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려면 최종 예선을 통과해야 하듯, 12월 대통령선거(이하 대선)를 앞두고 최종 예선 준비가 한창이다. 바로 4월 총선을 준비하는 것. 4월 총선에서 뛸 대표선수 면면이 드러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며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해 이번 총선을 ‘박근혜 선거’로 치르려 한다. 민주통합당은 전체를 대표할 선수가 없어 여러 명이 함께 뛰는 중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정동영·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팀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면 여야 간 ‘일 대 다(多)’ 구도다. 이 구도는 불안정하고 불편하다. 유권자 눈에는 일대일이 간명하고 좋다. 연말에 대선도 있고 하니 ‘박근혜 : ·#51931;·#51931;·#51931;’ 하는 식으로 구도가 잡히는 걸 선호한다. 야권의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에게 관심과 지지를 몰아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당장 중요한 게임에 플레이어, 최소한 참여자로 뛰지 않는다면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게임에서 우리 편이 이겨야 하기 때문에 기를 쓰는 선수를 응원하는 ‘동지효과’도 있다. 따라서 ‘메시’(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선수)와 다름없는 절대 기량을 가진 선수라 할지라도 우리 편에서 뛰지 않는다면 일단 관심영역에서 제쳐두는 것이 정상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도 있지 않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져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올랐다. 여론조사 전문기업 리얼미터의 2012년 1월 넷째 주 지지율 조사에서 안 원장은 전주에 비해 4.9%포인트 빠진 23.2%, 문 이사장은 2.1%포인트 상승한 17.4%를 기록했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야권은 처참하게 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민심 풍향이 바뀌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호조건이 형성됐다. 그런데 기여는커녕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을 듯한 자세를 취하는 안 원장에게 계속 마음을 주기란 쉽지 않다. 최근 리서치뷰의 야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 원장(27.9%)이 문 이사장(29.3%)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 점은 이런 사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안풍’은 2011년 9월 1일 불기 시작했다. 이날 한 인터넷매체가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거론하면서 일약 정치권 최대의 관심주로 떠올랐다. 9월 3일 한국갤럽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안 원장은 39.5%를 기록해 13.0%의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 3.0%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압도했다. 그러더니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9월 6일 그는 박 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리며 ‘간지 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 모습은 ‘안풍’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9월 24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안 원장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각각 42.8%, 43.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야권의 모든 주자가 지지율 10%대에도 미치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니 ‘안풍’은 가히 초특급 태풍으로 성장한 셈이었다. 이때가 안 원장의 지지율과 관련해 1단계, 즉 상승기였다. 10월부터 안 원장은 박 비대위원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한국리서치 10월 조사에서 안 원장은 47.7%를 얻어 42.6%를 얻은 박 비대위원장을 5.1%포인트 앞섰다.
안 원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자신이 소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안 원장의 지지율은 2단계, 즉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국리서치의 12월 17일 조사에서 안 원장은 49.4%를 얻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10%포인트 뒤진 39.4%를 얻는 데 그쳤다. 일부 조사에서 안 원장은 일대일 대결에서의 우위에 머물지 않고 다자간 지지율 조사에서도 박 비대위원장을 눌렀다. 이때부터 민주통합당 대표 선출(1월 15일) 국면까지 그는 전체 대선주자 경쟁구도에서는 빛나는 샛별, 야권의 경쟁구도에서는 절대 강자의 위상을 누렸다.
총선은 지지율 손실의 시기
그러나 이제 안 원장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하나의 추세다. 단기적으로는 이런저런 요인 때문에 미세하게 등락할 수 있으나 안 원장이 지금처럼 움직이면 큰 흐름상 하락세가 불가피하다. 총선은 일종의 정치 전쟁이다. 여야는 물론 정당, 세력, 노선 간에도 대격돌이 벌어지기 때문에 전장에서 싸우는 장수가 아닌 사람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선거 때는 눈앞에 제시된 선택 대안 중에서 골라야 하고, 그래서 이들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찾으려 한다. 문 이사장뿐 아니라 손학규 전 대표, 김두관 지사 등의 지지율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반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그만큼 안 원장의 지지율에서 손실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한길리서치 1월 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44.4%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 응답은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대중은 정치인 또는 대통령으로서의 안 원장에 대해 아직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안 원장이 비전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가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셋째, 시간이 갈수록 정치 불참의 요구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안 원장이 정말 정치에 참여하려면 조속히 대중이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대중적 인기에 의지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다. 인기 때문에 허겁지겁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은 꼴불견이다. 또 인기에 의지해 어느 날 꽃가마 타고 권좌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염불이다.
안 원장은 나이브(naive)해 보인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보니까 민주통합당도 통합 작업을 잘 진행하셨고, 한나라당도 강한 개혁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를 하게 됐다.”
이 언급은 야권 지지층을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을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치를 안 할 것처럼 언급한 것도 실책이다. 정치를 안 하겠다는데 뭐 하러 굳이 대권주자로 지지하나,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안 원장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통합 이후 상당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앞섰고, 대권주자의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 여론 지형에서도 야권이 훨씬 유리하다. 이 정도면 자신감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해찬 전 총리가 “안철수 원장이 아니어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 다 걸어야 할 대권
당내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전의 위기의식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이대로 가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일부에선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가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예상대로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안 원장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총선 후에 ‘안철수 대망론’이 되살아날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야권 대권주자의 지지율도 많이 오를 것이다. ‘박근혜 선거’로 치른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다면 박 비대위원장과 야권주자 간 일대일 대결에서도 야권주자의 경쟁력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 게다가 총선에서 안 원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의원이나 정치인이 굳이 ‘나와라 안철수’를 외칠 까닭도 별로 없다. 이래저래 안 원장이 지금처럼 절대적 우위를 누리는 구도는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민주통합당이 패배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안철수 대망론’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여러 요인을 종합해볼 때, 안 원장은 정점을 찍고 아래로 꺾이는 분위기다. 반전 기회가 운 좋게 올 수도 있지만 이대로 가면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한 지지율을 가진 유력 후보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안 원장에게 기대를 거는 안철수 현상(phenomenon)이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하는 운동(movement)으로 발전하고, 정치권에서 그를 내세우는 게 가장 확실한 승리의 길이라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그는 ‘간택’받을 수 있다. 물론 본인이 적극 나서는 방법도 있다. 총선에 전면적으로 참여해 승리에 기여하고, 그 승리를 자신의 전공(戰功)으로 의미규정(define)하는 것이다.
안 원장에게 시민후보 콘셉트, 즉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모델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벤치마킹해볼 수 있는 것이 1952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아이젠하워다. 아이젠하워는 경선 시작 당일까지 공식 출마를 하지 않고서도 공화당 후보직을 따냈다. 그 원동력은 크게 3가지였다. 먼저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당시 정권교체가 대세인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 내 온건파가 유력한 후보인 강경파의 태프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다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에서 아이젠하워 추대운동(Draft Eisenhower Movement)이 벌어졌다.
여기에 비춰보면 안 원장에겐 3가지가 다 부족하다. 그렇다면 기존 정당에 뛰어들어 직접 판을 만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다.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일국의 대통령직이다. 이것이 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에서의 게임 룰이다. 이런 결단이 없으면 ‘안철수 대망론’은 한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팀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면 여야 간 ‘일 대 다(多)’ 구도다. 이 구도는 불안정하고 불편하다. 유권자 눈에는 일대일이 간명하고 좋다. 연말에 대선도 있고 하니 ‘박근혜 : ·#51931;·#51931;·#51931;’ 하는 식으로 구도가 잡히는 걸 선호한다. 야권의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에게 관심과 지지를 몰아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당장 중요한 게임에 플레이어, 최소한 참여자로 뛰지 않는다면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게임에서 우리 편이 이겨야 하기 때문에 기를 쓰는 선수를 응원하는 ‘동지효과’도 있다. 따라서 ‘메시’(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선수)와 다름없는 절대 기량을 가진 선수라 할지라도 우리 편에서 뛰지 않는다면 일단 관심영역에서 제쳐두는 것이 정상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도 있지 않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져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올랐다. 여론조사 전문기업 리얼미터의 2012년 1월 넷째 주 지지율 조사에서 안 원장은 전주에 비해 4.9%포인트 빠진 23.2%, 문 이사장은 2.1%포인트 상승한 17.4%를 기록했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야권은 처참하게 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민심 풍향이 바뀌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호조건이 형성됐다. 그런데 기여는커녕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을 듯한 자세를 취하는 안 원장에게 계속 마음을 주기란 쉽지 않다. 최근 리서치뷰의 야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 원장(27.9%)이 문 이사장(29.3%)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 점은 이런 사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 꺾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안풍’은 2011년 9월 1일 불기 시작했다. 이날 한 인터넷매체가 안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거론하면서 일약 정치권 최대의 관심주로 떠올랐다. 9월 3일 한국갤럽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안 원장은 39.5%를 기록해 13.0%의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 3.0%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압도했다. 그러더니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9월 6일 그는 박 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리며 ‘간지 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 모습은 ‘안풍’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9월 24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안 원장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각각 42.8%, 43.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야권의 모든 주자가 지지율 10%대에도 미치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니 ‘안풍’은 가히 초특급 태풍으로 성장한 셈이었다. 이때가 안 원장의 지지율과 관련해 1단계, 즉 상승기였다. 10월부터 안 원장은 박 비대위원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한국리서치 10월 조사에서 안 원장은 47.7%를 얻어 42.6%를 얻은 박 비대위원장을 5.1%포인트 앞섰다.
안 원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자신이 소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안 원장의 지지율은 2단계, 즉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국리서치의 12월 17일 조사에서 안 원장은 49.4%를 얻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10%포인트 뒤진 39.4%를 얻는 데 그쳤다. 일부 조사에서 안 원장은 일대일 대결에서의 우위에 머물지 않고 다자간 지지율 조사에서도 박 비대위원장을 눌렀다. 이때부터 민주통합당 대표 선출(1월 15일) 국면까지 그는 전체 대선주자 경쟁구도에서는 빛나는 샛별, 야권의 경쟁구도에서는 절대 강자의 위상을 누렸다.
총선은 지지율 손실의 시기
1월 9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사회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한길리서치 1월 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44.4%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 응답은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대중은 정치인 또는 대통령으로서의 안 원장에 대해 아직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안 원장이 비전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가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셋째, 시간이 갈수록 정치 불참의 요구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안 원장이 정말 정치에 참여하려면 조속히 대중이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대중적 인기에 의지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다. 인기 때문에 허겁지겁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은 꼴불견이다. 또 인기에 의지해 어느 날 꽃가마 타고 권좌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염불이다.
안 원장은 나이브(naive)해 보인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보니까 민주통합당도 통합 작업을 잘 진행하셨고, 한나라당도 강한 개혁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를 하게 됐다.”
이 언급은 야권 지지층을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을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치를 안 할 것처럼 언급한 것도 실책이다. 정치를 안 하겠다는데 뭐 하러 굳이 대권주자로 지지하나,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안 원장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통합 이후 상당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앞섰고, 대권주자의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 여론 지형에서도 야권이 훨씬 유리하다. 이 정도면 자신감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해찬 전 총리가 “안철수 원장이 아니어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 다 걸어야 할 대권
당내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전의 위기의식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이대로 가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일부에선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가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예상대로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안 원장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총선 후에 ‘안철수 대망론’이 되살아날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야권 대권주자의 지지율도 많이 오를 것이다. ‘박근혜 선거’로 치른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다면 박 비대위원장과 야권주자 간 일대일 대결에서도 야권주자의 경쟁력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 게다가 총선에서 안 원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의원이나 정치인이 굳이 ‘나와라 안철수’를 외칠 까닭도 별로 없다. 이래저래 안 원장이 지금처럼 절대적 우위를 누리는 구도는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민주통합당이 패배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안철수 대망론’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여러 요인을 종합해볼 때, 안 원장은 정점을 찍고 아래로 꺾이는 분위기다. 반전 기회가 운 좋게 올 수도 있지만 이대로 가면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한 지지율을 가진 유력 후보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안 원장에게 기대를 거는 안철수 현상(phenomenon)이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하는 운동(movement)으로 발전하고, 정치권에서 그를 내세우는 게 가장 확실한 승리의 길이라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그는 ‘간택’받을 수 있다. 물론 본인이 적극 나서는 방법도 있다. 총선에 전면적으로 참여해 승리에 기여하고, 그 승리를 자신의 전공(戰功)으로 의미규정(define)하는 것이다.
안 원장에게 시민후보 콘셉트, 즉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모델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벤치마킹해볼 수 있는 것이 1952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아이젠하워다. 아이젠하워는 경선 시작 당일까지 공식 출마를 하지 않고서도 공화당 후보직을 따냈다. 그 원동력은 크게 3가지였다. 먼저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당시 정권교체가 대세인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 내 온건파가 유력한 후보인 강경파의 태프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다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에서 아이젠하워 추대운동(Draft Eisenhower Movement)이 벌어졌다.
여기에 비춰보면 안 원장에겐 3가지가 다 부족하다. 그렇다면 기존 정당에 뛰어들어 직접 판을 만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다.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일국의 대통령직이다. 이것이 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에서의 게임 룰이다. 이런 결단이 없으면 ‘안철수 대망론’은 한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