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1월 중순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일단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TPP 참여 의사를 공식화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국내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TPP는 가맹국끼리 예외 없는 관세 철폐가 원칙인 데다, 상품뿐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교류까지 허용할 정도로 광범위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TPP 반대론자들은 개방 폭과 범위가 넓은 TPP를 섣불리 받아들였다간 경쟁력이 취약한 일본의 농업과 의료, 금융업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사전 물밑협상을 중시하는 일본의 정치문화에서 노다 총리는 정치적 생명을 건 승부수를 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취임 후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노다 정권이 이 같은 모험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장 깊은 배경에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침체된 일본 경제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오랜 디플레이션, 저출산, 고령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 등으로 일본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에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올해 들어 엔화 가치는 연일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 채산성이 맞지 않는 일본 제조업체는 벌써 조국을 등지기 시작했다. 복합 악재에 빠진 일본으로선 TPP 참여를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무역 확대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갈수록 설 자리 없는 “메이드 인 재팬”
2010년 11월 6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열린 반중(反中) 시위의 한 참가자가 영어로 ‘중국은 평화의 적’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센카쿠 사태 관련 동영상이 유출된 직후 모인 2000여 명의 시위대는 중국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조치를 거세게 비난했다.
더불어 TPP는 일본에 무역자유화라는 의미 이상으로 안보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 협정이 갑자기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TPP는 본래 2006년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뉴질랜드 4개국이 만든 다자간 자유무역권이 모체였다. 당시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TPP는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탄생한 이후 ‘대물(大物)’이 돼버렸다. 오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에 허덕이는 미국으로선 경제성장의 센터인 아시아지역이 군침 도는 시장일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8개국으로는 규모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의 참여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일본으로선 이 같은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2009년 민주당 정권교체 이후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 미·일 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민주당 정권교체로 들어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한중일 3국이 중심이 돼 아시아지역의 질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가자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발언으로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어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기로 한 양국의 합의도 주민 반대를 이유로 뒤집었다. 국제정치학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는 최근 일본 처지에서 TPP가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하토야마 정권은 중국 등 아시아에 무게 중심을 둔 대미 자주외교,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미국의 ‘신뢰 상실’을 초래했고, 간 나오토 정권 때도 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야당인 자민당의 보수적 성향에 가까운 노다 총리는 이처럼 손상된 미·일 관계를 TPP 가입을 통해 원상회복하려 한다.”
최근 해군력을 키우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이 커진 것도 일본의 결단을 앞당긴 요인이다. 지난해 9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일 간 충돌로 일본은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일본 당국의 조치에 불만을 품은 중국 정부는 희귀자원인 희토류의 대일본 금수조치를 내렸고, 양국관계는 험악한 지경으로 치달았다. 이 사태 이후 일본에서는 ‘중국은 아직…’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글로벌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중국보다 자유시장과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의 연계가 상당 기간 더 필요하다는 반성이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은 최근 ‘동아일보’에 실은 기고에서 “일본은 이번에 TPP 협상 참여 의사를 밝힘으로써 중국보다 미국을 제1 파트너로 선택했다. 일본이 TPP에 참가하면 미국의 온갖 요구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안보적으로 신뢰할 만한 동맹국의 압박이기에 이 길밖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미국에만 올인’한 것인가.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본 정부는,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아세안+6’에도 참가 의사를 밝힘으로써 최근 이 구상에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중국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일본에 TPP가 미·일 FTA라면 아세안+6은 중·일 FTA에 해당한다. 대(對)중국 교역 비중이 늘어나는 일본으로선 아세안+6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TPP 교섭 이후 상황은 돌변할 수도
물론 일본 정부는 “우선 교섭은 TPP”라고 못 박아뒀지만, 향후 TPP 교섭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돌변할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농산물 분야 관세철폐를 강하게 압박할 경우, 관세철폐 예외를 인정하는 아세안+6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놓고 미·중 양국이 벌이는 각축전 속에서 일본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한국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