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 지음/ 영림카디널/ 400쪽/1만7000원
이들을 불러 모은 기획자는 교황 율리오 2세, 총 진행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화가 라파엘로였다. 세로 5.795m, 가로 8.235m의 바티칸 궁전 내부 그림 ‘아테네 학당’ 이야기다. 만약 그들이 현실에서 만났다면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처음부터 상상력을 동원한다.
“아테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내려오고 있다.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은 술 한잔 하며 끝장토론을 벌일 것 같은 분위기다. ‘뭐야? 정말 재미없는 양반들이군!’ 밑에 계단에서 만사가 귀찮은 모습을 하고 있는 무소유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한마디 툭 내뱉는다.”
이 그림 하단 왼쪽에 하얀색 옷을 입은 채 오직 정면만을 빤히 쳐다보는 여성이 그 유명한 그리스의 마지막 천재 수학자 히파티아다. 혼자 외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라파엘로는 415년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광신자들에게 처참히 살해된, 뛰어난 학문과 출중한 미모를 겸비한 그를 화폭으로 불렀다. 하지만 교황을 대신해 그림을 담당했던 주교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당신,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이교도는 빼시오. 아니면 당장 걷어치우시오.” 히파티아를 그릴 수 없다면 작업을 포기하겠다고 완강하게 나오는 라파엘로에게 교황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정 그렇다면 구석에 너무 예쁘지 않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인물로 그리시오.”
긴 수염에 별들이 새겨진 둥근 공을 들고 있는 노인이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다. 라파엘로는 왜 이교도 노인을 초대해 극진히 대접했을까. “손에 천구의가 있는 것처럼 그의 종교(조로아스터교) 속에는 무한한 우주의 개념이 담겨 있다.” 그는 배화교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유럽의 종교와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다.
라파엘로는 자신과 친구 소도마 얼굴도 슬쩍 끼워넣었다. 조로아스터 옆쪽에 검은색 모자를 쓴 사람이 라파엘로, 흰 가운에 하얀색 모자를 쓴 사람이 소도마다. 화가와 유명한 석학들을 동급으로 표현함으로써 ‘아테네 학당’이 다양하면서도 자유로운 캠퍼스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그림의 등장인물 58명 중 정확히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무던히 노력해 얻어낸 것이다. “아테네 학당은 거대하게 펼쳐지는 학문의 융합 현장이다. 이 작품에는 학문적 도그마도, 종교적 도그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과 통섭을 넘어 대립과 경쟁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녹아들어 서로 어울리는 거대한 원융사상(圓融思想)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저자는 그림 속 인물들에 대한 집중적 연구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식여행을 떠난다. 지식의 대통합에서 새로움은 창출되고 역사는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