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30·오릭스)는 일본 무대 첫해였던 올 시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외딴섬에 홀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이대호가 ‘4년간 총액 100억 원’을 제시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의 제안을 뿌리치고 오릭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 이대호만큼이나 국내 야구계도 걱정이 적지 않았다. “이대호마저 일본 무대에서 실패한다면, 이는 한국 프로야구 망신이다. 한국 타자가 더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내가 쌓았던 기록과 성적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필코 보여주고 싶다”고 굳게 다짐했고, 마침내 이를 완벽하게 증명했다.
●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갖는 성적
이대호는 91타점으로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올랐다. 4번 타자의 팀 공헌도를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은 홈런이 아니라 타점이다. 리그 2위인 나카무라 다케야(세이부)와는 12타점 차이. 타율 0.286(리그 9위), 홈런 24개(2위), 장타율 0.478(2위), 출루율 0.368(4위), 안타 150개(5위)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0.846으로 리그에서 가장 높았다.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한 게임에서 2안타 이상을 때린 ‘멀티히트’도 37경기로 리그 공동 7위고, 한 게임 3안타도 13경기로 리그 2위였다. 상대팀별 기록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였을 때는 리그 우승팀 니혼햄과의 경기에서다. 타율 0.337에 5홈런 19타점. 강한 팀에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오릭스 성적이 57승77패10무(승률 0.425)로 리그 최하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대호의 전반적인 기록은 더욱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팀이 치른 전체 144경기에 4번 타자로 모두 선발 출장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퍼시픽리그에서 전 경기에 출장한 선수는 이대호와 에스테반 헤르만(세이부)뿐이다. 전 경기 출장은 실력뿐 아니라 프로선수가 갖춰야 할 가장 큰 가치 중 하나인 철저한 자기 관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기록이다.
● ‘한국 최고 타자’의 힘을 보여주다
‘국민타자’라고 부르는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은 2003년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홈런(56개) 신기록을 세운 뒤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바롯데에서 맞은 첫 시즌 성적은 타율 0.240에 14홈런이 고작. 201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의 위업을 쌓았던 이대호는 이승엽의 일본 첫해 성적을 거뜬히 넘어서는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는 최전성기의 이승엽을 넘어 이미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한 그의 탁월한 실력 덕분이다. 롯데에서 뛸 때부터 그는 “이승엽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상의 타격 밸런스를 갖춘 그는 무엇보다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고 흠잡을 데 없는 스윙 메커니즘을 자랑한다. 이상적인 인앤드아웃 스윙을 구사하는 이대호에 대해 오카다 아키노부 전 오릭스 감독은 “일본 타자는 도저히 저런 스윙을 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협구에 가까운 몸 쪽 공을 던지고, ‘마구’라 부르는 포크볼을 유난히 많이 구사하는 일본 투수들의 유인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선구안과 완벽에 가까운 스윙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였다.
● 난관을 헤치고 얻은 열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타자가 일본에 건너가면 힘을 못 썼던 이유는 낯설고 수준 높은 일본 투수들의 벽뿐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경기에 앞서 이동거리가 많아 체력 유지가 힘들고, 경기 시간도 들쭉날쭉해 컨디션을 조절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겨냈다. “시즌 초반 한창 컨디션이 좋지 않고 몸도 아플 때,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롯데 시절 이대호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김무관 LG 트윈스 타격코치는 “타자 이대호는 어디에 가든 성공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 이는 실력뿐 아니라 잡초 같은 승부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프로 입단 초기 백인천 감독 시절 “선수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들었고, 수술로 좌절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고도 MVP와 인연을 맺지 못하자 더 이를 악물었고, 그 같은 독기는 2010년 타격 7관왕, 9연속경기 홈런 세계신기록에 이어 역대 최고 대우(2년간 총액 7억 엔·약 105억 원)로 일본 프로야구에 입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롯데 시절 이대호를 곁에서 지켜본 홍성흔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대호는 야구는 물론이고 100원짜리 내기를 하더라도 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 때론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쳤다.”
이대호는 이 같은 승부근성과 함께 야구선수로서 큰 목표도 갖고 있다. 일본에 건너갈 때 “한국 최고가 일본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도 실력뿐 아니라 몸값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남다른 승부근성과 큰 목표로 인상적인 첫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 올해보다 더 기대되는 내년 시즌
이대호는 올 시즌 자신의 성적을 100점으로 환산했을 때 “고작 50점”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시즌 전 개인 목표로 삼았던 ‘타율 3할, 100타점’ 모두 이루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가차 없이 낙제점을 줬다. 50점은 성적에 대한 점수가 아니라, 오릭스 팀원으로서 동료들과 하나가 된 자기 모습에 준 점수. 결국 성적은 0점이라는 뜻이다. “고작 50점”이라는 말은 이대호가 그만큼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매년 겨울이면 ‘살과의 전쟁’을 통해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이대호는 올해 프로생활 후 처음으로 시즌 중에 오히려 살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야간경기 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몸 관리를 한 덕분이다. “뚱뚱하다고, 살이 많다고 야구를 못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살이 찌면 부상 위험이 높기 때문에 살을 빼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일본에서 첫 시즌을 치르면서 작년보다 15~20kg 감소한 125kg 안팎을 유지했다. 이번 겨울에 굳이 살을 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소득도 얻은 셈이다. 그는 내년 시즌을 위해 근력 강화 훈련이나 유연성 회복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대호는 스스로 “시즌 개막 후 첫 한 달, 종료 전 마지막 한 달은 선수도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개막 후 한동안 심리적 부담감에 제 스윙을 하지 못했고,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체력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서 부진했다고 되돌아봤다.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털어놨다.
2013년 이대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제까지 그가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면,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는 신체적으로 타자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30대 초반이다. 더욱이 심리적, 기술적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대한민국 4번 타자’가 아닌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외딴섬에 홀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이대호가 ‘4년간 총액 100억 원’을 제시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의 제안을 뿌리치고 오릭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 이대호만큼이나 국내 야구계도 걱정이 적지 않았다. “이대호마저 일본 무대에서 실패한다면, 이는 한국 프로야구 망신이다. 한국 타자가 더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내가 쌓았던 기록과 성적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필코 보여주고 싶다”고 굳게 다짐했고, 마침내 이를 완벽하게 증명했다.
●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갖는 성적
이대호는 91타점으로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올랐다. 4번 타자의 팀 공헌도를 나타내는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은 홈런이 아니라 타점이다. 리그 2위인 나카무라 다케야(세이부)와는 12타점 차이. 타율 0.286(리그 9위), 홈런 24개(2위), 장타율 0.478(2위), 출루율 0.368(4위), 안타 150개(5위)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0.846으로 리그에서 가장 높았다.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한 게임에서 2안타 이상을 때린 ‘멀티히트’도 37경기로 리그 공동 7위고, 한 게임 3안타도 13경기로 리그 2위였다. 상대팀별 기록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였을 때는 리그 우승팀 니혼햄과의 경기에서다. 타율 0.337에 5홈런 19타점. 강한 팀에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오릭스 성적이 57승77패10무(승률 0.425)로 리그 최하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대호의 전반적인 기록은 더욱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팀이 치른 전체 144경기에 4번 타자로 모두 선발 출장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퍼시픽리그에서 전 경기에 출장한 선수는 이대호와 에스테반 헤르만(세이부)뿐이다. 전 경기 출장은 실력뿐 아니라 프로선수가 갖춰야 할 가장 큰 가치 중 하나인 철저한 자기 관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기록이다.
● ‘한국 최고 타자’의 힘을 보여주다
‘국민타자’라고 부르는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은 2003년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홈런(56개) 신기록을 세운 뒤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바롯데에서 맞은 첫 시즌 성적은 타율 0.240에 14홈런이 고작. 201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의 위업을 쌓았던 이대호는 이승엽의 일본 첫해 성적을 거뜬히 넘어서는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는 최전성기의 이승엽을 넘어 이미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한 그의 탁월한 실력 덕분이다. 롯데에서 뛸 때부터 그는 “이승엽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상의 타격 밸런스를 갖춘 그는 무엇보다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고 흠잡을 데 없는 스윙 메커니즘을 자랑한다. 이상적인 인앤드아웃 스윙을 구사하는 이대호에 대해 오카다 아키노부 전 오릭스 감독은 “일본 타자는 도저히 저런 스윙을 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협구에 가까운 몸 쪽 공을 던지고, ‘마구’라 부르는 포크볼을 유난히 많이 구사하는 일본 투수들의 유인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선구안과 완벽에 가까운 스윙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서였다.
● 난관을 헤치고 얻은 열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타자가 일본에 건너가면 힘을 못 썼던 이유는 낯설고 수준 높은 일본 투수들의 벽뿐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경기에 앞서 이동거리가 많아 체력 유지가 힘들고, 경기 시간도 들쭉날쭉해 컨디션을 조절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겨냈다. “시즌 초반 한창 컨디션이 좋지 않고 몸도 아플 때,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롯데 시절 이대호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김무관 LG 트윈스 타격코치는 “타자 이대호는 어디에 가든 성공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 이는 실력뿐 아니라 잡초 같은 승부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프로 입단 초기 백인천 감독 시절 “선수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들었고, 수술로 좌절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고도 MVP와 인연을 맺지 못하자 더 이를 악물었고, 그 같은 독기는 2010년 타격 7관왕, 9연속경기 홈런 세계신기록에 이어 역대 최고 대우(2년간 총액 7억 엔·약 105억 원)로 일본 프로야구에 입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롯데 시절 이대호를 곁에서 지켜본 홍성흔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대호는 야구는 물론이고 100원짜리 내기를 하더라도 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 때론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쳤다.”
이대호는 이 같은 승부근성과 함께 야구선수로서 큰 목표도 갖고 있다. 일본에 건너갈 때 “한국 최고가 일본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도 실력뿐 아니라 몸값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남다른 승부근성과 큰 목표로 인상적인 첫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 올해보다 더 기대되는 내년 시즌
이대호는 올 시즌 자신의 성적을 100점으로 환산했을 때 “고작 50점”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시즌 전 개인 목표로 삼았던 ‘타율 3할, 100타점’ 모두 이루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가차 없이 낙제점을 줬다. 50점은 성적에 대한 점수가 아니라, 오릭스 팀원으로서 동료들과 하나가 된 자기 모습에 준 점수. 결국 성적은 0점이라는 뜻이다. “고작 50점”이라는 말은 이대호가 그만큼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매년 겨울이면 ‘살과의 전쟁’을 통해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이대호는 올해 프로생활 후 처음으로 시즌 중에 오히려 살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야간경기 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몸 관리를 한 덕분이다. “뚱뚱하다고, 살이 많다고 야구를 못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살이 찌면 부상 위험이 높기 때문에 살을 빼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일본에서 첫 시즌을 치르면서 작년보다 15~20kg 감소한 125kg 안팎을 유지했다. 이번 겨울에 굳이 살을 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소득도 얻은 셈이다. 그는 내년 시즌을 위해 근력 강화 훈련이나 유연성 회복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대호는 스스로 “시즌 개막 후 첫 한 달, 종료 전 마지막 한 달은 선수도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개막 후 한동안 심리적 부담감에 제 스윙을 하지 못했고,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체력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서 부진했다고 되돌아봤다.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털어놨다.
2013년 이대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제까지 그가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면,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는 신체적으로 타자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30대 초반이다. 더욱이 심리적, 기술적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대한민국 4번 타자’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