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연(緣)이 사라진다.”
핵가족화로 가족이나 친지와의 교류가 소원해지면서 혈연(血緣)이 끊기고,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면서 지연(地緣)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회사를 다닐 때는 유지되던 직장동료와의 사연(社緣)도 퇴직하고 나면 단절된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동문 사이의 끈끈하던 학연(學緣)은 경쟁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은퇴자들은 이래저래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연락할 사람은 드물다. 휴대전화에 아무리 많은 연락처를 저장해놓았어도 막상 전화를 하려면 누구에게 걸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연이 사라져버린 사회를 ‘무연사회(無緣社會)’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연사회의 부산물이 바로 ‘무연사(無緣死)’다. 무연사회와 무연사라는 표현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조어대국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 사회에 무연사회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 일본 NHK가 ‘무연사회’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부터다.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죽음을 맞는 사람이 한 해 3만2000명이 넘는다는 방송 내용에 일본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무연사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할머니(83)가 있는가 하면, “가까운 장래에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절망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며 걱정한 남성(35)도 있었다. “나도 일이 없어지면 무연사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34)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연사와 같은 의미로 ‘고독사’ 또는 ‘고립사’라는 말이 더 많이 알려졌다. 고독사라는 표현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5년 한신 대지진이 발생하고 나서다. 지진 발생 몇 달 후,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던 재난 피해자 중 일부가 사망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일이 잇따랐다. 당시만 해도 가족이나 친지와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는 저소득 고령자들에게나 일어나는 문제로 치부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2009년 8월 유명 여배우였던 오하라 레이코(당시 62세)가 도쿄 부촌인 세타가야구 자택에서 숨진 지 사흘 만에 발견되면서 고독사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확 바뀌었다. 저소득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일본은 유품정리회사에 사전 예약
고독사가 잦아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도 생겨났다. 고독사로 사망한 시신은 평균 21.3일 만에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니 시신이 방치됐던 집 안은 엉망이고 악취도 풍긴다. 유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려 유품을 정리해주는 신종 사업이 등장했다. 일본의 독거노인 중에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유품을 정리해달라고 사전 예약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08년 가을 일본에서 개봉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는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뒤 입관하는 일을 담당하는 납관사(納棺師)를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 다이고가 납관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독사한 시신을 치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신 썩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와 토하는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다. 이 영화는 고령화로 인해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많은 일본에서 납관사라는 직업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09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고독사는 주로 혼자 사는 노인에게서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젊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최근 결혼이 약육강식의 경제 논리에 휩싸이면서 저소득자 중 일부가 비자발적으로 독신이 되고, 젊은이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비혼(非婚)을 선택하면서 독신세대가 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일본 남자 중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생애 미혼율’이 17.2%나 됐다.
생애 미혼율 급증… 남의 일 아니야
이러한 독신자들은 ‘무연사 예비군’이나 마찬가지다. 독신자는 혼자 사는 데다 결혼 경험도 없어 인간관계를 넓히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부모도 세상을 떠나고, 형제자매도 많지 않다. 절친한 친구가 있어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 아무래도 관계가 소원해진다. 관심사와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이야깃거리가 줄기 때문이다. 결혼해 아이가 생기면 아이 친구의 부모와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독신자에겐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직장 또한 사는 곳과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사는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NHK의 방송이 3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이 같은 독신자들의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도 고독사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3.9%나 된다. 네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셈이다. 특히 1인 가구의 19.2%가 70세 이상 고령자라는 점에서 고독사 문제가 이제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무연사 예비군이라 할 수 있는 생애 미혼자 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생애 미혼율은 2000년만 해도 1.1%에 불과했으나 10년 새 3배 이상 증가해 2010년에는 3.4%에 이르렀다. 여성도 같은 기간 0.9%에서 2.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아직까지 일본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이 함께 실시하는 ‘독거노인 U-Care 서비스’는 주목할 만하다. 65세 이상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이 서비스는 노인이 사는 집에 활동 감지 센서를 설치해놓고 평소에 비해 활동량이 뚜렷하게 낮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파악되면, 생활관리사가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거나 직접 방문하는 것이다. 또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스피커폰이 작동하는 전화기, 연기가 조금이라도 나면 작동하는 화재 감지 센서, 가스 유출 감지 센서를 집에 설치하고, 노인이 직접 버튼을 눌러 응급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작은 열쇠고리 크기의 휴대용 무선 호출기도 지급한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이나 친지와의 교류가 소원해지면서 혈연(血緣)이 끊기고,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면서 지연(地緣)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회사를 다닐 때는 유지되던 직장동료와의 사연(社緣)도 퇴직하고 나면 단절된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동문 사이의 끈끈하던 학연(學緣)은 경쟁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은퇴자들은 이래저래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연락할 사람은 드물다. 휴대전화에 아무리 많은 연락처를 저장해놓았어도 막상 전화를 하려면 누구에게 걸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연이 사라져버린 사회를 ‘무연사회(無緣社會)’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연사회의 부산물이 바로 ‘무연사(無緣死)’다. 무연사회와 무연사라는 표현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조어대국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 사회에 무연사회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 일본 NHK가 ‘무연사회’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부터다.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죽음을 맞는 사람이 한 해 3만2000명이 넘는다는 방송 내용에 일본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무연사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할머니(83)가 있는가 하면, “가까운 장래에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절망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며 걱정한 남성(35)도 있었다. “나도 일이 없어지면 무연사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34)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연사와 같은 의미로 ‘고독사’ 또는 ‘고립사’라는 말이 더 많이 알려졌다. 고독사라는 표현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5년 한신 대지진이 발생하고 나서다. 지진 발생 몇 달 후,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던 재난 피해자 중 일부가 사망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일이 잇따랐다. 당시만 해도 가족이나 친지와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는 저소득 고령자들에게나 일어나는 문제로 치부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2009년 8월 유명 여배우였던 오하라 레이코(당시 62세)가 도쿄 부촌인 세타가야구 자택에서 숨진 지 사흘 만에 발견되면서 고독사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확 바뀌었다. 저소득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국내 한 유품정리업체 직원이 홀로 살다 숨진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고독사가 잦아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도 생겨났다. 고독사로 사망한 시신은 평균 21.3일 만에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니 시신이 방치됐던 집 안은 엉망이고 악취도 풍긴다. 유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려 유품을 정리해주는 신종 사업이 등장했다. 일본의 독거노인 중에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유품을 정리해달라고 사전 예약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08년 가을 일본에서 개봉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는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뒤 입관하는 일을 담당하는 납관사(納棺師)를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 다이고가 납관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독사한 시신을 치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신 썩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와 토하는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다. 이 영화는 고령화로 인해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많은 일본에서 납관사라는 직업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09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고독사는 주로 혼자 사는 노인에게서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젊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최근 결혼이 약육강식의 경제 논리에 휩싸이면서 저소득자 중 일부가 비자발적으로 독신이 되고, 젊은이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비혼(非婚)을 선택하면서 독신세대가 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일본 남자 중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생애 미혼율’이 17.2%나 됐다.
생애 미혼율 급증… 남의 일 아니야
이러한 독신자들은 ‘무연사 예비군’이나 마찬가지다. 독신자는 혼자 사는 데다 결혼 경험도 없어 인간관계를 넓히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부모도 세상을 떠나고, 형제자매도 많지 않다. 절친한 친구가 있어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 아무래도 관계가 소원해진다. 관심사와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이야깃거리가 줄기 때문이다. 결혼해 아이가 생기면 아이 친구의 부모와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독신자에겐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직장 또한 사는 곳과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사는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NHK의 방송이 3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이 같은 독신자들의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도 고독사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3.9%나 된다. 네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셈이다. 특히 1인 가구의 19.2%가 70세 이상 고령자라는 점에서 고독사 문제가 이제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무연사 예비군이라 할 수 있는 생애 미혼자 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생애 미혼율은 2000년만 해도 1.1%에 불과했으나 10년 새 3배 이상 증가해 2010년에는 3.4%에 이르렀다. 여성도 같은 기간 0.9%에서 2.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아직까지 일본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증가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보건복지부와 소방방재청이 함께 실시하는 ‘독거노인 U-Care 서비스’는 주목할 만하다. 65세 이상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이 서비스는 노인이 사는 집에 활동 감지 센서를 설치해놓고 평소에 비해 활동량이 뚜렷하게 낮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파악되면, 생활관리사가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거나 직접 방문하는 것이다. 또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스피커폰이 작동하는 전화기, 연기가 조금이라도 나면 작동하는 화재 감지 센서, 가스 유출 감지 센서를 집에 설치하고, 노인이 직접 버튼을 눌러 응급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작은 열쇠고리 크기의 휴대용 무선 호출기도 지급한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