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수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남은 가족 소식을 받은 것은 2009년 5월 8일이다. 함흥에 누이동생 윤막내, 그녀의 두 딸 박기옥(60)과 박영순(54), 그리고 가족 12명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직접 정육점을 방문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윤재덕에게 서류 한 뭉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관계자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돼 있었다.
“이건 특별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북한은 아버님이 판문점을 통해 입국하시도록 배려했습니다.”
“아버지 혼자요?”
윤재덕은 생전 보지도 못한 고모나 고모 가족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오직 아버지 걱정뿐이다. 그러자 관계자가 당연한 일 아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럼요. 아버님 혼자 가십니다.”
“연세가 아흔 살이란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초청받은 것만 해도 특별 케이스라니까요.”
윤봉수는 혼자 걸어서라도 갈 것이었다.
# 미루고 미뤘던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이 결정되었다. 2009년 5월 10일이다. 취임하고 1년 3개월이 지난 후여서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서울 방문 다음이어서 한미 정상이 나눌 이야깃거리는 풍부해진 상태다.
“5월에는 할 일이 많군요. ‘정년법’이 통과하면 정부가 다 맡아서 해야 할 테니까요.”
성남 서울공항에 배웅 나온 이회창에게 이명박이 말했다.
“당연히 바빠야지요. 6월 1일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향해 걸으면서 이회창이 말을 잇는다.
“야당 의원들까지 입법을 도와주는 정책입니다. 일이 고되더라도 신바람이 납니다, 대통령님.”
프랑스와 스페인에 이어 그리스까지 한국의 신풍운동을 국가 경영 표본으로 특집 보도하는 상황이다. 오바마도 틈이 날 때마다 한국의 ‘개혁’을 칭찬하고 있다.
“이번 방문의 주목적은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 연장입니다.”
이명박이 말하자 이회창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은 이제 한국 국민 대부분이 안다. 환송 나온 국내외 인사들에게 다가가면서 이명박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노 전임이 애써 추진한 협정이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건 국민의 여망이니까.”
그래서 이명박을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켜준 것이다. 한미연합사를 단순히 ‘자주국방’ ‘굴종적 군사관계’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은 억지라고 국민이 심판해주었다. 북한 핵위협이 커지는 마당에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굴종하는 음모라고 판단한 것이다.
# 이명박의 은밀한(?) 지시로 노무현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는 없었지만 측근들에 대한 수사는 오히려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이는 마치 범람한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아 누구는 대세(大勢)라고도 부른다.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2009년 3월 24일 청와대 전(前) 비서관 추부길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25일에는 장인태 전 차관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26일에는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이광재 의원이 구속되었으며, 4월 7일 노무현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거친 물살이 노무현을 휩쓸고 지나갔다. 4월 10일 노무현의 조카사위 연철호가 체포되었으며, 4월 11일 부산지검은 권양숙 여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4월 12일에는 노무현의 장남 노건호가 소환되었으며, 마침내 4월 30일 노무현이 검찰에 출두해야 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이명박의 방미 행사를 TV로 지켜보는 5월 10일 오전 10시 반 현재, 응접실로 들어선 노정연이 말했다.
“아버지, 저 지금 갈게요.”
머리를 든 노무현이 딸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노정연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심려를 끼쳐드렸어요. 내일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머리를 든 노정연이 노무현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았다. 노정연의 입을 막듯이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잘 다녀오거라. 기운 내고.”
목이 멘 노정연은 숨을 들이쉰 뒤 몸을 돌렸다. 내일 남편과 함께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될 예정인 것이다. 박연차로부터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다.
# 노정연과 엇갈려 방으로 들어선 비서관 김경수가 노무현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별일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님.”
노무현은 음을 소거한 TV만 보았고 김경수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그때 노무현이 김경수의 말을 잘랐다.
“다 내 탓이야.”
외면한 채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이미 명예는 더럽혀졌어.”
숨을 죽인 채 김경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 가족, 측근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그 책임이 다 돌아온다. 그 책임의 무게를 그들이 알겠는가?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 문이 열리더니 노파 한 명이 두 손을 휘저으며 달려왔다. 비명 같은 괴성을 질렀으므로 윤봉수는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노파 모습이 성황당 귀신 같다. 그래서 윤봉수는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했다.
“아이고, 아이고.”
달려온 노파가 윤봉수의 소매를 움켜쥐더니 아예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노파를 따라온 중늙은이 여자 둘이 따라서 통곡했으므로 대기실은 급살 맞은 초상집이 되어버렸다. 윤봉수는 눈을 부릅뜨고 윤막내를 보았다. 1951년, 그러니까 58년 전 헤어졌으니 윤막내가 28세 때다. 30년 가깝게 얼굴을 보면서 살았지만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윤봉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노파의 눈은 짓물러만 있었지 눈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고, 외삼촌!”
옆에서 목청이 터질 듯 소리치며 우는 두 중늙은이는 거짓 울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멀쩡한 두 눈동자가 우는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윤봉수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90세지만 총기가 흐려지지 않은 윤봉수다. 그동안 수백 번 초상집을 다니면서 가짜 울음, 가짜 슬픔을 판별했던 터라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년들은 소리만 크면 다 덮이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시끄러워 죽겠다.
“아, 시끄럽다!”
윤봉수가 버럭 소리쳤더니 세 노파의 울음이 일제히 뚝 그쳤다. 놀란 듯 세 명이 눈을 둥그렇게 치켜떴는데 그렇게 아우성치며 울었지만 눈에는 물기도 없다. 그때 노파들을 안내한 남녀 둘이 당황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할머니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앉으시라우요.”
남자는 윤봉수에게 변명을 늘어놓았고 여자는 노파들을 그때서야 원탁 주위에 있는 의자에 앉힌다. 이곳은 평양 대동강변의 대동강호텔 안이다. 대기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배려로 윤봉수의 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라면 TV 기자들이 몰려와 난리를 쳤겠지만 이곳에는 없다. 문 밖에서 웅성거리던 군상 가운데 서너 명이 이쪽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윤봉수의 고함소리에 놀라 모두 조용해진 상태다. 이젠 사진도 찍지 않는다.
# 백악관 집무실 소파에 이명박과 오바마, 그리고 유명환과 힐러리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두 정상 사이에는 각각 통역이 한 명씩 끼었다. 오후 4시, 두 시간 가까운 한미 양국 정상회담이 끝나고 오바마의 초청으로 다시 넷이 집무실에 모인 것이다. 오바마가 웃음 띤 시선으로 이명박을 보았다.
“자, 그럼 미스터 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오바마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핵은 폐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실사단을 입국시켜 핵시설을 점검하도록 할 것이고, 폐기 절차도 밟겠다고 합니다.”
통역의 말을 들은 둘이 긴장했다.
“조건은 뭡니까?”
힐러리가 묻자 대답은 유명환이 했다.
“식량과 경제 지원, 미국의 규제 철폐, 그리고….”
통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유명환이 말을 이었다.
“후계자로 김정은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요? 김 누구?”
통역이 정확히 발음했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의 이름도 비슷하다. 오바마가 재촉하듯 물었을 때 힐러리가 대답했다.
“김정일의 아들입니다.”
“아들을 후계자로 인정하면…, 가만.”
오바마가 머리를 기울였다가 이명박에게 묻는다.
“그럼 할아버지 때부터 3대가 계속 북한을 통치하게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통역의 말에 이명박이 대답하고는 다시 잇는다.
“1945년부터지요.”
그러자 힐러리가 다시 덧붙인다.
“김정일의 건강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그때 이명박이 오바마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한미연합사 해체 기일은 무기한 연기해주시지요. 저는 그것을 성과로 갖고 귀국하고 싶습니다.”
오바마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김정일이 이번에 서울을 답방하면서 유화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앞으로 5~6년이 가장 위험합니다. 대통령께서 양보해주신 2015년까지의 연기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무기한 연기해주시면 양국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역하기 쉽도록 한마디 한마디 정확히 말했고, 통역사가 정성 들여 메모를 했다. 통역이 끝났을 때 오바마와 힐러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오바마가 말했다.
“검토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 방북한 지 이틀째 되는 아침, 윤봉수에게 책임자가 찾아왔다.
“상부에 보고했더니 허락이 났습니다. 오늘 오후 버스 편으로 친척들과 함께 함흥에 보내드리지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윤봉수가 온 얼굴을 펴고 웃었다. 어제 책임자에게 고향 함흥에 가보고 싶다고 부탁했던 것이다. 동생 윤막내와 그녀의 딸들도 함흥에서 올라와 호텔에서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자가 기뻐하는 윤봉수를 보더니 따라 웃는다.
“노인 동무는 운이 좋습니다. 위대하신 장군 동지께서 특별대우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어림도 없단 말입니다.”
“내가 죽어서도 장군님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시오.”
“꼭 전해드리지요.”
“책임자 동무가 아주 친절하게 잘해주신다는 것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고, 됐단 말입니다.”
손을 저어 보인 책임자가 서둘러 방을 나갔으므로 윤봉수는 길게 숨을 뱉는다. 이제 부모 묘소에도 가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이 복 받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 방에 들어선 박근혜의 얼굴이 굳어 있다. 걸음걸이도 딱딱한 것이 마치 맞짱토론에 나선 것 같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형태가 벌떡 일어서더니 박근혜를 향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형태도 마찬가지로 굳었다. 얼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잘 부탁해요.”
다가선 박근혜의 웃음 띤 얼굴이 곧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곧 둘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을 때 김형태가 서류봉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저기,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요. 제 인생관과 장래 희망, 그리고 성격까지 적어왔습니다.”
“고맙네요. 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때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박근혜가 차분해진 시선으로 김형태를 보았다. 김형태의 자기소개서는 다 외우고 있다. 25세, 수원전문대 행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며 작년 말 해병대를 제대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이고 밑에 대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이 있다.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 주유소와 이삿짐센터에서 알바를 뛴다. 김형태는 세우리당 대표 박근혜가 늦게 맞아들인 ‘세대결연’의 대자(代子)인 것이다. 박근혜가 지그시 김형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감사합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면서 말한 김형태도 눈이 부신 표정을 지으며 박근혜를 보았다.
“박 대표님께서는 참 고우십니다.”
“아유, 나는 내일모레가 60이야.”
그때 종업원이 들어왔으므로 그들은 주문을 했다. 중식당이어서 김형태가 짜장면을 시키자 박근혜는 우동에다 탕수육을 시켰다. 분위기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하는데요.”
김형태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저는 처음에 세대결연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젊은 층 지지를 끌어모으려는 대통령의 술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
박근혜는 잘 듣는다. 분위기를 맞춰주자 김형태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은 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건 아니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대자들은 모두 만족스러워해요. 좀 싫은 대부를 만나도 배울 것이 많다고 해요.”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박근혜가 불쑥 묻는다.
“친구들이 내 이야기도 해?”
“예, 명실공히 대한민국 2인자.”
그래 놓고 김형태가 손가락 두 개로 브이(V)자를 만들어 보였는데, 2인자라는 표시인지 빅토리의 브이인지 알 수 없다. 김형태가 술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소신이 분명치 않아 보이고, 소통과 포용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머나, 나는 그게 아닌데?”
박근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표정이 밝다. 대자의 말이어서 그런가 보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걸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그 순간 박근혜는 자신 앞에서 이렇게 탁 털어놓고 말해준 측근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몇 명 있었지만 완곡한 표현을 써서 둥글둥글 넘어갔다. 정치적 표현에 익숙한 인간들이라 그런가? 그때 김형태가 정색하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는 역대 최고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살신성인, 자신을 다 버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자세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국민은 어리석지 않거든요. 이 대통령의 진심을 보는 거예요. 박 대표님도 이젠 그런 자세를 보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박근혜가 짧게 웃었다.
“내가 대자가 아니라 정책참모를 만난 것 같다.”
“제가 만나뵙고 드릴 말씀을 미리 준비를 좀 했거든요.”
따라 웃은 김형태가 말을 잇는다.
“표를 위한 행동은 다 보여요. 그러다가 망한 사람이 많거든요. 박 대표님은 그것도 주의하셔야 해요.”
이제는 정책참모를 지나 선생 노릇이다.
# “아부지, 어무니. 저 왔습니다.”
봉분 앞에 엎드린 윤봉수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한다.
“인자 소원 풀었습니다. 한도 풀었고요. 저는 복 받은 놈입니다. 아부지, 어무니.”
봉분은 이틀 공사였지만 잘 만들었다. 아버지 시신을 암매장하듯이 묻고 돌덩이로 표시만 해놓았는데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다 그렇게 대충 묻고 말았다. 흥남도 지명이 바뀌어 함흥시 흥남구가 되어 있다.
“아이고, 아부지.”
그동안 아버지 묘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윤막내가 뒤에서 또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는 울음이었지만 이제 윤봉수도 이해한다. 이번 묘 작업을 도와준 마을사람들에게 평양에서 사간 담배를 두 갑씩 나눠주었더니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아부지, 어머니. 저 인제 여기 있을랍니다.”
윤봉수가 흐려진 눈으로 봉분을 향해 말했다. 어머니 묘까지 파서 같이 두 분을 합장해드린 것이다.
# 2009년 5월 14일, 4박5일 미국 일정의 마지막 날, 이명박은 백악관에서 오바마와 기자회견을 한다. 그 장면이 한국의 저녁 뉴스에서 보도됐다. 이명박이 화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번 합의했던 한미연합사 해체 협상을 파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것으로….”
저녁을 먹고 집에서 TV를 보던 윤재덕에게 정순자가 다가왔다. 손에 종이를 하나 들었는데 표정이 어둡다.
“이것 보시오. 아버님 편지가 옷 서랍장 위에 있네.”
윤재덕이 TV에서 시선을 떼었다. 아버지를 북한에 보내놓고 심란해서 요즘은 정육점을 일찍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서둘러 편지를 받아든 윤재덕이 그것을 읽었다. 아버지 글씨다.
“재덕아. 나는 착한 아들, 며느리를 뒀다. 필상이, 필호도 효손이지. 너는 아들도 잘 뒀다. 그런데 애비는 이번에 북한 가서 고향에 들르게 되면 안 오련다. 가서 아버지 어머니 잘 모셔놓고 거기 있으련다. 누구도 나를 못 보낼 거다. 그러니 내 아들아, 잘 살아라. 애비는 통일되면 찾아오거라. 재덕아, 내 아들아. 애비 나이 90이다. 많이 살았다. 누구도 나 못 보낸다. 내가 60년을 아버지 어머니 모시려고 기다렸다. 미안하다. 네 처, 필상이, 필호한테 내 안부 전해다오. 고맙다. 윤봉수. 아비 씀.”
편지를 다 읽은 윤재덕이 픽 웃었다.
“아부지도 참, 고집은. 북한에서 곧 보낼 거여. 어디, 아부지 맘대로 되나?”
# 2009년 5월 23일 오전 8시. 출근하려고 현관으로 나온 이명박에게 수행비서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상황실장입니다.”
잠자코 전화기를 귀에 붙인 이명박이 응답하자 상황실장이 빠르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오늘 오전 7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 뒷산에서 투신자살하셨습니다.”
이명박은 숨을 들이켰다.
# 같은 시간.
“아아이고오.”
방 안에 들어선 윤막내의 외침소리가 집 안을, 마을을 울렸다. 놀란 두 딸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천장에 매달린 윤봉수가 보였다. 외삼촌은 목을 맸다.
“아아이고오.”
윤막내가 다시 소리치며 윤봉수의 하반신을 부둥켜안자 두 딸도 아우성치며 껴안는다. 그랬구나. 그래서 어젯밤 몰래 불러 엄청난 돈을 나눠주었구나. 윤막내와 박기옥, 박영순의 울음소리가 높아지면서 눈물이 넘쳐흐른다. 눈물은 그동안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특별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북한은 아버님이 판문점을 통해 입국하시도록 배려했습니다.”
“아버지 혼자요?”
윤재덕은 생전 보지도 못한 고모나 고모 가족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오직 아버지 걱정뿐이다. 그러자 관계자가 당연한 일 아니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럼요. 아버님 혼자 가십니다.”
“연세가 아흔 살이란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초청받은 것만 해도 특별 케이스라니까요.”
윤봉수는 혼자 걸어서라도 갈 것이었다.
# 미루고 미뤘던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이 결정되었다. 2009년 5월 10일이다. 취임하고 1년 3개월이 지난 후여서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서울 방문 다음이어서 한미 정상이 나눌 이야깃거리는 풍부해진 상태다.
“5월에는 할 일이 많군요. ‘정년법’이 통과하면 정부가 다 맡아서 해야 할 테니까요.”
성남 서울공항에 배웅 나온 이회창에게 이명박이 말했다.
“당연히 바빠야지요. 6월 1일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향해 걸으면서 이회창이 말을 잇는다.
“야당 의원들까지 입법을 도와주는 정책입니다. 일이 고되더라도 신바람이 납니다, 대통령님.”
프랑스와 스페인에 이어 그리스까지 한국의 신풍운동을 국가 경영 표본으로 특집 보도하는 상황이다. 오바마도 틈이 날 때마다 한국의 ‘개혁’을 칭찬하고 있다.
“이번 방문의 주목적은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 연장입니다.”
이명박이 말하자 이회창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은 이제 한국 국민 대부분이 안다. 환송 나온 국내외 인사들에게 다가가면서 이명박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노 전임이 애써 추진한 협정이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건 국민의 여망이니까.”
그래서 이명박을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켜준 것이다. 한미연합사를 단순히 ‘자주국방’ ‘굴종적 군사관계’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은 억지라고 국민이 심판해주었다. 북한 핵위협이 커지는 마당에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굴종하는 음모라고 판단한 것이다.
# 이명박의 은밀한(?) 지시로 노무현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는 없었지만 측근들에 대한 수사는 오히려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이는 마치 범람한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아 누구는 대세(大勢)라고도 부른다.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2009년 3월 24일 청와대 전(前) 비서관 추부길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25일에는 장인태 전 차관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26일에는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이광재 의원이 구속되었으며, 4월 7일 노무현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거친 물살이 노무현을 휩쓸고 지나갔다. 4월 10일 노무현의 조카사위 연철호가 체포되었으며, 4월 11일 부산지검은 권양숙 여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4월 12일에는 노무현의 장남 노건호가 소환되었으며, 마침내 4월 30일 노무현이 검찰에 출두해야 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봉하마을에서 이명박의 방미 행사를 TV로 지켜보는 5월 10일 오전 10시 반 현재, 응접실로 들어선 노정연이 말했다.
“아버지, 저 지금 갈게요.”
머리를 든 노무현이 딸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노정연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심려를 끼쳐드렸어요. 내일 다녀와서 연락드릴게요.”
머리를 든 노정연이 노무현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았다. 노정연의 입을 막듯이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잘 다녀오거라. 기운 내고.”
목이 멘 노정연은 숨을 들이쉰 뒤 몸을 돌렸다. 내일 남편과 함께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될 예정인 것이다. 박연차로부터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다.
# 노정연과 엇갈려 방으로 들어선 비서관 김경수가 노무현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별일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님.”
노무현은 음을 소거한 TV만 보았고 김경수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그때 노무현이 김경수의 말을 잘랐다.
“다 내 탓이야.”
외면한 채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이미 명예는 더럽혀졌어.”
숨을 죽인 채 김경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 가족, 측근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그 책임이 다 돌아온다. 그 책임의 무게를 그들이 알겠는가?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 문이 열리더니 노파 한 명이 두 손을 휘저으며 달려왔다. 비명 같은 괴성을 질렀으므로 윤봉수는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노파 모습이 성황당 귀신 같다. 그래서 윤봉수는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했다.
“아이고, 아이고.”
달려온 노파가 윤봉수의 소매를 움켜쥐더니 아예 대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노파를 따라온 중늙은이 여자 둘이 따라서 통곡했으므로 대기실은 급살 맞은 초상집이 되어버렸다. 윤봉수는 눈을 부릅뜨고 윤막내를 보았다. 1951년, 그러니까 58년 전 헤어졌으니 윤막내가 28세 때다. 30년 가깝게 얼굴을 보면서 살았지만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윤봉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노파의 눈은 짓물러만 있었지 눈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고, 외삼촌!”
옆에서 목청이 터질 듯 소리치며 우는 두 중늙은이는 거짓 울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멀쩡한 두 눈동자가 우는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윤봉수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90세지만 총기가 흐려지지 않은 윤봉수다. 그동안 수백 번 초상집을 다니면서 가짜 울음, 가짜 슬픔을 판별했던 터라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년들은 소리만 크면 다 덮이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시끄러워 죽겠다.
“아, 시끄럽다!”
윤봉수가 버럭 소리쳤더니 세 노파의 울음이 일제히 뚝 그쳤다. 놀란 듯 세 명이 눈을 둥그렇게 치켜떴는데 그렇게 아우성치며 울었지만 눈에는 물기도 없다. 그때 노파들을 안내한 남녀 둘이 당황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할머니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앉으시라우요.”
남자는 윤봉수에게 변명을 늘어놓았고 여자는 노파들을 그때서야 원탁 주위에 있는 의자에 앉힌다. 이곳은 평양 대동강변의 대동강호텔 안이다. 대기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배려로 윤봉수의 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라면 TV 기자들이 몰려와 난리를 쳤겠지만 이곳에는 없다. 문 밖에서 웅성거리던 군상 가운데 서너 명이 이쪽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윤봉수의 고함소리에 놀라 모두 조용해진 상태다. 이젠 사진도 찍지 않는다.
# 백악관 집무실 소파에 이명박과 오바마, 그리고 유명환과 힐러리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두 정상 사이에는 각각 통역이 한 명씩 끼었다. 오후 4시, 두 시간 가까운 한미 양국 정상회담이 끝나고 오바마의 초청으로 다시 넷이 집무실에 모인 것이다. 오바마가 웃음 띤 시선으로 이명박을 보았다.
“자, 그럼 미스터 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오바마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핵은 폐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실사단을 입국시켜 핵시설을 점검하도록 할 것이고, 폐기 절차도 밟겠다고 합니다.”
통역의 말을 들은 둘이 긴장했다.
“조건은 뭡니까?”
힐러리가 묻자 대답은 유명환이 했다.
“식량과 경제 지원, 미국의 규제 철폐, 그리고….”
통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유명환이 말을 이었다.
“후계자로 김정은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요? 김 누구?”
통역이 정확히 발음했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의 이름도 비슷하다. 오바마가 재촉하듯 물었을 때 힐러리가 대답했다.
“김정일의 아들입니다.”
“아들을 후계자로 인정하면…, 가만.”
오바마가 머리를 기울였다가 이명박에게 묻는다.
“그럼 할아버지 때부터 3대가 계속 북한을 통치하게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통역의 말에 이명박이 대답하고는 다시 잇는다.
“1945년부터지요.”
그러자 힐러리가 다시 덧붙인다.
“김정일의 건강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
그때 이명박이 오바마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한미연합사 해체 기일은 무기한 연기해주시지요. 저는 그것을 성과로 갖고 귀국하고 싶습니다.”
오바마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김정일이 이번에 서울을 답방하면서 유화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앞으로 5~6년이 가장 위험합니다. 대통령께서 양보해주신 2015년까지의 연기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무기한 연기해주시면 양국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역하기 쉽도록 한마디 한마디 정확히 말했고, 통역사가 정성 들여 메모를 했다. 통역이 끝났을 때 오바마와 힐러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오바마가 말했다.
“검토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 방북한 지 이틀째 되는 아침, 윤봉수에게 책임자가 찾아왔다.
“상부에 보고했더니 허락이 났습니다. 오늘 오후 버스 편으로 친척들과 함께 함흥에 보내드리지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윤봉수가 온 얼굴을 펴고 웃었다. 어제 책임자에게 고향 함흥에 가보고 싶다고 부탁했던 것이다. 동생 윤막내와 그녀의 딸들도 함흥에서 올라와 호텔에서 묵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자가 기뻐하는 윤봉수를 보더니 따라 웃는다.
“노인 동무는 운이 좋습니다. 위대하신 장군 동지께서 특별대우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어림도 없단 말입니다.”
“내가 죽어서도 장군님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시오.”
“꼭 전해드리지요.”
“책임자 동무가 아주 친절하게 잘해주신다는 것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고, 됐단 말입니다.”
손을 저어 보인 책임자가 서둘러 방을 나갔으므로 윤봉수는 길게 숨을 뱉는다. 이제 부모 묘소에도 가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이 복 받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 방에 들어선 박근혜의 얼굴이 굳어 있다. 걸음걸이도 딱딱한 것이 마치 맞짱토론에 나선 것 같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형태가 벌떡 일어서더니 박근혜를 향해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형태도 마찬가지로 굳었다. 얼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잘 부탁해요.”
다가선 박근혜의 웃음 띤 얼굴이 곧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곧 둘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을 때 김형태가 서류봉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저기,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요. 제 인생관과 장래 희망, 그리고 성격까지 적어왔습니다.”
“고맙네요. 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때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박근혜가 차분해진 시선으로 김형태를 보았다. 김형태의 자기소개서는 다 외우고 있다. 25세, 수원전문대 행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며 작년 말 해병대를 제대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이고 밑에 대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이 있다.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 주유소와 이삿짐센터에서 알바를 뛴다. 김형태는 세우리당 대표 박근혜가 늦게 맞아들인 ‘세대결연’의 대자(代子)인 것이다. 박근혜가 지그시 김형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감사합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면서 말한 김형태도 눈이 부신 표정을 지으며 박근혜를 보았다.
“박 대표님께서는 참 고우십니다.”
“아유, 나는 내일모레가 60이야.”
그때 종업원이 들어왔으므로 그들은 주문을 했다. 중식당이어서 김형태가 짜장면을 시키자 박근혜는 우동에다 탕수육을 시켰다. 분위기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하는데요.”
김형태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저는 처음에 세대결연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젊은 층 지지를 끌어모으려는 대통령의 술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
박근혜는 잘 듣는다. 분위기를 맞춰주자 김형태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은 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건 아니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대자들은 모두 만족스러워해요. 좀 싫은 대부를 만나도 배울 것이 많다고 해요.”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박근혜가 불쑥 묻는다.
“친구들이 내 이야기도 해?”
“예, 명실공히 대한민국 2인자.”
그래 놓고 김형태가 손가락 두 개로 브이(V)자를 만들어 보였는데, 2인자라는 표시인지 빅토리의 브이인지 알 수 없다. 김형태가 술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소신이 분명치 않아 보이고, 소통과 포용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머나, 나는 그게 아닌데?”
박근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표정이 밝다. 대자의 말이어서 그런가 보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걸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그 순간 박근혜는 자신 앞에서 이렇게 탁 털어놓고 말해준 측근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몇 명 있었지만 완곡한 표현을 써서 둥글둥글 넘어갔다. 정치적 표현에 익숙한 인간들이라 그런가? 그때 김형태가 정색하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는 역대 최고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살신성인, 자신을 다 버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자세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국민은 어리석지 않거든요. 이 대통령의 진심을 보는 거예요. 박 대표님도 이젠 그런 자세를 보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박근혜가 짧게 웃었다.
“내가 대자가 아니라 정책참모를 만난 것 같다.”
“제가 만나뵙고 드릴 말씀을 미리 준비를 좀 했거든요.”
따라 웃은 김형태가 말을 잇는다.
“표를 위한 행동은 다 보여요. 그러다가 망한 사람이 많거든요. 박 대표님은 그것도 주의하셔야 해요.”
이제는 정책참모를 지나 선생 노릇이다.
# “아부지, 어무니. 저 왔습니다.”
봉분 앞에 엎드린 윤봉수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한다.
“인자 소원 풀었습니다. 한도 풀었고요. 저는 복 받은 놈입니다. 아부지, 어무니.”
봉분은 이틀 공사였지만 잘 만들었다. 아버지 시신을 암매장하듯이 묻고 돌덩이로 표시만 해놓았는데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다 그렇게 대충 묻고 말았다. 흥남도 지명이 바뀌어 함흥시 흥남구가 되어 있다.
“아이고, 아부지.”
그동안 아버지 묘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윤막내가 뒤에서 또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는 울음이었지만 이제 윤봉수도 이해한다. 이번 묘 작업을 도와준 마을사람들에게 평양에서 사간 담배를 두 갑씩 나눠주었더니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아부지, 어머니. 저 인제 여기 있을랍니다.”
윤봉수가 흐려진 눈으로 봉분을 향해 말했다. 어머니 묘까지 파서 같이 두 분을 합장해드린 것이다.
# 2009년 5월 14일, 4박5일 미국 일정의 마지막 날, 이명박은 백악관에서 오바마와 기자회견을 한다. 그 장면이 한국의 저녁 뉴스에서 보도됐다. 이명박이 화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번 합의했던 한미연합사 해체 협상을 파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것으로….”
저녁을 먹고 집에서 TV를 보던 윤재덕에게 정순자가 다가왔다. 손에 종이를 하나 들었는데 표정이 어둡다.
“이것 보시오. 아버님 편지가 옷 서랍장 위에 있네.”
윤재덕이 TV에서 시선을 떼었다. 아버지를 북한에 보내놓고 심란해서 요즘은 정육점을 일찍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서둘러 편지를 받아든 윤재덕이 그것을 읽었다. 아버지 글씨다.
“재덕아. 나는 착한 아들, 며느리를 뒀다. 필상이, 필호도 효손이지. 너는 아들도 잘 뒀다. 그런데 애비는 이번에 북한 가서 고향에 들르게 되면 안 오련다. 가서 아버지 어머니 잘 모셔놓고 거기 있으련다. 누구도 나를 못 보낼 거다. 그러니 내 아들아, 잘 살아라. 애비는 통일되면 찾아오거라. 재덕아, 내 아들아. 애비 나이 90이다. 많이 살았다. 누구도 나 못 보낸다. 내가 60년을 아버지 어머니 모시려고 기다렸다. 미안하다. 네 처, 필상이, 필호한테 내 안부 전해다오. 고맙다. 윤봉수. 아비 씀.”
편지를 다 읽은 윤재덕이 픽 웃었다.
“아부지도 참, 고집은. 북한에서 곧 보낼 거여. 어디, 아부지 맘대로 되나?”
# 2009년 5월 23일 오전 8시. 출근하려고 현관으로 나온 이명박에게 수행비서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상황실장입니다.”
잠자코 전화기를 귀에 붙인 이명박이 응답하자 상황실장이 빠르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오늘 오전 7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 뒷산에서 투신자살하셨습니다.”
이명박은 숨을 들이켰다.
# 같은 시간.
“아아이고오.”
방 안에 들어선 윤막내의 외침소리가 집 안을, 마을을 울렸다. 놀란 두 딸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천장에 매달린 윤봉수가 보였다. 외삼촌은 목을 맸다.
“아아이고오.”
윤막내가 다시 소리치며 윤봉수의 하반신을 부둥켜안자 두 딸도 아우성치며 껴안는다. 그랬구나. 그래서 어젯밤 몰래 불러 엄청난 돈을 나눠주었구나. 윤막내와 박기옥, 박영순의 울음소리가 높아지면서 눈물이 넘쳐흐른다. 눈물은 그동안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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