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출전한 ‘신태용호(號)’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기니(3-0 승), 아르헨티나(2-1 승)와 가진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조기 확정했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잉글랜드와 3차전에서 0-1로 덜미가 잡혀 조 2위가 됐고, 포르투갈과 붙은 16강전에서 1-3으로 패해 탈락했다. 안방에서 펼쳐진 대회인 만큼 1차 목표인 8강을 넘어 4강 신화의 재현도 가능하리란 낙관적 기운까지 감돌았으나 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원정 악몽을 깨라
U-20 대표팀이 5월 30일 포르투갈전에서 좌절을 맛본 뒤 이튿날에는 K리그의 ‘마지막 자존심’ 제주유나이티드FC가 고개를 숙였다. 제주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일본)와 맞붙은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원정 2차전에서 0-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홈 1차전에서 2-0으로 이겨 8강 진출 기대를 키웠지만 원정에서 90분 정규시간에 0-2로 뒤져 합계 2-2를 기록한 뒤 결국 연장에서 통한의 결승골을 내줬다. FC서울, 수원삼성블루윙즈, 울산현대축구단 등 올해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나머지 세 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가운데 제주까지 무너지면서 K리그는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한국 축구가 연이은 상처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성인 국가대표팀이 벼랑 끝 승부를 앞두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이 지휘하는 대표팀은 6월 14일 오전 4시 도하에서 카타르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 원정경기를 갖는다.
A·B조로 나눠 각 조 6개국 총 12개 나라가 최종예선을 치르는 아시아에선 각 조 2위까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각 조 3위는 플레이오프(PO)를 거쳐 승자가 북중미 4위와 한 차례 더 대륙 간 PO를 펼친다. 조 3위를 할 경우 아시아 PO는 넘어선다 해도 북중미 4위와 맞붙는 2번째 PO는 그야말로 힘겨운 승부가 예상된다.
한국은 4승1무2패, 승점 13으로 선두 이란(승점 17)에 이어 조 2위에 올라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과는 승점 1점 차다. 팀당 세 경기씩 남겨둔 가운데 A조 상위 3팀은 나머지 두 팀과 묘하게 한 번씩 맞대결을 펼친다. 한국은 9차전에서 이란(홈·8월 31일), 10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원정·9월 5일)과 만나고,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은 8차전에서 맞붙는다. 한국은 원정경기인 우즈베키스탄과 10차전에서 최종 2위 싸움을 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카타르전 승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해 9월 중국과 홈 1차전을 시작으로 최종예선의 7번 경기에서 단 한 번도 만족할 만한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원정경기에선 더 실망스러웠다. 당연히 이겨야 하는 시리아와 원정 2차전은 제3국 중립 경기로 펼쳐졌음에도 0-0으로 비겼고, 이란과 원정 4차전에선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0-1로 패했다. 스코어상으론 1점 차 패배였지만, 내용상으론 3점 차 이상 대패였다.
3월 중국과 맞붙은 원정 6차전도 충격의 0-1 패배였다. 대표팀이 역대 중국 원정경기에서 거둔 첫 패배라 충격은 더욱 컸다. 최종예선 원정경기 3번에서 한국은 1무2패를 했고,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 2실점만 했다. 홈에서 한 4번의 경기는 비록 내용은 부실해도 승리를 챙겨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원정에서는 결과도, 내용도 부족했다. 카타르전에서 ‘원정 악몽’을 끝내야 한국 축구에 희망이 생긴다.
손흥민과 이근호, 대표팀의 두 에이스
중국과 원정경기에서 패한 한국은 다득점 승리가 필요하던 시리아와 홈 7차전에서 가까스로 1-0 승리를 거두는 데 그쳤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론이 거세게 고개를 들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조건부 유임’을 결정했다. 그 대신 경험 많고 선수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정해성 수석코치를 영입했다. 이와 별도로 정 수석코치가 합류하기 전 대표팀에서 실질적인 코치 구실을 담당하던 차두리 전력분석원이 팀을 떠났다. 카타르전은 새로운 코칭스태프 체제로 치르는 첫 최종예선이다. 정 수석코치가 합류한 후 일단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는 게 대표팀 관계자의 전언이다.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로 뭉친 팀 분위기가 경기력으로 이어지느냐 여부다. 더구나 전술적 한계를 드러낸 슈틸리케 감독이 정 수석코치의 조언을 얼마나 받아들여 이를 그라운드에서 구현하느냐도 관건이다. 카타르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대한축구협회도 더는 유임을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카타르전이 슈틸리케 체제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표팀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 FC)이다. 2016~2017시즌 21골(리그 14골·FA컵 6골·챔피언스리그 1골)을 뽑아 1985~86시즌 차범근 FIFA U-20월드컵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 바이엘 04 레버쿠젠 시절 기록한 19골을 넘어섰다. 한국선수의 유럽무대 단일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이다. 또 두 시즌 만에 29골을 기록해 박지성(27골·은퇴)이 갖고 있던 잉글랜드 무대 한국 선수 통산 득점에서도 1위에 올라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는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선 지난해 10월 카타르와 홈 3차전 이후 골맛을 보지 못했다. 토트넘에서 활약이 대표팀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다른 선수들과 책임을 나눠 지는 토트넘과 달리 홀로 큰 기대를 받는 대표팀에선 심리적 부담이 막중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손흥민이 이겨내야 할 숙제다.
또 한 명 주목할 선수는 이근호(32·강원FC)다. 2015년 1월 호주아시안컵 이후 2년 5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근호는 소문난 ‘중동킬러’다. 2007년 6월 이라크와 친선경기에서 A매치 첫 경기를 치른 그는 A매치 데뷔 골까지 폭발시켰고, A매치 통산 19골 중 11골을 중동 팀을 상대로 뽑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같은 조인 카타르를 상대로 원정 2골, 홈 1골을 기록했다.
한국 축구선수 가운데 카타르를 상대로 3골을 기록한 선수는 이근호가 유일하다. 특히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카타르 엘 자이시SC에서 활약해 누구보다 카타르 현지 분위기에도 익숙하다. 이근호는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혀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능력도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