기 정책과제가 ‘비전 2030’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했다. ‘비전 2030’은 목표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까지 일일이 제시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반면, 중장기 정책과제는 구체적 정책수단과 이행 방안을 도출하기보다 큰 틀에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재원 마련은 정책과제를 과연 어떤 정책수단을 선택해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이번 정책과제는 사회, 경제 전 분야의 목표치를 제시하는 ‘계획’ 요소가 짙었던 박정희 정부 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도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신설 부처의 장기전략국 기능 흡수는 안 될 말
▼ 정책과제 내용 중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고용 시스템 개선 부분이 특히 눈에 띈다. 65세인 고령자 기준을 70~75세로 높이고, 평균 57세인 정년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높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는데,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청년실업 해소와 상충하지 않나.
“5년 이내 단기만 놓고 보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 고령화로 2021년부터는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한다. 2030년엔 노동력 생산인구 부족 규모가 28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그 부족분을 메우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는데,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하니 장년층과 여성 근로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2030년이 닥쳐서야 정년제도를 개편하고 고용 시스템을 바꾸는 건 무리다. 일본도 정년제도 개편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용 시스템을 고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래서 우리도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므로 정년제도 개편과 갈등을 빚지 않도록 세대별 고용률 목표를 만들어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 중장기 정책과제인 만큼 향후 잇따를 정권 교체 과정에서 지속성과 연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법하다. 곧 들어설 새 정부 공약과의 연관성은 어떤가.
“정책과제 수립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우려의 소리가 이명박 정부 말에 이런 걸 준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추진동력이 강한 임기 초에만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면 어느 정부도 5년짜리 미시적 정책 이상은 구상하지 못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대통령 임기와 무관하게 항상 준비해나가야 할 일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중장기 정책과제다. 미래는 도래하는 것이지만,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이번 정책과제는 ‘마무리’나 ‘끝’이 아니라 ‘출발’ 개념이다. 장기전략국 초대 국장으로서 국가 미래를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것, 그 시스템 하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정책과제를 내놓았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다만 정책과제를 1년 안에 만들다 보니 기존 연구와 아이디어를 끌어모으는 데 주력한 감도 없지 않아 앞으로 보완작업을 하려고 한다. 새 정부의 공약에 맞는 정책과제를 마련하는 노력도 기울일 것이다.”
▼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선 새 정부 조직개편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를 담당할 신설 부처로 예상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장기전략국 기능을 흡수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직개편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소관 사안이다. 장기전략국은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을 만드는 게 직제상 주어진 임무인 만큼 성장 잠재력, 인구구조, 기후변화와 에너지 수급, 경제·사회적 격차, 남북통일 등 국가 전체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을 마련하는 데 충실하려고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 과학기술 트렌드를 발견해 거기에 적합한 여러 체계를 갖춰야 하는 만큼 당연히 미래 예측 기능도 필요하겠지만, 굳이 기재부의 장기전략국 기능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27일 기획재정부(기재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 또한 국민의 기대심리를 한껏 부풀게 하는 보고서라 할 만하다. 이는 박재완 기재부 장관이 정부부처 가운데 국가의 장기전략을 다루는 곳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같은 해 1월 신설한 기재부 장기전략국의 첫 ‘작품’. ‘장기(長期)’라는 명칭이 붙은 국 단위 부서는 장기전략국이 정부 조직 사상 최초다.
‘장밋빛 청사진’ 아닌 장기전략
중장기 정책과제는 향후 세계경제 흐름의 변화와 위험요인으로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이 불확실하다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방향으로 ‘창의와 개방에 기초한 스마트 지식경제’ ‘갈등 완화와 공생 발전으로 함께하는 사회’ ‘미래 위험을 이겨내는 지속가능한 체제’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아울러 ‘고등학교 문·이과 계열 통합’ ‘대기업 자금으로 중소기업 대출’ ‘고령자 기준 연령 70~75세로 상향 조정’ ‘양성평등형 휴직제 도입’ 같은 다양한 방안도 내놓았다.
2050년 한국 사회를 미리 내다본 이 같은 과제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중장기 정책과제 수립을 진두지휘한 최광해(52) 기재부 장기전략국장을 1월 2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중장기 정책과제는 현 시점에서 30년 이상 시계(視界)를 갖고 국가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장기간의 경제, 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거기에 적합한 정책과제를 추출하기가 녹록지 않았을 텐데.
“이번 정책과제는 7차례의 민관 합동 중장기전략위원회(공동위원장 박재완 기재부 장관,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개최와 30여 회의 전문가 간담회를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먼저 통찰력을 극대화하려고 중장기전략위원회를 만들어 관계부처 및 민간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부터 결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위원회를 개최했고, 기재부 제1차관 주재 실무조정위원회도 7차례 열었다. 이를 위해 관계부처, 주요 국책연구기관, 학계와 공동으로 장기전략위원회 아래 실무작업반 10개를 구성하는 한편, 장기전략네트워크도 구축해 각계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제, 토론 과정을 반복했다. 편협한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를 축약한 게 아니다.”
▼ 당초 지난해 9월 중에 장기전략 보고서를 내놓기로 한 것으로 안다.
“장기전략위원회를 지난해 4월 30일 꾸려 시일이 촉박했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어쨌든 9월 말 초안을 거의 작성하긴 했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전면 재검토를 거쳐 정책기조를 대폭 수정했다.”
▼ 미래를 내다보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뜬구름 잡는 식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나.
“큰 방향성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수록 단기적인 일도 좀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만일 1년만 일하는 어부가 있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5년을 생각하는 어부라면 어린 물고기들은 놔줄 것이다. 30년 후를 내다보는 어부라면 물고기를 잡는 데 머물지 않고 키울 궁리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1년짜리 어부 처지에선 30년짜리 어부가 얼마나 허황돼 보이겠나. 눈앞 현안에만 집중하면 장기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 일각에선 2006년 노무현 정부 말에 나온 ‘비전 2030’과 다를 바 없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부모 육아부담률을 2030년까지 37%로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은 ‘비전 2030’은 1100조 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 방법을 찾지 못해 비판받았다.
“중장기 정책과제가 ‘비전 2030’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했다. ‘비전 2030’은 목표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까지 일일이 제시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반면, 중장기 정책과제는 구체적 정책수단과 이행 방안을 도출하기보다 큰 틀에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재원 마련은 정책과제를 과연 어떤 정책수단을 선택해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이번 정책과제는 사회, 경제 전 분야의 목표치를 제시하는 ‘계획’ 요소가 짙었던 박정희 정부 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도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신설 부처의 장기전략국 기능 흡수는 안 될 말
▼ 정책과제 내용 중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고용 시스템 개선 부분이 특히 눈에 띈다. 65세인 고령자 기준을 70~75세로 높이고, 평균 57세인 정년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높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는데,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청년실업 해소와 상충하지 않나.
“5년 이내 단기만 놓고 보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 고령화로 2021년부터는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한다. 2030년엔 노동력 생산인구 부족 규모가 28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그 부족분을 메우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는데,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하니 장년층과 여성 근로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2030년이 닥쳐서야 정년제도를 개편하고 고용 시스템을 바꾸는 건 무리다. 일본도 정년제도 개편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용 시스템을 고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래서 우리도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므로 정년제도 개편과 갈등을 빚지 않도록 세대별 고용률 목표를 만들어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 중장기 정책과제인 만큼 향후 잇따를 정권 교체 과정에서 지속성과 연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법하다. 곧 들어설 새 정부 공약과의 연관성은 어떤가.
“정책과제 수립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우려의 소리가 이명박 정부 말에 이런 걸 준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추진동력이 강한 임기 초에만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면 어느 정부도 5년짜리 미시적 정책 이상은 구상하지 못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대통령 임기와 무관하게 항상 준비해나가야 할 일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중장기 정책과제다. 미래는 도래하는 것이지만,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이번 정책과제는 ‘마무리’나 ‘끝’이 아니라 ‘출발’ 개념이다. 장기전략국 초대 국장으로서 국가 미래를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것, 그 시스템 하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정책과제를 내놓았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다만 정책과제를 1년 안에 만들다 보니 기존 연구와 아이디어를 끌어모으는 데 주력한 감도 없지 않아 앞으로 보완작업을 하려고 한다. 새 정부의 공약에 맞는 정책과제를 마련하는 노력도 기울일 것이다.”
▼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선 새 정부 조직개편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를 담당할 신설 부처로 예상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장기전략국 기능을 흡수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직개편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소관 사안이다. 장기전략국은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을 만드는 게 직제상 주어진 임무인 만큼 성장 잠재력, 인구구조, 기후변화와 에너지 수급, 경제·사회적 격차, 남북통일 등 국가 전체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을 마련하는 데 충실하려고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 과학기술 트렌드를 발견해 거기에 적합한 여러 체계를 갖춰야 하는 만큼 당연히 미래 예측 기능도 필요하겠지만, 굳이 기재부의 장기전략국 기능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