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여자핸드볼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감동은 계속됐다. 어쩌면 그 향기가 이전 올림픽보다 더 진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매 경기 그녀들은 한계를 넘고 또 넘었다. 무릎이 뒤틀리고 팔목이 부러져도 끝까지 몸으로 버텨냈다.
취재진도 이례적으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던, 함께 눈물을 흘렸던 여자핸드볼 경기.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사실 런던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은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경험 있는 노장 선수들 대신 신예가 많이 합류해 전체적으로 전력 안정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고 11위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안 요소를 노출했다. 체력과 수비, 스피드 어느 것 하나 유럽 선수를 이길 만한 게 없었다.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올림픽 조 편성 역시 한국을 배려하지 않았다. 한국은 예선 B조에서 노르웨이(세계 5위), 덴마크(세계 6위), 프랑스(세계 11위), 스페인(세계 16위), 스웨덴(세계 19위)과 한 조에 편성됐다.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은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1~4위를 차지한 강호. 더구나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늘 주요 대회에서 우리 발목을 잡았던 껄끄러운 상대이다. 역대 최악의 조 편성. 준비 시간이 유난히 짧게 느껴진 대회였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 전인 7월 24일(한국 시간). 한국 선수단 전용 훈련캠프지인 영국 런던 브루넬대학에서 취재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첫 현지 적응 훈련에 나선 선수들의 사기가 예상 외로 높은 데다, 수비나 속공에서도 조직적이고 빠른 ‘패턴’이 상당히 돋보였기 때문이다. 몇 개월 사이 팀은 달라져 있었다.
역대 최악의 조에서 2연승
옆에 있던 대표팀 트레이너에게 살짝 물었다.
“뭔가 전과는 다른데요.”
“잘 보셨어요. ‘디테일’이 강해졌을 거예요.”
현역 시절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로 스위스 무대에서 활동한 강재원 감독은 고착화한 한국 스타일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유럽을 이기려면 빠른 패스와 스피드, 그리고 수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체질 개선을 시도한 것.
트레이너는 “3월 대표팀이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공을 안 잡았다”고 귀띔해줬다. 먼저 강한 체력 훈련을 소화했고, 그 뒤로 유럽식 맞춤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유럽을 잘 아는 강 감독의 진단은 확고했다.
“유럽 팀은 선수 체격이 크다고 해서 스피드가 느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밀리죠. 그래서 우리 것만 고집할 수 없는 거예요. 한국형 핸드볼에서 벗어나는 게 절실했죠.”
패스 스피드를 끌어올리려고 대표팀 선수들은 핸드볼 공보다 무거운 ‘레드 심볼’이라는 특수 제작 공을 잡았다. 1, 3, 5kg으로 무게를 바꿔 ‘무한’ 패스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핸드볼 공이 선수들에게는 무척 가볍게 느껴졌고, 빠른 전진 패스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
수비도 대표팀이 고정적으로 쓰던 3-2-1 전형을 과감히 깨고, 6명이 일렬로 서거나 1명이 튀어나가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5-1 전형을 선택했다. 이 같은 수비 전술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상대국들은 한국의 새로운 수비에 대비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포석. 강 감독은 예선 1차전 스페인전에 초점을 맞췄다.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진 스페인을 무조건 잡아야 상승세를 타고 8강행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가상의 파트너가 필요했다. 강 감독은 성균관대 남자핸드볼 선수들을 스페인 선수로 바꿔놓았다. 스페인 선수들을 비디오로 연구하게 한 뒤 그 스타일 그대로 대표팀과 경기하도록 했다. 주 공격수 3명의 버릇까지 똑같이 경기장에서 펼치도록 주문했다. 이렇듯 체격 조건이 큰 가상의 스페인 선수들과 대표팀은 2개월 가까이 ‘동고동락’했다.
그러고는 7월 27일, 스페인과의 런던올림픽 예선 1차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스페인을 시종일관 압도한 끝에 31대 27 완승. 그런데 점수 차가 난 상황에서 경기 종료 2분여를 남겨두고 강 감독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의 울상이었다. 팀 리더인 김온아가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 김온아는 축구로 따지면 대표팀에서 박지성과 같은 선수다. 돌파 공격을 시도하다 무릎이 꺾였다. 승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뺄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온아를 받쳐줄 만한 선수가 없고, 핸드볼 경기라는 게 순식간에 2~3점 실점할 수도 있어서 넣었는데….”
1점 차로 덴마크에 설욕
강 감독은 그토록 갈망하던 스페인전 승리를 따내고도 말을 잇지 못했다.
“온아가 대기실에서 뼈를 맞추는데 그 소리를 듣고 어린 선수들이 울더라고요. 고참들에게 후배들이 그 모습 보지 않게 하라고 말했어요. 많이 놀랐을 거예요.”
첫 승의 기쁨보다 다음 경기 걱정이 앞선 첫날을 뒤로하고 7월 30일 예선 두 번째 경기, 오히려 상대 팀이 선수들의 집중력과 사기를 높였다. 김온아의 부상도 오히려 선수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원조 ‘우생순’ 신화의 상대, 바로 2004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서 우리를 꺾은 덴마크였다. 유럽형 맞춤 체질 개선을 시도한 대표팀은 이날도 훈련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온아 대신 경기를 조율한 정지해와 막내 조효비의 활약으로 25대 24로 덴마크를 꺾었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마치 결승전에서 우승한 것처럼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조효비의 “끝내줘요”라는 멘트에 기자들과 선수들은 살짝 눈물짓다 웃고. ‘울다 웃으면 ○○○에 ○난다’라는 얘기가 생각나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2연승. 그래도 강 감독은 냉정을 유지했다.
“아직까진 경험이 없어 미숙해요. 상대 패스를 가로채 뺏기도 했지만 너무 서두르는 게….”
그래도 기쁨은 감출 수 없다.
“스위스 기자들이 알아보더라고요. 결승전에 올라갈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신문에 크게 내겠다고 하네요.”
예선 3차전,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 우승팀인 노르웨이. 역시 결과적으로 행운이 따랐다. 경기 막판 1분여까지 26대 27로 뒤졌으나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강호들과의 세 경기 모두에서 빠른 스피드와 새로운 수비 전술로 무장한 대표팀의 경기력이 통했다.
“특히 상대는 우리 수비가 빨리 나오는 줄 알았는데 6-0, 5-1 전형으로 한 사람 정도만 앞으로 튀어나가고 지역을 ‘타이트’하게 방어하니까 고전한 것 같아요.”(강재원 감독)
2승1무로 8강을 사실상 확정한 대표팀은 프랑스, 스웨덴 전에서 각각 1승 1패를 거둬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후반 권한나와 유은희의 연속 골로 러시아를 24대 23으로 꺾었다.
4강 진출. 여자핸드볼만큼은 분명 올림픽 ‘DNA‘가 있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와의 4강전은 체력이 문제였다. 예선 4경기와 8강전을 하루걸러 치르면서 골키퍼 2명과 부상인 김온아를 제외한 선수 11명의 체력이 바닥났다. 결국 노르웨이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25대 31로 패배. 그 자리는 곧 눈물바다가 됐고, 부상 중인 김온아도 한동안 코트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세련된 스타일
“울지 마, 지금부터 인상 쓰고 우는 사람은 비행기 태워 보낸다.”
대기실에서 강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구보다 답답한 심정이었을 강 감독.
“아직까지 선수들이 순진해요. 수줍음을 너무 타죠. 노르웨이 애들은 져도 웃고 다녀요.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지면 기가 눌리고 그런 게 있어서 어려워요. 다 끝난 게 아닌데, 잊어버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이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어요. 놀랍잖아요.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이런 게 한국 핸드볼의 아쉬운 점이에요. 감독 책임이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3·4위전에서도 패해 4위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값졌다. 2004년 ‘우생순’ 멤버로 현 최고참인 우선희에게는 아쉽고도 잊지 못할 대회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출전하지 못해 은퇴를 생각했는데, 마음을 바꿔 8년 만에 나왔어요. 후배들이 무척 잘해줘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적을 떠나 감동은 재현됐고, 성과도 컸다. 한국 여자핸드볼의 ‘스타일’은 세련돼졌고, 어린 선수들의 도약도 눈부셨다. 믿을 수 없는 투혼은 그대로였다. 인터뷰 구역을 지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취재진은 수첩을 펴지 않았다.
“수고했어요.”
“고생했어요.”
“아, 눈물 나”
우생순 ‘런던편’도 감동이었다.
취재진도 이례적으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던, 함께 눈물을 흘렸던 여자핸드볼 경기.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사실 런던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은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경험 있는 노장 선수들 대신 신예가 많이 합류해 전체적으로 전력 안정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고 11위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안 요소를 노출했다. 체력과 수비, 스피드 어느 것 하나 유럽 선수를 이길 만한 게 없었다.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올림픽 조 편성 역시 한국을 배려하지 않았다. 한국은 예선 B조에서 노르웨이(세계 5위), 덴마크(세계 6위), 프랑스(세계 11위), 스페인(세계 16위), 스웨덴(세계 19위)과 한 조에 편성됐다.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은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1~4위를 차지한 강호. 더구나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늘 주요 대회에서 우리 발목을 잡았던 껄끄러운 상대이다. 역대 최악의 조 편성. 준비 시간이 유난히 짧게 느껴진 대회였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 전인 7월 24일(한국 시간). 한국 선수단 전용 훈련캠프지인 영국 런던 브루넬대학에서 취재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첫 현지 적응 훈련에 나선 선수들의 사기가 예상 외로 높은 데다, 수비나 속공에서도 조직적이고 빠른 ‘패턴’이 상당히 돋보였기 때문이다. 몇 개월 사이 팀은 달라져 있었다.
역대 최악의 조에서 2연승
옆에 있던 대표팀 트레이너에게 살짝 물었다.
“뭔가 전과는 다른데요.”
“잘 보셨어요. ‘디테일’이 강해졌을 거예요.”
현역 시절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로 스위스 무대에서 활동한 강재원 감독은 고착화한 한국 스타일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유럽을 이기려면 빠른 패스와 스피드, 그리고 수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체질 개선을 시도한 것.
트레이너는 “3월 대표팀이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공을 안 잡았다”고 귀띔해줬다. 먼저 강한 체력 훈련을 소화했고, 그 뒤로 유럽식 맞춤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유럽을 잘 아는 강 감독의 진단은 확고했다.
“유럽 팀은 선수 체격이 크다고 해서 스피드가 느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밀리죠. 그래서 우리 것만 고집할 수 없는 거예요. 한국형 핸드볼에서 벗어나는 게 절실했죠.”
패스 스피드를 끌어올리려고 대표팀 선수들은 핸드볼 공보다 무거운 ‘레드 심볼’이라는 특수 제작 공을 잡았다. 1, 3, 5kg으로 무게를 바꿔 ‘무한’ 패스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핸드볼 공이 선수들에게는 무척 가볍게 느껴졌고, 빠른 전진 패스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
수비도 대표팀이 고정적으로 쓰던 3-2-1 전형을 과감히 깨고, 6명이 일렬로 서거나 1명이 튀어나가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5-1 전형을 선택했다. 이 같은 수비 전술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상대국들은 한국의 새로운 수비에 대비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포석. 강 감독은 예선 1차전 스페인전에 초점을 맞췄다.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진 스페인을 무조건 잡아야 상승세를 타고 8강행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가상의 파트너가 필요했다. 강 감독은 성균관대 남자핸드볼 선수들을 스페인 선수로 바꿔놓았다. 스페인 선수들을 비디오로 연구하게 한 뒤 그 스타일 그대로 대표팀과 경기하도록 했다. 주 공격수 3명의 버릇까지 똑같이 경기장에서 펼치도록 주문했다. 이렇듯 체격 조건이 큰 가상의 스페인 선수들과 대표팀은 2개월 가까이 ‘동고동락’했다.
그러고는 7월 27일, 스페인과의 런던올림픽 예선 1차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스페인을 시종일관 압도한 끝에 31대 27 완승. 그런데 점수 차가 난 상황에서 경기 종료 2분여를 남겨두고 강 감독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의 울상이었다. 팀 리더인 김온아가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 김온아는 축구로 따지면 대표팀에서 박지성과 같은 선수다. 돌파 공격을 시도하다 무릎이 꺾였다. 승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뺄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온아를 받쳐줄 만한 선수가 없고, 핸드볼 경기라는 게 순식간에 2~3점 실점할 수도 있어서 넣었는데….”
1점 차로 덴마크에 설욕
강 감독은 그토록 갈망하던 스페인전 승리를 따내고도 말을 잇지 못했다.
“온아가 대기실에서 뼈를 맞추는데 그 소리를 듣고 어린 선수들이 울더라고요. 고참들에게 후배들이 그 모습 보지 않게 하라고 말했어요. 많이 놀랐을 거예요.”
첫 승의 기쁨보다 다음 경기 걱정이 앞선 첫날을 뒤로하고 7월 30일 예선 두 번째 경기, 오히려 상대 팀이 선수들의 집중력과 사기를 높였다. 김온아의 부상도 오히려 선수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원조 ‘우생순’ 신화의 상대, 바로 2004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서 우리를 꺾은 덴마크였다. 유럽형 맞춤 체질 개선을 시도한 대표팀은 이날도 훈련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온아 대신 경기를 조율한 정지해와 막내 조효비의 활약으로 25대 24로 덴마크를 꺾었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마치 결승전에서 우승한 것처럼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조효비의 “끝내줘요”라는 멘트에 기자들과 선수들은 살짝 눈물짓다 웃고. ‘울다 웃으면 ○○○에 ○난다’라는 얘기가 생각나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2연승. 그래도 강 감독은 냉정을 유지했다.
“아직까진 경험이 없어 미숙해요. 상대 패스를 가로채 뺏기도 했지만 너무 서두르는 게….”
그래도 기쁨은 감출 수 없다.
“스위스 기자들이 알아보더라고요. 결승전에 올라갈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신문에 크게 내겠다고 하네요.”
예선 3차전, 2011 세계핸드볼선수권대회 우승팀인 노르웨이. 역시 결과적으로 행운이 따랐다. 경기 막판 1분여까지 26대 27로 뒤졌으나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강호들과의 세 경기 모두에서 빠른 스피드와 새로운 수비 전술로 무장한 대표팀의 경기력이 통했다.
“특히 상대는 우리 수비가 빨리 나오는 줄 알았는데 6-0, 5-1 전형으로 한 사람 정도만 앞으로 튀어나가고 지역을 ‘타이트’하게 방어하니까 고전한 것 같아요.”(강재원 감독)
2승1무로 8강을 사실상 확정한 대표팀은 프랑스, 스웨덴 전에서 각각 1승 1패를 거둬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후반 권한나와 유은희의 연속 골로 러시아를 24대 23으로 꺾었다.
4강 진출. 여자핸드볼만큼은 분명 올림픽 ‘DNA‘가 있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와의 4강전은 체력이 문제였다. 예선 4경기와 8강전을 하루걸러 치르면서 골키퍼 2명과 부상인 김온아를 제외한 선수 11명의 체력이 바닥났다. 결국 노르웨이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25대 31로 패배. 그 자리는 곧 눈물바다가 됐고, 부상 중인 김온아도 한동안 코트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세련된 스타일
“울지 마, 지금부터 인상 쓰고 우는 사람은 비행기 태워 보낸다.”
대기실에서 강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구보다 답답한 심정이었을 강 감독.
“아직까지 선수들이 순진해요. 수줍음을 너무 타죠. 노르웨이 애들은 져도 웃고 다녀요.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지면 기가 눌리고 그런 게 있어서 어려워요. 다 끝난 게 아닌데, 잊어버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이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어요. 놀랍잖아요.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이런 게 한국 핸드볼의 아쉬운 점이에요. 감독 책임이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봐요.”
3·4위전에서도 패해 4위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값졌다. 2004년 ‘우생순’ 멤버로 현 최고참인 우선희에게는 아쉽고도 잊지 못할 대회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출전하지 못해 은퇴를 생각했는데, 마음을 바꿔 8년 만에 나왔어요. 후배들이 무척 잘해줘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적을 떠나 감동은 재현됐고, 성과도 컸다. 한국 여자핸드볼의 ‘스타일’은 세련돼졌고, 어린 선수들의 도약도 눈부셨다. 믿을 수 없는 투혼은 그대로였다. 인터뷰 구역을 지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취재진은 수첩을 펴지 않았다.
“수고했어요.”
“고생했어요.”
“아, 눈물 나”
우생순 ‘런던편’도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