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이나 SNS상에서는 각종 괴담과 루머가 판친다.
한 일생 짓밟고 사회 혼란시키는 피해
과거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었을 때 한미 FTA는 구국의 결단이자 노무현 정부가 가장 잘한 성과로 꼽았던 이들이 지금은 나라를 팔아먹는 을사늑약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의 여당인 한나라당도 야당 시절에는 한미 FTA 비준안의 ‘투자자 국가소송 제도(ISD)’를 두고 한국의 사법주권을 미국에 바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이제야 “당시에는 잘 몰랐다”며 말을 바꾼다. 여야가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당리당략과 개인의 정치적 이해득실 관계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치인이 맑지 못해서일까, 일반인 역시 버젓이 거짓말을 일삼는다. 특히 인터넷 공간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각종 괴담과 루머가 판친다. 만우절에 가볍게 즐기는 거짓말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일생을 짓밟거나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한 내용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그들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사람 가운데 일부가 실제로 거짓말을 굳게 믿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종교 광신도처럼 평소 자신의 가치관이나 증오심과 맞아 떨어지는 말을 사실처럼 믿는다. 상식과 과학에서 벗어난 거짓말을 맹신한다. 광우병 파동 때 미국산 수입소를 먹으면 무조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든지, 한미 FTA 이후에는 맹장수술비로 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등의 괴담이 그렇다.
사람이 처음 거짓말을 하는 시기는 아동기 때다. 천사 같았던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면, 부모는 당황해 아이를 다그치게 마련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점차 커나가면서 아이는 거짓말의 나쁜 결과를 인식하고 자기 양심의 판단에 따라 거짓말을 멈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어른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으니 도대체 아이를 가르치고 훈육시킬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의 거짓말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자기중심적인 사고 유형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아빠 백 살이야.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커, 키가 2m야”라는 거짓말을 한다. 이유는 아빠가 가장 크고 위대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전혀 야단칠 일이 아니다. 그저 이렇게 말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맞아. 우리 아빠는 나이가 많아. 하지만 백 살은 아니고 서른세 살이야. 그리고 아빠들은 모두 다 세상에서 제일 커.” 현실을 점차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다음은 책임 회피 유형이다. 아이의 옷이 오줌에 젖어 있기에 어떻게 된 거냐고 엄마가 물었더니 아이는 “물에 젖었어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이는 옷에 소변을 지린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뿐더러, 엄마에게 야단맞는 것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야단을 따끔하게 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말 물에 젖은 것 같네. 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물이 아니라 오줌인 것 같아. 엄마가 야단치지 않을 테니, 옷을 갈아입자”라고 말함으로써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동시에 훈육도 할 수 있다.
관심 끌기 유형도 있다. 한 아이가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마에게 “여기가 아파요. 호~ 해줘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말 그대로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거짓말이다. 엄마의 보살핌을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 전략이기도 하다. 이제 엄마는 “여기가 아프구나. 호~ 해줄게. 그런데 엄마가 보기엔 별로 아플 것 같지 않은데”라고 반응할 수 있다.
악의로 가득 찬 어른의 거짓말
욕구불만 유형의 경우에는 “내 친구 아빠는 매일 장난감을 사줘요”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아빠는 자신이 무엇을 요구할 때 들어주지 않으리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그렇게까지 얘기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봐. 아빠가 들어보고 필요한 것이면 사줄게”라고 대답해주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런 네 가지 유형의 거짓말은 아이가 흔히 하는 것으로 애교도 있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른이 하는 거짓말의 유형은 좀 더 악의로 차 있다. 먼저 파괴 목적 유형을 보자. 예를 들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 상사를 쫓아내려고 부하 여직원이 거짓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는 경우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인생과 명예를 파괴할 만한 거짓말이다. 그 여직원은 자신의 감정이 중요할 뿐 남의 명예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득 추구 유형을 살펴보자. 사기꾼이 흔히 보이는 거짓말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자신이 고위 권력층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자기에게 투자하면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자본 투자를 꼬드기는 식이다. 물론 목적은 한 가지다. 좀 더 많은 사람을 속여서 더 많은 돈을 끌어들인 다음 잠적할 심산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금전적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득만 추구하는 유형이다.
자기만족 유형도 있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아니고 특정 분야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아니지만, 거짓말을 통해 자기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간혹 있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거나 관련 대상이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은 컴퓨터 해커의 심리와도 일맥상통한다. 공중 화장실이나 담벼락에 그럴 듯한 거짓말로 낙서를 해놓은 다음 그것이 퍼져 나가 회자되는 것을 즐겼던 과거의 사람들이 원조이자 조상 격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최면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거짓말을 처음에는 인식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기 최면 또는 자기 암시의 함정에 빠져 나중에는 거짓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실로 믿어버린다. 이들은 9·11테러나 KAL기 폭발 사건을 정부의 자작극으로 믿고 각종 음모론을 제기한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그의 말만 믿는다.
이처럼 어른의 거짓말은 비방, 모략, 싸움, 갈등, 승부, 경쟁, 미움으로 얼룩져 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버젓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큰소리를 뻥뻥 친다. 거짓말의 피해자가 아무리 세상에 대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냉혹한 한국 사회는 ‘이미 끝난 게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상이 되풀이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소통과 상생, 나눔과 배려가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는 이 시대에 한 가지 덧붙일 만한 구호가 있다면, 단연코 이 말이 될 것이다.
“이제 거짓말은 그만합시다!”
2008년 5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면서 촛불 시위가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왼쪽). 보수단체 회원들이 FTA 괴담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