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처럼 잘 가꾼 캐나다 밴쿠버 마운틴 뷰 시립묘지.
하지만 올해부터 밴쿠버 시민에게도 시립묘지에 묻힐 기회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시 당국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시립묘지에 약간의 추가 공간을 마련하고 분양에 나선 것이다. 한국 주택시장 용어를 빌리자면 ‘공동묘지 리모델링’이다.
밴쿠버 시의 공동묘지 리모델링
추가 공간을 마련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시립묘지 내 통행로를 재구성하고 수목이 차지한 공간을 줄였다. 둘째는 기존의 묏자리 중 오래전에 분양됐으나 현재 비어 있는 곳을 환수했다. 밴쿠버가 자리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법에는 분양한 뒤 50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공동묘지 묏자리는 환수해 재분양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밴쿠버 시 당국이 이 규정을 처음 적용한 것이다. 뒤늦게 빈 묏자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려고 시는 규정보다 긴 ‘70년 이상 미사용’을 환수 기준으로 삼았다.
시립묘지는 총넓이가 106에이커(약 43만㎡)에 달하며, 1886년 공동묘역으로 지정된 이래 합장자를 포함해 9만여 기에 약 14만 위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밴쿠버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립묘지는 조경을 잘해놓아 ‘공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 인근 시민은 평소 산책 장소로도 이용한다.
시립묘지는 처음 수십 년간은 분양가가 워낙 쌌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여러 기의 묏자리를 한꺼번에 사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소유권자와 그 후손이 흩어지면서 방치되는 묏자리가 늘어났다. 이런 곳이 환수 대상이다.
물론 시는 환수에 앞서 공고를 통해 해당 묏자리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환수가 끝난 후에라도 소유권자가 나타나면 시립묘지 경내에 해당 묏자리와 가치가 같거나 더 높은 묏자리를 내줄 방침이다.
시립묘지에서 이런 방법으로 확보한 묏자리는 150기며 이 가운데 10여 기는 이미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묏자리 환수는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인데, 시 당국은 추가로 1000기까지 확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토가 넓은 캐나다도 도시 거주자는 죽어서 묻힐 공간이 거의 없다.
묏자리 값이 이렇게 비싸다 보니 시 당국도 매장보다 화장 후 유골을 시립묘지에 안치할 것을 권한다. 시립묘지 경내에는 화장 시설도 갖췄다. 화장 후 납골항아리는 경내의 땅속에 묻을 수도 있고, ‘컬럼베리엄’이라는 석조 수납장의 한 칸에 안치할 수도 있다.
시립묘지 경내에는 납골항아리를 안치하는 구역이 지하에 따로 지정돼 있다. 1위 또는 합장으로 2위까지 항아리를 함께 묻을 수 있는 공간의 값은 3000달러(약 360만 원) 안팎. 이 공간이 아니더라도 전통 매장용 묏자리 1기를 분양받은 사람은 해당 공간의 땅속에 총 8위분의 납골항아리를 안치하는 것이 허용된다.
컬럼베리엄 비용은 더 저렴해 1위만 안치하는 공간의 경우 비문을 새기는 비용 등을 포함해 1000달러(약 120만 원) 미만이다. 또 시립묘지 경내에서는 다양한 납골항아리를 전시 판매한다. 이 중에는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생(生)분해되는 친환경 제품도 있다.
산 사람 세금으로 죽은 사람 관리
밴쿠버 시 당국은 도시 인구를 감안할 때 앞으로 시립묘지에서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매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시인한다. 시내에 사설묘지가 들어설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밴쿠버 시민 중 일부는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온 사람이 함께 사는 이 도시에서 이슬람교도 등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매장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간을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묏자리 판매 수입이 없었던 지난 20여 년 간 시립묘지는 유지관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시 재정에서 보조받아야 했다. 죽은 사람의 흔적을 보존하려고 산 사람이 세금을 내는 꼴이다. 시립묘지 관리소장 글레 하지즈는 “묏자리 분양의 재개와 컬럼베리엄 판매를 통해 상당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 것이 이번 리모델링의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