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 업무와 현장 업무를 두루 거친 인재입니다. 리더의 자질인 혁신과 창의성을 갖춘 분이기 때문에 발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삼성화재 인사파트 진창환 차장은 삼성화재를 대표하는 여성 팀장으로 최성연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41·부장급)을 추천했다. 삼성화재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인 그는 본부 지원팀에서 매출관리를 담당하고 사내 아이디어뱅크인 스타지오팀에서 기반을 다진 뒤 기업보험 영업, 제휴마케팅, 해외업무, 경영혁신 부서를 거쳤다. 2011년 말부터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으로서 건강관리를 위한 무료스케일링, 삼성화재 멤버십카드 같은 서비스를 개발, 운영하고 있다.
최 팀장은 2004년과 2007년 삼성화재 창립 기념 우수상 표창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하지만 서울대 의류학과(90학번) 재학 시절에는 특별한 꿈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뜻을 펼치고 싶어 의류 계열사가 있는 삼성에 지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3순위로 지망한 삼성화재에 배치되면서부터 강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패션 관련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금융 계열사에 배치돼 당황했어요. 고등학생 때 이과 출신이라 수학에 대한 부담감은 덜했지만 막막했죠. 입사 후 18년 동안 10여 번 보직을 옮기면서 같은 마음이 들었는데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았어요(웃음).”
별동부대 근무하며 유연해져
처음 일한 곳은 본부 지원부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조직별 매출표, 목표 대비 달성도를 작성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영업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그는 기업보험 영업 부서에 자원했다. 오리엔테이션 강사가 “손해보험의 특징은 기업보험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 보험료가 얼마나 될까”라며 기업보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6개월 만의 이동이었지만, 기업 영업을 3개월도 못 하고 신생조직인 스타지오팀으로 가게 된다.
“이학수 사장님이 부임하면서 팀장, 과장, 사원 대리급 총 7명을 중심으로 아이디어뱅크가 만들어졌어요. 초년병들이 중간 결재를 받지 않고 직속으로 사장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별동부대가 만들어진 거죠. 파격적인 조직이라 출퇴근시간은 물론 복장, 경비, 업무 면에서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어요. 전국을 다니면서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을 만나 고민을 들었고, 미국 보험회사를 탐방해 기업의 가능성도 찾았죠.”
무한 자유와 무한 책임이 뒤따르는 조직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 새벽 2, 3시까지 경영서를 탐독하며 책상에서 잠들기 일쑤였다. 그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스타지오팀에 있던 1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화재보험의 꽃이라는 기업보험 영업을 4년 반간 ‘원 없이’ 하며 ‘현장’을 배웠다.
“전자업체에서 20억 원짜리 기업보험 계약을 체결해 우수영업상을 받았어요. TF팀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서 보험상품을 만드는 데만 6개월이 걸렸죠. 기존에 없던 상품이라 고객사에서도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영업할 때 수많은 결정권자를 설득하느라 애먹었어요. 당시 외환위기 시기라 고객사에서도 긴축 경영을 할 때였거든요. 그때 팀장님을 보면서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어요. 계약 성사가 어려워지면 상대방을 만나 ‘절대로 안 된다’는 표현만큼은 무마하고 오셨죠. 문제가 발생해 보고서를 올리면 ‘됐고, (현장에) 가자’ 하셨어요. 고민하는 것보다 상대를 만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걸 배웠습니다.”
이후 그는 제휴 마케팅을 담당한다. 이 또한 새로운 업무라 어렵게 여길 수 있었지만, 다른 회사와 제휴하는 프로그램을 하나둘 만들었다. 여신 기능이 없던 우체국 예·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대행하고, 업체들의 고객 확보를 위해 무료, 소액 보험 서비스를 제공해 보험 매출을 늘린 것은 그가 5년 동안 일하며 얻은 작은 성과다.
에너지 가득한 사람도 방전된다는 10년차 직장인. 그는 입사 10년째인 2005년 삼성화재 여성 사원으로는 처음으로 지역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재충전했다. 이 과정은 기업의 글로벌 도약을 위해 사원이 1년 동안 경비를 지원받아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을 하면서 지역 연구를 하는 것으로, 최 팀장은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3개월 동안 외국어생활관에서 합숙하며 중국어를 배웠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5세 된 외아들이 눈에 밟혔다.
“혼자 가야 해서 망설여지더라고요. 한창 엄마 손이 많이 갈 때라….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이 격려해줘 갈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 좋은 제안을 받았는데도 안 가면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잖아요. 다행히 그 시간을 거치면서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내몽고 지역 등을 여행하며 중국 시장이 넓다는 것도 느꼈죠. ‘수정 인쇄물을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는 중국인을 설득해 밤새 인쇄소를 지키면서 ‘안 된다는 일도 현장을 찾아가면 된다’는 경험도 했고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
복직 뒤 그는 해외 시장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면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해외 업무를 담당하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주니어보드팀에서 팀장으로 일했다. 삼성화재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이 된 것이다(당시 주니어보드는 규정에 근거한 기구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보직은 아니지만 2011년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이 되면서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이 됐다).
“팀장으로서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 혁신 조직을 맡게 돼 처음에는 위축됐죠. 게다가 주니어보드팀은 스타지오팀과 달리 과·차장급으로 이뤄졌어요. 직급이 낮은 후배들에게는 ‘현장에는 가보고 판단하느냐’면서 혼내기도 하지만, 저와 팀원 사이에 직급 차가 나지 않아 무조건 큰소리를 칠 수도 없었죠. 저는 팀원들에게 ‘참모 리더십’을 강조했고, 팀원들이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놓으면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뜻밖에 “자기 계발을 따로 하지 않은 것이 자기 계발”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인의 삶을 살펴 소비자 심리를 짐작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고 장을 보고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이 뇌 훈련에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그는 “백화점, 놀이공원, 음식점은 물론, 개그프로그램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최 팀장의 목표는 뭘까. 그는 “인사전문가가 배치하는 주어진 자리에서 일하겠다”면서 “무슨 일이든 기회로 삼고 배우는 자세로 도전하면 성장하게 된다”고 답했다. 후배들에게 “꿈을 가둬두지 마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돌이켜보면 영업 업무로 일을 시작해 많이 배웠어요. 영업은 무조건 ‘나가서 고민해보라’는 거였으니까요. 실적을 내야 했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했거든요. 하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 대하는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저를 울게 만들었던 사람에게도 자꾸 찾아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니까 나중에는 저를 신뢰하는 고객이 되더라고요. 실상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일이 사람을 대하면서 하는 거잖아요.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면 인지상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삼성화재 인사파트 진창환 차장은 삼성화재를 대표하는 여성 팀장으로 최성연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41·부장급)을 추천했다. 삼성화재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인 그는 본부 지원팀에서 매출관리를 담당하고 사내 아이디어뱅크인 스타지오팀에서 기반을 다진 뒤 기업보험 영업, 제휴마케팅, 해외업무, 경영혁신 부서를 거쳤다. 2011년 말부터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으로서 건강관리를 위한 무료스케일링, 삼성화재 멤버십카드 같은 서비스를 개발, 운영하고 있다.
최 팀장은 2004년과 2007년 삼성화재 창립 기념 우수상 표창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하지만 서울대 의류학과(90학번) 재학 시절에는 특별한 꿈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뜻을 펼치고 싶어 의류 계열사가 있는 삼성에 지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3순위로 지망한 삼성화재에 배치되면서부터 강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패션 관련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금융 계열사에 배치돼 당황했어요. 고등학생 때 이과 출신이라 수학에 대한 부담감은 덜했지만 막막했죠. 입사 후 18년 동안 10여 번 보직을 옮기면서 같은 마음이 들었는데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았어요(웃음).”
별동부대 근무하며 유연해져
처음 일한 곳은 본부 지원부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조직별 매출표, 목표 대비 달성도를 작성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영업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그는 기업보험 영업 부서에 자원했다. 오리엔테이션 강사가 “손해보험의 특징은 기업보험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 보험료가 얼마나 될까”라며 기업보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6개월 만의 이동이었지만, 기업 영업을 3개월도 못 하고 신생조직인 스타지오팀으로 가게 된다.
“이학수 사장님이 부임하면서 팀장, 과장, 사원 대리급 총 7명을 중심으로 아이디어뱅크가 만들어졌어요. 초년병들이 중간 결재를 받지 않고 직속으로 사장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별동부대가 만들어진 거죠. 파격적인 조직이라 출퇴근시간은 물론 복장, 경비, 업무 면에서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어요. 전국을 다니면서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을 만나 고민을 들었고, 미국 보험회사를 탐방해 기업의 가능성도 찾았죠.”
무한 자유와 무한 책임이 뒤따르는 조직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 새벽 2, 3시까지 경영서를 탐독하며 책상에서 잠들기 일쑤였다. 그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스타지오팀에 있던 1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화재보험의 꽃이라는 기업보험 영업을 4년 반간 ‘원 없이’ 하며 ‘현장’을 배웠다.
“전자업체에서 20억 원짜리 기업보험 계약을 체결해 우수영업상을 받았어요. TF팀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서 보험상품을 만드는 데만 6개월이 걸렸죠. 기존에 없던 상품이라 고객사에서도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영업할 때 수많은 결정권자를 설득하느라 애먹었어요. 당시 외환위기 시기라 고객사에서도 긴축 경영을 할 때였거든요. 그때 팀장님을 보면서 행동의 중요성을 배웠어요. 계약 성사가 어려워지면 상대방을 만나 ‘절대로 안 된다’는 표현만큼은 무마하고 오셨죠. 문제가 발생해 보고서를 올리면 ‘됐고, (현장에) 가자’ 하셨어요. 고민하는 것보다 상대를 만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걸 배웠습니다.”
이후 그는 제휴 마케팅을 담당한다. 이 또한 새로운 업무라 어렵게 여길 수 있었지만, 다른 회사와 제휴하는 프로그램을 하나둘 만들었다. 여신 기능이 없던 우체국 예·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대행하고, 업체들의 고객 확보를 위해 무료, 소액 보험 서비스를 제공해 보험 매출을 늘린 것은 그가 5년 동안 일하며 얻은 작은 성과다.
에너지 가득한 사람도 방전된다는 10년차 직장인. 그는 입사 10년째인 2005년 삼성화재 여성 사원으로는 처음으로 지역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재충전했다. 이 과정은 기업의 글로벌 도약을 위해 사원이 1년 동안 경비를 지원받아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을 하면서 지역 연구를 하는 것으로, 최 팀장은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3개월 동안 외국어생활관에서 합숙하며 중국어를 배웠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5세 된 외아들이 눈에 밟혔다.
“혼자 가야 해서 망설여지더라고요. 한창 엄마 손이 많이 갈 때라….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이 격려해줘 갈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 좋은 제안을 받았는데도 안 가면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잖아요. 다행히 그 시간을 거치면서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내몽고 지역 등을 여행하며 중국 시장이 넓다는 것도 느꼈죠. ‘수정 인쇄물을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는 중국인을 설득해 밤새 인쇄소를 지키면서 ‘안 된다는 일도 현장을 찾아가면 된다’는 경험도 했고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
복직 뒤 그는 해외 시장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면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해외 업무를 담당하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주니어보드팀에서 팀장으로 일했다. 삼성화재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이 된 것이다(당시 주니어보드는 규정에 근거한 기구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보직은 아니지만 2011년 상품서비스파트 파트장이 되면서 공채 출신 첫 여성 팀장이 됐다).
“팀장으로서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 혁신 조직을 맡게 돼 처음에는 위축됐죠. 게다가 주니어보드팀은 스타지오팀과 달리 과·차장급으로 이뤄졌어요. 직급이 낮은 후배들에게는 ‘현장에는 가보고 판단하느냐’면서 혼내기도 하지만, 저와 팀원 사이에 직급 차가 나지 않아 무조건 큰소리를 칠 수도 없었죠. 저는 팀원들에게 ‘참모 리더십’을 강조했고, 팀원들이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놓으면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뜻밖에 “자기 계발을 따로 하지 않은 것이 자기 계발”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인의 삶을 살펴 소비자 심리를 짐작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고 장을 보고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것이 뇌 훈련에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그는 “백화점, 놀이공원, 음식점은 물론, 개그프로그램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최 팀장의 목표는 뭘까. 그는 “인사전문가가 배치하는 주어진 자리에서 일하겠다”면서 “무슨 일이든 기회로 삼고 배우는 자세로 도전하면 성장하게 된다”고 답했다. 후배들에게 “꿈을 가둬두지 마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돌이켜보면 영업 업무로 일을 시작해 많이 배웠어요. 영업은 무조건 ‘나가서 고민해보라’는 거였으니까요. 실적을 내야 했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했거든요. 하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 대하는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저를 울게 만들었던 사람에게도 자꾸 찾아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니까 나중에는 저를 신뢰하는 고객이 되더라고요. 실상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일이 사람을 대하면서 하는 거잖아요.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면 인지상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