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수라상에 오른 궁중음식.
놀랍게도, 먹는 것으로 병을 다스리는 법에 관심을 쏟은 조선 왕이 있다. 어린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재위 1455~1468)가 그 주인공이다. 잦은 병치레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세조는 의학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고, 궐내에서 의서(醫書)를 놓고 친히 강연을 펼칠 정도로 의학 수준도 상당했던 것으로 역사는 전한다.
의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왕위에 오른 지 9년째 되던 해인 1463년 손수 지은 ‘의약론’을 반포함으로써 절정으로 치달았다. 세조 자신이 생각하는 치병의 원리와 의원의 자세를 논한‘의약론’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렸다. 여기서 세조는 여덟 유형의 의사에 대해 논하면서 ‘식의(食醫)’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식의라는 것은 입(口)으로 달게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니, 입이 달면 기운이 편안해지고 입이 쓰면 몸이 괴로워지는 것이다. 음식에도 차고 더운 것이 있어 대처와 치료를 할 수 있다. 어찌 쓰고 시다거나, 마른 풀 또는 썩은 뿌리라고 핑계하겠는가. 지나치게 먹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자가 있는데, 이는 식의가 아니다.”
세조는 차거나 덥거나 쓰거나 신 음식 자체를 곧 약이라 여겼고, 음식에 대한 입맛의 달고 씀을 통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식의는 음식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달게 먹게 해 병을 고치는 존재이므로 처방전에 따라 약만 쓰는 약의(藥醫)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했다. 특히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잦은 병에 시달려 몸에 좋은 약이란 약은 다 써봤던 세조는 몸 상태와 약물 처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처음 병을 얻으면 기운이 오히려 성(盛)해 약 효력이 발생하기 쉽고, 독한 약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노곤해지면 약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고 독한 약도 쓸 수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약을 쓰려면 몸이 성하고 쇠한 때를 틈타 일찍 도모해야 한다.”
세조는 임상을 통해 몸 기력이 다하고 마음이 상(傷)한 경우에는 약을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몸이 아직 성할 때 조기 치료와 예방 치료가 중요하다고 봤으며, 식이요법이야말로 평상시 지속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적절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세조는 환자 마음을 편안히 다독여 기운까지 편안해지게 만드는 심의(心醫)를 식의보다 한 수 위인 최고 의사로 꼽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의학에서는 섭생을 매우 중요시한다. 중국 당나라 때 명의(名醫)로 이름을 떨친 손사막(孫思邈)은 저서 ‘비급천금요방’에서 “무릇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음식물로 다스려야 한다. 식이요법(食療)으로도 낫지 않을 경우 그때 비로소 약으로 치료한다”고 설파했다. ‘약왕(藥王)’이란 별명을 가진 손사막의 주장을 세조도 분명히 읽었고 깨달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조선 최고 일인자가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을 물리치고 건강식을 ‘최고 밥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