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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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국은 옛말…상향평준화 ‘돌려차기’

4체급 출전 金1, 銀1…다시 배우는 자세로 거듭나야

  • 유재영 채널A 사회부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2-09-03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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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올림픽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평준화’였다. 특히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사실 태권도는 박진감이 떨어지고, 판정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줄곧 폐지 논란에 휩싸여 왔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앞두고 득점 때마다 점수가 자동 계산되는 전자호구를 도입했고, 안면 공격에는 3~4점을 부여하도록 룰을 바꿨다. 이 효과로 경기마다 접전과 이변이 거듭됐으며, 결국 8체급 금메달 주인공들의 국적은 전부 달랐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태권도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우리 대표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계적으로 상향평준화가 이뤄진 탓이다. 4체급에 출전해 금 1개와 은 1개에 그쳤다.

    종주국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충분히 대비하긴 했지만, 단조로운 패턴과 소극적인 공격으로 위기를 자초한 면이 크다. 실제 현장에서 지켜보던 기자들도 매 경기 숨을 죽였다. 태권도 관계자들 역시 뚜껑이 열리자 ‘금메달은 떼어놓은 당상’이라던 자신감이 사라졌다.

    8월 8일 태권도 첫 경기. 남자 58kg 이하급 경기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이대훈이 예선부터 피 말리는 연장 접전을 벌인 것. 김세혁 태권도 대표팀 감독은 8강전에서도 이대훈이 연장 끝에 신승하자 경기장 바깥으로 나와 줄담배로 속을 달랬다.



    가능성 발견한 20세 이대훈

    “왜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지? 아,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

    김 감독은 이대훈의 자세를 탓했지만, 약체로 여겼던 상대들의 성장세에 더 놀란 눈치였다. 이대훈은 4강에서도 러시아 선수를 1점 차로 가까스로 따돌린 뒤 결승에 나섰다.

    상대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랭킹 1위인 스페인의 곤살레스 보니야. 시작부터 이대훈은 보니야에게 안면 공격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2라운드에서 4대 5까지 추격하며 역전을 노렸으나 10초를 남겨놓고 무리하게 접근을 시도하다 연속으로 4점을 허용했다. 점수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3라운드에 역전을 노리다 보니 이대훈은 무리한 동작으로 연달아 경고를 받아 무너졌다. 아쉬운 은메달.

    다음 날 만난 김 감독은 탄식을 쏟아냈다.

    “당연히 1점 차로 좁혀놓고 3라운드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무작정 들어가더라고. 코치도 소리를 질렀는데,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 장면이 제일 아쉽지.”

    종주국은 옛말…상향평준화 ‘돌려차기’

    이대훈(왼쪽)과 함께한 유재영 기자.

    하지만 값진 은메달이었다. 20세인 이대훈은 첫 올림픽에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투혼을 발휘했다.

    사실 이대훈은 체중 조절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키는 180cm가 훌쩍 넘지만 출전 체급은 말도 안 되는 58kg 이하. 평소 몸무게보다 8kg 가까이를 감량해야 했다.

    “대훈이가 경기 전날까지도 감량했어요. 전날까지 1kg 가까이 ‘오버’됐거든요. 저한테 ‘선생님, 숙소 나가서 빼고 올게요’ 하더니 정말 체중을 뺀 아이예요. 정상적으로 컨디션 유지가 됐겠어요? 경기 끝나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다시는 체중계 보기도 싫다고요. 잘했어요.”(김세혁 감독)

    이대훈도 체중 감량 얘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다이어트한 거 다 잊고 싶어요. 제 체급인 63kg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체계적 선수 관리, 기술 개발 절실

    종주국은 옛말…상향평준화 ‘돌려차기’

    은메달을 딴 이대훈이 시상대에서 금메달 수여 광경을 지켜 보고 있다.

    이대훈은 결승전에서 만난 보니야와의 재대결을 벌써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결승 때는 금메달 때문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더 긴장한 것 같아요. 만약 다음에 보니야 선수가 체급을 올려 다시 붙는다면 이길 자신 있어요.”

    8월 9일, 전날 은메달을 딴 이대훈과 함께 메달을 딴 대표 선수들의 기자회견 자리에 김 감독도 모습을 드러냈다.

    “유 기자,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서 기자회견 자리에 온 건 처음인데…(웃음).”

    김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만큼 세계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지도자, 선수뿐 아니라 보는 팬들도 느꼈으리라는 얘기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나선 김 감독은 “태권도 종주국 한국은 ‘무장해제’”라고 선언했다.

    “태권도는 종주국 한국의 것만이 아니었어요. 호주나 스페인, 러시아 선수만 봐도 신장이 큰데 기량도 뛰어나요. 실력이 평준화된 거죠. 아직 기술적으로는 우위라고 생각하지만, 이젠 세계적으로 평준화된 태권도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위기는 기회다. 김 감독은 “매도 빨리 맞는 게 좋지 않느냐”며 “이번 대회 부진이 좋은 약이 됐다”고 말했다.

    “종주국이라는 자만심이 있었고, 준비도 소홀했던 것 같아요. 외국 선수들도 실력에서 전혀 뒤지지 않아요. 그동안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주문하고 그것을 계속 밀어붙였는데 이제는 안 통해요. 세계 흐름에 맞는 체계적인 선수 관리나 기술 개발이 절실하죠. 이번 대회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다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다시 도전한다는 각오로 좋은 결과를 낳을 거예요.”

    런던에서 한국 태권도는 새롭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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